'발의 마음'을 닮자
상태바
'발의 마음'을 닮자
  • 유은하
  • 승인 2011.10.11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유은하 / 화도마리공부방


늘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고생하는 선생님들을 떠올려본다. 늘 감사할 뿐이다. 올해는 생활복지사 선생님 한 분을 새로 모셨다. 평상시에 사람들과 낮은 자세, 열린 자세로 살아온 분이어서 1년만이라도 근무해달라고 애걸복걸해서 오신 분이다. 그런데 벌써 가을이 왔고 곧 겨울이 온다. 혹시나 더 근무해줄 수 있나 기대해 보았지만 그 분은 이미 다른 일을 할 예정이다. 그 일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며, 어찌보면 그 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화도마리공부방은 이름이 공부방인데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 공부방으로 유명하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만이 공부방 다니는 아이들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부모들이 듣는 이야기는 주로 야외활동, 바느질, 뜨개질 등 상시 프로그램 활동, 캠프 활동, 음악활동, 인문학활동, 미술활동 등이다. 공부는 언제 하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가르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매일 숙제를 봐주고 부진학습을 봐준다. 문제라면 좀더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때로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공부를 쉬게 해준 적이 종종 있다는 점이다. 이 어린 아이들에게 하루종일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기존에 해오던 활동과 더불어 공부도 열심히 가르쳤더니 공부까지 잘 가르치는 공부방이 되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할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왔고 성적이 향상되니 자존감이 높아지고, 아이들 및 학부모들과 상담활동도 열심히 하였더니 긴밀도도 높아졌다. 교사들의 노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특히 생활복지사 선생님 노고에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느낀다. 그 분은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마치 우리 몸 가장 아래에 있는 발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은 우리 몸 맨 아래에서 온몸을 떠받치고 있다. 감당하는 무게로만 따지면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짐을 지고 있다.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지만 발은 눈과 가장 먼 곳에 있어서 우리 눈길을 거의 받지 못한다. 발을 씻거나 발톱을 깎을 때, 양말을 신을 때가 발로서는 '주인'의 관심을 받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때조차 우리는 발에 제대로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발은 몸의 다른 기관과 달리 무던하다.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탈도 잘 나지 않는다. 발이 아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드물다.

아이들은 납득하면 곧바로 따르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공부도 그분과 함께하면 반드시 한다. 나와 공부할 때는 늘 하기 싫은 이유가 많았는데, 그분과 함께라면 어쩜 그렇게 군소리 없이 평화롭게 문제집을 대하는지 은근히 화도 났다. 그 분이 아이들에게 화를 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떤 경우에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조근조근, 나긋나긋, 애정어린 눈초리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받아주고, 설득한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관심을 기울이고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고 공부방 구석구석 보이지 않게 허드렛 일도 하면서 있는 듯 없게, 없는 듯 있게 존재한다. 나이는 나보다 10년 쯤 어린데 진짜 어른이다.

어른은 아이들과 달라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살아온 세월이 좀 더 길다고 해서 대접받으려 하고 지시하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것은 먼저 하는 사람, 기꺼운 마음으로 묵묵히 나서는 사람이 어른일 것이다. 문득 '늙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마음을 울렸던 경험이 떠올랐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들고 , 어렵고, 위험한 일을 스스럼 없이 썩 나서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3D)에 솔선해서 손이 나가는 사람입니다. 3D일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3D일에 손이 나가는 사람이 어른이요, 나이가 많아도 3D일에 앞장서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사람 늙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3D일을 앞장서서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입니다."  

이제 우리 몸의 발처럼, 어른처럼 사는 선생님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면서 그 분이 여기 머물렀던 것이 아이들과 내게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우리 인연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믿는다. 항상 자리를 비워둘 터이니 우리가 그리우면 다시 오셔도 된다고 기다리겠다고 고백한다. 발처럼 사는 그 분을 생각하며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어떤 학자들은 손이나 귀처럼 발도 인체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발을 씻을 때만이라도 정성을 기울여 보자. 두 손으로 발바닥을 정성스럽게 문지르고 발가락 하나하나에 사랑스런 손길을 보내는 것이다. 발을 닦을 때도 마찬가지다. 발마사지를 받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손으로 발을 주물러 보자. 자신의 건강 비결은 매일 발을 정성스럽게 씻는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더욱 중요한 건 발의 마음을 닮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발, 가정이나 일터에서 발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면 마음이 편해진다.  발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고, 발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받들며 살아보자. 그런 마음과 태도로 사는 사람은 머지않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