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숭어처럼 펄떡이는 건평리 포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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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숭어처럼 펄떡이는 건평리 포구 사람들
  • 양진채
  • 승인 2018.06.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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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단편소설 <보리 숭어> / 이목연

@김성환


벌써 스무 번째 <소설로 읽는 인천>을 연재한다. 슬슬, 그러니까 슬슬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2년은 써야 하지 않을까, 아직 다루지 못한 소설도 있을 테고, 다루지 못한 지역도 있을 텐데. 더 찾아봐야지, 고심 중이다. 이번 소설은 강화 건평리 선착장과 근처 포구가 주 무대이다. 이목연 소설가는 강화에 10여 년 살았고, 소설에 강화가 등장하는 소설이 여러 편 있는 것으로 안다. “이시껴?” 하는 식의 강화 사투리가 있다는 것도 이목연 소설가의 소설을 통해 알았다.
이 소설은 읽은 지 꽤 되었는데도 포구 사람들의 리얼한 삶이 잘 드러나 있고, 무엇보다 인물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기억에 오래 남았다.
포구를 무대로 한 소설로 이원규 소설가의 <포구의 황혼>을 연재 초반에 다룬 바 있다. 그러나 <포구의 황혼>의 주 무대는 바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내가 극적인 화해를 하는 곳이 바다 한가운데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포구의 황혼>이나 <보리 숭어> 두 작품 모두 리얼리티가 강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포구 사람들의 삶이 때론 거친 바다와 같고, 그 바다와 싸워 견디는 건강한 삶과 닮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보리 숭어>는 소설 전체가 강화 건평리 어장과 근처 포구다.


함지박을 가지러 가는 걸음이 또 허둥거린다. 숨이 붙어 있을 때 서둘러야 한다. 산 것과 죽은 것의 몸값이 이곳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 있을까. 살아 있다면 죽은 것의 몸값보다 세 배 이상 받을 수 있는 곳이 여기다. 장사치의 마음이 이익이 큰 쪽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이 순간 내 마음은 바구니 속 고기에 가 있을 것이다. 함지박을 주욱 늘어놓고 바구니 속에 든 고기들을 선별한다. 우선 힘 좋고 적응력 좋은 숭어를 수족관에 쏟아 붓는다. 입을 뻐끔거리고 누웠던 녀석들은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힘차게 자맥질을 한다. 지난 주말 장사가 잘 돼서 거의 비었던 수족관에 생기가 돈다. 광어와 도다리를 뜰채에 담아 넣어주자 수족관이 그득하다. 허리를 한 번 펴는 시점이다.
수족관에 들어가기엔 너무 커다란 광어 다섯 마리는 함지박 차지다. 5킬로는 족히 넘을 이 녀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화를 건 남편의 목소리가 갓 잡은 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시방 바로 건평으로 와. 고기 넘겨주고 물 따라 다시 나갈라니까 빨리.”
고기가 많이 들었구나 생각했다. 배에서 자나 뭍에서 자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남편이었다. 서로 다른 잠자리에서 깨어났건만, 아침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안부 하나 없이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별로 서운하지 않은 걸 보면 이젠 정말 한 몸이 된 건가 싶기도 했다. 건평에 도착해 보니 쏘내기를 타고 온 남편이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물 바뀔 때가 되어 그런가, 광어랑 도다리가 많이 들었어. 싱싱할 때 가져가라고…….”
고기가 많이 든 날이면 남편의 검은 얼굴조차 환해 보인다. 이번 사리는 물살이 셀 것 같아 다음 물엔 그물을 걷어야겠다고 했다.


 
배가 들어오고 횟감을 받고 하는 광경이 활기차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이 순간 내 마음은 바구니 속 고기에 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상인의 진심이 읽혀 좋다. 삶이 그대로 광어나 도다리처럼 싱싱하다.
 

제일 큰 광어 한 마리가 사각 함지박 하나를 채우며 들어앉는다. 조금 작은 것들은 큰 함지박에 함께 넣고 물을 채운다. 킬로그램 당 3만원이니 오늘은 광어와 도다리만으로도 돈이 될 성싶다. 물이 차오르자 바다에라도 다시 돌아온 듯 큰 함지박 속 광어 한 놈이 배를 쓱 밀며 유영을 한다.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 한 번에 함지박 턱을 훌쩍 넘는다. 시장 통로 한가운데서 퍼덕거리는 광어를 보고 동진호의 기옥이 한 마디 했다.
“우리 것도 크다 했는데, 형님네 건 더 크네에!”
동진호도 고기가 많이 든 모양이다. 뒷말을 길게 뽑는 기옥의 목소리가 찰지다. 좋은 물건 많으면 절로 힘이 나는 것 또한 장사치의 생리. 퍼덕거리는 광어가 꼭 어린 아이를 안은 것처럼 묵직했다.


 
‘좋은 물건 많으면 절로 힘이 나는 것 또한 장사치의 생리’처럼 읽는 독자도 찰진 기옥의 목소리처럼 신이 난다. 함지박 안을 차고 나올 듯 펄떡이는 광어를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농사도 그렇지만 바다도 너무 가물면 재미가 없다. (중략) 작년, 재작년. 늦여름 비로 육지에선 물난리를 겪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 비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민물이 다량으로 흘러드는 바람에 바닷물 농도가 낮아져 새우들이 맘껏 살을 찌운 것이다. 통통해진 새우들은 그물질 몇 번이면 금방 한 배에 가득 차곤 했다. 살 오른 새우는 짠맛이 적고 육질이 좋아 사람들이 선호했다. 유월에 담근 육젓만큼 새우젓 상태도 좋았다.
새우 잡이는 생각만으로도 신바람이 난다. 추석 지나 슬슬 그물에 들기 시작하는 새우는 김장철 전후로 바다 속을 완전 장악한 듯 보인다. 일 년간 이 어시장에서 파는 새우젓이 어림잡아 한 가게 당 200드럼. 가게마다 200드럼을 우선 창고에 쟁여놓고 나머지는 수협공판장에 공매로 내놓는다. 여자가 배에 오르면 재수가 없다는 남편이지만 가을 새우철이면 어쩔 수 없다. 배 위에서 남자들끼리 해 먹던 밥시간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아 올케까지 동원해서 저녁 장사가 끝나면 건평 포구로 트럭을 몰았고, 쏘내기에 실려 배로 내달렸다.
바다 전체가 새우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네 시간 만에 건져야 할 그물을 두 시간 만에 세 시간 만에 건져 올리느라 남편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물을 들어 올려 새우를 털어놓으면 갑판위에서는 젓을 버무려 통에 담았다. 우리 배에서만 벌써 오 년째 일하고 있는 김 씨의 손놀림은 달인 열전에 나가도 될 만큼 빨랐다. 드럼통에 사료부대를 깔고 그 위에 대형 비닐봉지를 넣는 일은 나처럼 키가 작은 여자들에게는 무리였다. 사료부대를 깔지 않으면 젓이 금방 물렀다. 상품의 질은 곧 돈. 손이 더 가더라도 품질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겨우 사료 부대 몇 장 깔고 비닐 한 장을 깔았을 뿐인데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버렸다.


 
바다 위의 노동은 고되다. 고된 만큼 기쁨도 크다. 한철 몰리는 새우를 놓칠 수 없다. 잡는 족족 돈이 되니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새우를 절이는 과정까지 소설 속에서는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이렇게 포구는 때에 따라 새우를, 광어나 우럭을, 꽃게를 잡아올리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크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나와 기옥이네, 그리고 광명호 형님. 이 세 인물 모두 사연이 있다. 배를 부리고, 포구에서 횟감을 파니 돈은 적지 않게 만지는데 그렇다고 삶도 순탄한 건 아니다. 나는 공장 프레스에 손가락 네 마디를 잘린 보상 값으로 이 포구에서 배를 부리고 장사를 하게 되었고, 기옥이네는 어이없이 남편을 잃고 시동생이 배를 몰고 물건을 대주어 장사를 하고 있다. 광명호네는 아들이 집을 나가 심란한 상태이다. 장사를 하다보면 좋은 물건에 욕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 게다가 옆집만 장사가 잘 되면 마음이 썩 편할 리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샘 중에서도 장사 샘이 최고라고 했다. 제일 친하게 지내는 기옥이네건만 그 집에 고기가 많이 들고 우리가 적으면 내심, 심사가 꼬이는 게 사실이다. 그 집 가게는 팔 물건이 잔뜩 쌓여있고 우리 가게는 파장같이 쓸쓸하면 자연 맥이 풀린다. 그럴 땐 몰래 남의 물건이라도 받아서 팔고 싶어진다. 하지만 규칙위반이다. 이 시장에선 자기 배에서 잡아 온 생선만 자기 가게에서 팔기로 되어 있다.

 
때마침 기옥이네 시동생이 가져다 준 보리 숭어가 있었고, 광명호 형님은 은근 보리 숭어를 탐내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게다가 기옥이네는 단골이 나타나면서 보리 숭어며 꽃게, 도다리 광어까지 싹쓸이로 가져간다. 거기다 우리 가게 역시 매상이 좋았다. 문제는 광명호 형님네였다. 물건도 없었고, 장사도 안 된 것이다.
점심을 먹으며 술 한 잔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술 취한 광명호 형님이 기옥이네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광명호 형님은 작정이라도 한 듯 기옥의 상처를 헤집었다. 평소 말이 없는 것과는 달리 술을 마시면 그렇게 꼬부장했던 마음을 드러내는 형님이라 시장 사람들은 술 취한 형님 곁을 피했다.
“아따, 남편 잡아 묵은 주제에 어른한테 말대꾸하는 저 상판 좀 보소. 조 앙다문 입으로 남편을 얼매나 다그쳤을까이. 에구, 죽은 놈만 불쌍하지. 지 여편네는 살아서 어느 놈하고 붙어먹는지도 모르고…….”
기옥이 파르르 떨며 눈에서 불을 내쏘았다.
“내가 어느 놈하고 붙어먹는지 봤소? 허깨비같은 영감하고 살더니 맨날 붙어먹는 얘기만 해쌌네. 내가 누구하고 붙어먹었는데? 남세스럽게 다 늙은 여자가 하는 말이라고는…….”
삿대질을 하며 덤비는 기옥을 가로막았다. 밖에서는 형님을 뜯어 말렸다. 하지만 말리면 더 타오르는 것이 싸움이다. 형님은 끌고 가려는 사람들을 밀치더니 히죽 웃음까지 흘리며 기옥의 심사를 부추겼다.
“오메, 저런 저 잡년 봐라이.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아따, 그럼 객지에서 그리 떠돌던 시동생이 과부 형수 뭐시 좋다고 밤새 고기 잡아다 날라 쌌겠냐? 늙은 시어메 잠 든 사이 뭔 지랄을 하는지 누가 알아? 봤지? 다들 봤지? 형수 바라보는 고 시동생 눈빛 말여. 참말 묘하대. 아침마다 고기 들어다 주는 선주 있냐고…….”
장단까지 맞춰가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형님을 보며 기옥이도 지지 않고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저런 심보를 갖고 있으니 어느 자식이 집구석에 붙어 있겠노? 아무리 억만금을 벌면 뭐해. 살아 있는 가족 건사도 몬하는데. 내 그짝 막내아들이 왜 행방불명이 됐는지 알겠구마는. 안 봐도 비디오네.”
저 년이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나? 네가 뭔데 내 금쪽같은 아들을 들먹여 이년아? 광명호 형님이 달려들어 기옥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금쪽같은 아들 좋아하네. 나이가 무슨 벼슬이야? 왜 말끝 마다 욕질이야? 누군 욕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알아? 기옥도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서로 좋았던 사이라 남모르는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이라 싸움이 시작되자 가장 아픈 곳을 헤집는다. 거친 싸움은 광명호 아저씨가 나타나면서 끝이 난다.
 

“이, 그 놈 없어진께 정신도 사납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니라……. 오늘 온다는 연락 받고 그물을 내렸구만. 여섯 매 사는 물때라 그란가. 보리 숭어가 들었더라니께.”
광명호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었다. 역시 어부는 고기가 들어야 마음이 후해진다. 형님을 집에 데려다 주고 이제야 수족관에 넣으려고 차에서 내린 것이라 했다. 바구니 속에서 숭어가 퍼덕거렸다.
“진작 가져오셨으면 오늘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내가 또 중얼거리자 아저씨가 대답한다.
“미안하게 됐구만. 물살 바뀌면 그물 내려놓고 올라고 그랬제. 그새를 못 참고는 여편네가……. 이제 문 닫고 들어갈 것이지라? 이거 몇 마리 떠 갖고 가서 시엄니랑 드시게라. 여게 숭어보단 맛이 있응게.”
광명호 아저씨가 내 몫까지 여섯 마리를 내려놓았다.


 
어부는 고기가 들어야 마음이 후해진다. 압권이다. 기옥이네와 광명호는 내일 서로 계면쩍게 화해를 할 것이고, 같이 점심을 먹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흐르게 돼 있으니까.
나 역시 매운탕거리를 준비해서 동생네를 찾아갈 준비를 한다.


가게 앞엔 빗줄기가 굵다. 이렇게 쏟아지려고 그리 비 마중이 요란했던가. 비는 벌써 들판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이 비로 동생네 포도나무는 갈증을 면할 것이다. 이제 모내기 걱정도 없어질 것이고 당분간 나도 고추고랑에 물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건평 포구에 나와 서 있는 남편 곁에 노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내가 다 쌌는데 뭘 또 갖고 왔시꺄?”
차 뒤에 실은 스티로폼 박스가 민망해 공연히 눈까지 샐쭉거렸다.
“마침 그물에 참숭어가 들었드만. 이 바다에선 잘 안 나는 것인디 말시. 요놈 먹고 나도 오늘 힘 좀 써 볼까 허고…….”
남편은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들떠 있는 마음을 내보인다. 그 귀하다는 보리 숭어가 아침과는 달리 지천이다. 느물스럽게 웃는 남편에게 자극을 받은 걸까. 비를 맞은 숭어들이 바구니를 훌쩍훌쩍 튀어 넘는다. 알을 낳을 곳을 찾아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는 숭어를 쫓는 남편의 모습이 아직은 날쌔다.
눈 끝을 잔자름하게 좁혀 먼 바다를 넘어다본다. 하늘과 맞붙은 회색 공간, 바다 위에도 여섯 매 물살만큼이나 실한 비가 가득하다. 라디오에서는 이 비가 모레까지 이어질 거라고 한다. 이번 비는 단비를 넘어 약비라고들 했다.

 

이번 소설은 인용이 많았다. 어쩔 수 없었다. 포구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소설 전 편을 소개하고 싶기도 하다. 그만큼 배를 모두 사람들, 포구에서 횟감을 파는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약비가 내려 온갖 생물을 살찌우듯, 소설 한 편으로 들여다 본 포구사람들의 삶이 구체적이고 건강하고 활기 넘쳐 고맙다. 강화 건평리 쪽이 아니더라도 어느 바닷가, 어느 포구에 가게 되면 이 소설 한 자락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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