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일제강점기 역사, “부끄러워 말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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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제강점기 역사, “부끄러워 말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 윤성문 기자
  • 승인 2017.03.08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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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강제동원 역사강연회, "9살 아이도 공장에 끌려가"


 

일제강점기 인천지역에서 벌어졌던 강제동원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이 열렸다.
 
‘인천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는 7일 오후 민주노총 인천본부 교육실에서 강제동원 역사강연회 ‘인천과 아시아태평양 전쟁경험’을 개최했다.
 
이날 강연회의 강의를 맡은 정혜경 박사는(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 조사과장) 일제강점기 인천지역에서 일어난 강제동원 현황과 비참했던 노동자의 삶을 추적했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인천지역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위한 군수공장지대로 활용되어 왔다.
 
그가 조사한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현황을 보면 인천지역은 103개소의 현장이 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그중 공장이 58개로 단연 압도적이었다.
 
인천지역 안에서 부평은 남선 최대의 군수기지(북선은 흥남)였다. 분지의 지리적 특성상 안개가 심해 연합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고, 항만과 철도시설이 인접해있는 인프라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평의 대표적인 군수기지는 인천 조병창이다. 당시 명칭은 인천육군조병창 제1제조소로 현재는 미군기지 캠프마켓이 자리하고 있다.

 


정 박사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았던 부산시민공원을 예로 들며 “부평미군기지도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대일항쟁기위원회에 따르면 일제는 남자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들도 마구 공장에 투입했는데, 평균연령은 13.9세였으며 최소연령은 9세에 불과했다.
 
위원회는 2015년 말까지 조사결과 강제로 노동했던 인천지역 할머니 32명을 찾아냈는데, 이들에게 전해들은 당시 증언은 끔찍했다.
 
작업 중 졸았다는 이유로 감독관이 막대기로 눈을 찔러 시력을 상실한 경우도 있었고 사고로 허리가 골절되기도 하는 등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가혹한 삶이었다.
 
정 박사는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 생활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기억하고 찾아보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감추는 등 피하려는 사람이 많다. 어두운 역사를 감추고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며 “올바른 역사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전쟁 없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感감動동(느끼고 실천하기)를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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