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 길 된 강화 해안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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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선 길 된 강화 해안 ‘평화의 길’
  • 장정구
  • 승인 2024.04.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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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 해안을 걷다]
(2) 강화 해안의 철책선
불과 몇년 사이 강화대교 난간이 촘촘하고 높다란 펜스로 변했다
불과 몇년 사이 강화대교 난간이 촘촘하고 높다란 펜스로 변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248km 철책선,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장벽
언제쯤부터인가 강화대교 위 양쪽 난간이 흰색의 촘촘하고 높다란 팬스로 바뀌었다. 2018년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이하여 강화에서부터 고성까지 'DMZ 평화의 손잡기'를 했던 2019년 4월 27일까지만 하더라도 다리 위에 야트막한 난간 너머로 염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높다란 팬스가 갑갑하고 위압적이다. 
강화대교 아래 더리미포구에서부터 강화도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교동대교를 지나 창후리포구까지 철책선이 길게 이어진다. 장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철책은 2중 또는 3중이다. 해안으로 둥근철조망이 있고 제방 위에 높다란 철책이 두 줄로 이어진다. 높이 5미터가 넘는 제방 위 두 줄 철책은 일정 간격으로 나란하다. 마름모 모양의 억센 철망은 아기 손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 Y자 모양으로 벌린 철책 위에는 둥글고 날카로운 철조망을 또 둘렀다. 일정한 간격마다 기둥이 있고 감시장비와 라이트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철책 안쪽으로는 자전거도로가 있고 왕복2차선 자동차 도로다. 그 뒤로 수로와 농로 그리고 논이다. 강화의 ‘평화의 길’은 그렇게 철책선 길이다.

강화대교와 연미정 사이에는 염주돈대가 있다. 길가 작은 이정표를 놓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해안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150미터 정도 산을 올라야 하는 곳이다. 초입에는 데크 계단이 있지만 대부분 낙엽쌓인 흙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미끄러워 나뭇가지라도 잡으려다 놀란다. 녹슨 철책이 나뭇가지와 엉켜있다. 정상부터 돈대까지 이어진 철책의 모습은 녹이 많이 슬었지만 해안도로의 철책과 거의 똑같다. 군용이다. 해안으로 도로가 생기고 철책선이 해안도로 밖으로 전진하면서 옛 철책은 버려진 것이다. 접경지역의 해안과 산을 다니다 보면 방치되는 철책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해안도로가 널찍하게 포장되면서 더 견고한 철책이 생겼다
해안도로가 널찍하게 포장되면서 더 견고한 철책이 생겼다
강화 평화의 길은 철책선 길이다
강화 평화의 길은 철책선 길이다

 

철책(鐵柵)은 쇠로 만든 울타리, 철책선은 철책으로 이어진 선이다.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의 철책은 철조망이다. 철조망의 사전적 의미는 ‘가축을 가둬놓거나 외부인의 접근이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유자철선(有刺鐵線)으로 된 울타리’이다. 뾰족한 철사, 최근에는 면도날 같은 칼날이 촘촘하게 달려 있다.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손을 베거나 옷단이 터지기 쉽다.

‘사단장 승인 후 출입’, ‘지뢰’, ‘경고 접근금지’
철책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 바탕 노란 글씨가 선명한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여러 경계선이 있겠지만 2중 3중 철책으로 물샐틈없이 철저하게 가로막은 것은 아마도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철책선일 거다. 그런데 200㎞가 넘는 비무장지대의 철책선을 직접 제대로 본 사람은 드물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철책은 군사시설보호를 위해 군부대 등의 주변에 설치한 울타리 정도다. 비무장지대 철책은 대부분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골짜기이고 민간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민통선 지역이다 보니 현장 근무 군인이 아니면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간혹 남북 간 상황변화가 있으면 언론을 통해 제한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철책선을 한강하구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한강하구에서 보는 철책선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 철책이 아니라 한강하구 중립수역 남쪽 민간인 통제선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1967년 9월 국방부가 휴전선에 목책 대신 전기 철조망과 대인 레이더로 된 방책을 구축하겠다고 밝히며 쇠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철망을 쳤다고 나온다. 또 무장공비가 타고 넘어갈 수 없도록 꼭대기는 Y자 모양으로 벌려 놓고 철조망으로 둘렀단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정전에 합의하면서 협정 제1항에서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이 선(線)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비무장지대를 설정했다. 이후 여러 상황을 거치면서 군사분계선은 변함이 없었지만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는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철책선의 위치가 조정되고 철책의 구성도 바뀌었다. 일부 화해 분위기가 있었지만 철책은 더욱 견고해졌다. 연미정 아래 배수로 수문의 철망도 더욱 촘촘하고 단단해졌다. 2020년 7월, 탈북했던 사람이 다시 월북한 후 이루어진 조치이다. 원래 한강하구의 경우 민간선박은 다닐 수 있는데 점점 더 철저하게 가로막히고 있다.

 

월북사건 이후 연미정 아래 배수로 수문의 철망이 보강되었다.
월북사건 이후 연미정 아래 배수로 수문의 철망이 보강되었다.

해안철책 없앤다더니... 시비 들여 펜스로 교체
2022년 기준으로 강화와 옹진을 제외하고도 인천에는 서구와 영종도, 송도신도시까지 67km가 넘는 철책선이 있다. 인천시 등 지자체에서는 철거를 계속 요구하지만 쉽지 않다. 일부는 감시장비를 설치한 후 철거했지만 여전히 바닷가에 나아가기 어렵다. 안전펜스로 바뀐 곳도 적지 않다.
물론 희망도 있다. 어디라도 밝힐 수는 없지만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야생동물을 배려한 접경지역의 철책도 있다. 생태통로, 군인아저씨들의 야생동물을 위한 배려의 마음이 고맙다. 언젠가 철책선의 통문을 열어 마을사람들이 함께 나문재를 채취할 수 있게 한 일은 소개했다가 나중에 지휘관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접경지역에서는 칭찬도 조심스럽다. 철책 너머, 강 건너 땅이 보인다. 북한이다. 특히 쾌청한 날이면 손에 잡힐 듯하다. 생각보다 많이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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