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부두, 일상을 이어갈 힘을 얻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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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부두, 일상을 이어갈 힘을 얻는 곳
  • 공지선
  • 승인 2024.07.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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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2) 공지선 작가 - ③ 연안부두 - 아빠의 일터, 가족의 역사

매일 밤, 식탁에 앉아 볼펜으로 정성스레 하루를 기록하는 아빠의 모습은 내게 익숙한 저녁의 풍경이었다. 오늘 날씨, 엄마의 건강 상태, 일어난 일들, 혹은 차에 넣은 기름의 양까지. 길지 않지만 하루 동안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그 일지는, 그가 늙어갈수록, 내가 어른이 돼 갈수록 책장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매년 연말이 되면, 아빠와 나는 손을 잡고 문구점에 가서 다이어리를 구매하곤 했다. 매번 다른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고르는 나와 달리 아빠는 늘 ‘양지다이어리’를 고집하셨다. 새 다이어리를 구입하면, 아빠는 지난 해 일지의 첫 장에 붙어 있는 사진을 떼서 새 일지로 옮겨 붙이셨는데, 그 사진에는 커다랗고 노란 중장비 앞에서 당당히 포즈를 취한 젊은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옮기며 아빠는 늘 같은 글귀를 적었다.

 

'YOU' oil on canvas 130.3x193.9cm 2019
'YOU' oil on canvas 130.3x193.9cm 2019

 

“삶

죽으면 죽었지

지금은 절대

죽을 수 없는 것.”

 

아빠는 연안부두에 위치한 바다골재 채취 회사에서 중장비 기사로 오랜 세월을 근무하셨다. 부두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너머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끊임없이 변하는 해안선과 그에 맞춰 움직이는 중장비들로 가득했다. 연안부두는 인천항의 일부분으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어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연안부두는 산업의 핵심 기지로 자리 잡았는데, 해안선에 늘어선 중장비들과 배들은 그 시대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듯했다.

 

〈스스스스쳐지나가는 풍경〉 가변설치,단채널 비디오 30min 2022
〈스스스스쳐지나가는 풍경〉 가변설치, 단채널 비디오 30min 2022

 

딱 한 발자국, 바다와 중장비 사이의 거리는 그 정도였다. 어린 시절, 나는 아빠가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혹여나 어둠이 침잠한 바다 아래로 그가 떨어져 버릴까 늘 조마조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날의 내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육지들을 가로막는 검은 물결을 보고 있으면, 그 깊은 심연에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와 나를 끌고 갈 것만 같았다. 썰물에 드러난 갯벌들은 질척한 손길로 발목을 잡아당겼고, 작은 호미로 갯벌을 파헤치면 튀어나오는 생명체들은 당시 내 눈에 조금은 기괴해 보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섬들은 신기루처럼 닿을 수 없는 먼 곳처럼 느껴졌다. 종종 걱정 어린 말투로 불안을 내비치면, 아빠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바다와 중장비들 사이를 누비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셨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잠기는 시간_철썩> 단채널 비디오 8min 

 

연안부두는 단순히 아빠의 직장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추억과 역사가 녹아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부두 인근에 위치한 맘모스 회 센터는 우리 가족의 단골 외식 장소였다. 아빠의 회사에 들리는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나 둘, 반찬이 나오고 식사가 시작되면 아빠는 마치 구전 동화를 읊듯 이곳에서의 추억을 들려주곤 하셨다. 엄마와의 연애 시절 이야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식전으로 나오는 전복죽을 조용히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던 나를 보며 ‘쟨 도대체 뭐가 되려나’ 하셨단다. 지금은 그 손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작업을 하고 있다.

비번이 되면 부두를 출발하는 배를 타고 섬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지금에야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며 영종도가 개발되고 간척으로 인해 육지가 넓어지면서 무의도가 다리로 연결이 되었지만, 과거 인천의 섬들이 오로지 뱃길로만 연결되던 시절이 있었다. 차를 타고 항구까지 가서 카페리를 타고 무의도로 피크닉을 가는 건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지선이 기억나?”로 시작하는 이 짧은 여행의 묘미는 매점에서 밀키스와 새우깡을 사 먹는 것이었다. 낮은 소리를 내며 바다를 힘차게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카페리의 계단에 서서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엔진의 진동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한 배를 타다_ 트레싱지에 잉크인쇄 10x15cm 2024
한 배를 타다_ 트레싱지에 잉크인쇄 10x15cm 2024

 

그 시절의 연안부두는 단순히 아빠의 일터나 우리의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삶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곳이었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그때의 아빠처럼 매일을 살아가며 문득문득 연안부두를 떠올린다.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 해안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묵묵히 일하던 아빠의 모습, 그런 날이면 나는 다시금 일상을 이어갈 힘을 얻는다.

‘삶, 죽으면 죽었지 지금은 절대 죽을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걸 삶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2
〈우리는 그걸 삶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혼합재료 가변설치 2022

 

지난날에는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문장이 다시금 새로이 다가온다. 굳건한 의지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사랑이 담긴 그 말은 되뇐다. 아빠의 그 글귀는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그의 삶을 담은 깊은 메시지였다. 그가 적어 내려간 일지 속 시간들은 나에게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오늘도 새로운 페이지를 적어 내려가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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