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작은 것을 나누는 기쁨, 따스함이 스며있다
작은 것을 나누는 기쁨, 따스함이 스며있다
강화도 풍물시장! 상설시장이지만, 끝 날짜가 2일과 7일에는 오일장으로 난장이 섭니다. 강화풍물시장은 상설시장과 전통 오일장이 공존하는 셈이죠. 장이 서는 날은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강화도를 찾는 관광객들까지 차량이 밀려들고 많은 인파로 떠들썩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 가까운 마트나 편의점 같은 곳에서 물건을 사는 게 편리해졌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가끔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시골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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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처럼 아내와 함께 강화 오일장에 나갔습니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서 그런지 장터가 스산합니다. 손님도 여느 때보다 크게 붐비지 않구요. 사람들이 많아야 장꾼들도 신이 날 터인데, 좀 한가한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이곳저곳 온갖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강화도 특산품인 속노랑고구마, 순무를 비롯한 농산물과 어물전, 옷가게 등에서도 물건을 쌓아놓고 손님을 부릅니다. 특히, 지역 농민이 가꾼 것들을 직접 거래하기 때문에 싱싱하고 값싼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소소한 데 깃든 정
온갖 잡곡을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겁나게 춥네, 추워"라며 연신 손을 비빕니다.
우리 부부는 발길을 멈췄습니다.
"할머니, 흰콩 있어요?"
"저기 있제. 내 농사지은 거야. 어따 쓰시게?"
"콩 쑤어 묵은된장과 섞으려고요."
"이걸로 하면 딱 좋지!"
할머니는 첫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손님이라도 맞이한 듯 반가운 얼굴로 됫박에 콩을 수북이 쌓습니다. 고봉으로 올리고 또 올리고.
시골장에선 흥정하는 맛도 있고 해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얼마예요?"
"만 오천만 주셔!"
"좀 깎아주면 안 될까요?"
"이거 얼마 안 남는데…."
할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할머니, 여기 있어요." 하고 어느새 현금을 꺼냅니다. "뭘 깎으려고 해요. 우리가 좀 덜 먹으면 되지! 날도 추운데." 아내의 말에 나는 멋쩍어질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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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돈을 받아들고 까만 봉지에 콩을 쏟고, 두 손으로 담아 덤을 두 번이나 두둑이 얹으십니다. 한번 주면 정이 없다면서요. 수월찮은 양을 얹어주신 것 같아요. 아내는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라면서 깍듯이 고마운 인사를 건넵니다.
"콩을 삶아 된장에 섞을 땐 콩물을 넉넉히 잡아야 해. 삶은 콩물을 넣고 함께 버무리면 묵은된장이 풀어지면서 짠맛도 덜하고 더 맛나! 뭔 말인지 알죠?"
아내는 고개를 끄떡 끄덕합니다. 참 정감이 있는 할머니입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따뜻함
장에 오면 특별히 필요한 게 없어도 난장 구석구석을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 싼 거래가 뭐고, 시세는 어떻고, 제철인 것은 뭔가 하고 둘러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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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구경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장터에서는 주전부리 사 먹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내가 아내 손을 끌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묵과 순대, 떡볶이 등을 파는 가게에 꽂혔습니다.
뜨끈한 국물에 어묵과 함께 먹는 빨간 떡볶이가 마치 어린 시절 그것처럼 맛있습니다. 순대도 먹고 싶은데, 아직 충분히 데워지지 않아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어묵을 더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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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종이컵에 어묵과 뜨거운 국물을 담아 일어섭니다. 그리고선 콩을 산 할머니께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이거 드세요!"
"아니, 이게 뭐 다냐!"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살다 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덤도 많이 주시고, 날이 하도 추워서요.“
할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핍니다. 후루룩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니 추위가 금세 달아난다고 합니다.
'아주 소소한 것으로 사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흐뭇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하루도 같은 날은 없습니다. 오늘같이 누군가로부터 정을 받고 누구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날! 소소한 마주침 하나가 이렇게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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