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공자상 계단에 서서
신포동은 최근 젊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활발한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천 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청 주변은 많은 작업 공간과 갤러리들이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소 주춤해졌지만 크고 작은 전시와 기획전들로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이는 장소이다. 구석구석 포진한 특색 있는 카페들과 샵들,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들과 노포들의 조화로 거리 전체는 옛 도시의 예술적 정취가 물씬 넘쳐난다.
그러나 수많은 관광객들과 미식가들로 가득한 신포동은 왠지 동네 분위기가 음의 기운이 강한 곳 같다. 훤한 대낮보다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밤에 더 빛나는 곳이기도 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신포동의 낡은 목조 건물 안에서 예술의 산고로 켜켜이 시간을 쌓아 놓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화실이라는 곳을 처음 가본 기억도 바로 공자상 계단 옆 키 낮은 목조 건물에 자리한 연해국 선생님의 아틀리에였다. 연해국 선생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80년대 활발히 활동하셨던 인천미술의 대표작가셨다. 가끔 공자상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얼마나 많은 무명의 작가들이 이곳 신포동에서 예술적 포부로 만개했다가 기억해주는 이 없이 쓸쓸히 사라졌을지, 먹먹함에 생각이 잠긴다.
신포동 긴 골목길로 8.90년대 빽빽했던 2층의 적산 가옥들은 대부분 술집으로 개조되거나 드문드문 식당과 음악 감상실과 같은 카페들로 꽤 화려했었다. 하지만 술집 카페들이 줄어들면서 한동안 썰렁한 잿빛 거리로 바뀌고 오래되고 낡아진 건물의 재건축이 필요해지자 도시 재생 사업이 시작되었다. 최근 리모델링된 갈색의 목조 건물들과 정비된 골목상권들이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차이나타운으로 유입된 관광객들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오랫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탄트라’나 ‘바그다드 카페’, 재즈 라이브 공연장 ‘버텀 라인’ 등이 있어서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신포동 골목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우산으로 가린 듯 한 그늘’이라는 의미의 ‘음예(陰翳)’ 라는 단어를 제시하며 일본의 전통 가옥에 깃든 이끼 낀 어두움의 정서적 안정감을 찬양했다. 신포동은 바닷가의 습한 기운을 음악과 그림, 풍류와 운치로 승화시킨 인천 예술의 대표 얼굴이다. 이곳이 더 커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은 채 지금처럼 음악과 예술가들의 혼으로 가득한 골목으로 지켜나가기를 염원해 본다.
2020년 9월 14일
글, 그림 박상희
공간을 독특한 색감으로 잘 담으셨습니다.
박상희작가님의 이 질감이 저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