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작만 창대한 박물관 건립 - 배성수 / 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박물관 운영에 진심인 두 곳의 자치구가 있다. 중구와 계양구가 그들이다. 오해는 마시라. 여기서 진심은 정성을 다한다는 뜻의 진심(盡心)이 아니라 ‘이익에 눈멀어 더럽혀진 마음’이라는 진심(塵心)이다. 두 곳 모두 처음에는 진심(眞心)으로 박물관 건립에 임했겠지만, 지금의 운영상황을 보고 있자니 진심(瞋心; 왈칵 성내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진심(盡心)으로 시작한 박물관 건립
박물관 건립에 먼저 진심을 보인 곳은 중구였다. 2006년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근대건축사전시관>의 문을 열었다. 방치되고 있던 근대건축물을 전시관으로 활용한 인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관심이 쏟아졌고, 이에 힘을 얻은 것인지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과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건물을 활용해 <개항박물관>과 <짜장면박물관>을 연달아 개관시켰다.
중구의 박물관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무의도 <섬이야기 박물관>에 이어 <영종역사관>을 건립하면서 국비 지원이 어려워지자 전액 구비로 건립하겠다는 진심을 보여 마침내 2018년 개관시켰다. 그해 9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을 재현하여 <중구 생활사박물관>의 문을 열었고, 작년 7월에는 <누들플랫폼>을 개관하기도 했다. 전시관 성격을 지닌 동화마을 <트릭아트하우스>와 <한중문화관>을 포함하면 중구에만 모두 9개의 전시관이 존재하며, 그렇게 보자면 중구는 인천 10개 구‧군 중 가장 많은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박물관 건립에 대한 진심은 계양구도 만만치 않았다. 2003년부터 10차에 걸쳐 실시한 계양산성 발굴조사 결과, 논어의 구절을 적어놓은 삼국시대 목간을 비롯해 고대 계양지역의 역사를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계양구는 계양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성곽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학술회의와 세미나를 통해 그 가치와 의미를 학계에 널리 알렸고, 이러한 노력이 이어진 끝에 지방문화재였던 계양산성은 작년 5월 국가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아울러 민선 5기였던 2013년 계양구는 계양산성을 주제로 하는 구립박물관 건립계획을 수립했다. 계양산성의 역사문화 자료를 수집‧전시하여 구민 및 탐방객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박물관 건립과 운영에 강한 의지를 보인 계양구의 노력으로 총 공사비의 40%에 달하는 국비도 무난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5월 28일 <계양산성박물관>의 개관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보시다시피 두 곳 모두 시작은 창대했다. 다른 지자체와 달리 계획 단계부터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등 진심을 다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결과, 구민은 물론 인천 시민의 기대 속에서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구와 계양구가 보인 박물관에 대한 진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구청은 건립에만 진심이었을 뿐, 운영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아홉 개 전시관, 세 명뿐인 학예사
개관 후 중구에서 직영하던 한중문화관과 근대건축사전시관이 2009년 설립된 중구시설관리공단으로 위탁되었다. 그리고 처음 건립할 당시 직영을 계획했던 개항박물관을 개관과 동시에 위탁시켰고, 뒤이어 개관한 짜장면 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시설관리공단은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기 어려운 공영 주차장이나 체육시설 등을 위탁하기 위해 설립한 출연기관이다. 체육시설의 강사처럼 학예사만 있으면 박물관 운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중구는 박물관 위탁 운영을 위해 시설관리공단 소속의 학예사를 별도로 선발했고, 구청에 소속된 학예사에게는 계속 이어지고 있던 박물관 건립과 유물구입 업무를 맡겼다. 그런가하면 2018년 개관한 영종역사관은 시설관리공단이 아닌 중구에서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뭔가 뒤죽박죽 이상한 모양새였다. 구청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인지 중구에 속한 박물관 및 전시관 9개의 운영 주체를 올해 초 발족한 중구문화재단으로 변경했다. 일단, 여기저기 혼란스러웠던 박물관 운영을 일원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9개 박물관 및 전시관을 운영하는데 학예사는 단 세 명뿐. 운영주체만 일원화했을 뿐, 전문 인력의 수에는 변함이 없다. 학예사 한 명이 세 군데 전시관을 운영하는 셈이다. 규모와 상관없이 한 명의 학예사가 세 개의 전시관을 운영하기란 벅찬 일이다. 전시와 교육의 기획, 유물관리 등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는커녕 그저 전시장 유지관리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야 시설관리공단 시절의 전시관 운영과 크게 다를 것 없지 않을까?
개관 20개월 만에 위탁운영을 결정한 계양산성박물관
중구와 달리 계양구는 박물관 건립단계부터 두 명의 학예사를 선발하여 전공과 경력에 따라 전시, 교육과 유물구입, 관리 등으로 업무를 분담시켰다. 초기 단계부터 학예사가 배치되다보니 전시장 구성이나 수장고 배치 등 효율적 운영이 가능한 설계가 이루어졌고, 계양산성 출토 유물 등 국가에 귀속된 자료를 어렵지 않게 이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착공 3년 만인 2020년 5월 개관을 앞두고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개관과 동시에 문을 닫아야 했고, 방역지침에 맞춰 지금까지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해 왔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인천 최초의 개방형 수장고 견학 프로그램이나 야외 발굴체험은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고, 연령대 별로 준비했던 교육이나 학술회의는 모두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했다. 개관 이후 스무 달이 지나는 동안 당초에 계획한 대로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박물관 직원은 물론 30만 계양구민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박물관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달 계양산성박물관의 운영을 계양문화원에 위탁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개관한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박물관을, 그것도 코로나 상황으로 제대로 운영해본 적이 없는 박물관을 무슨 이유에서 위탁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박물관을 운영해 가면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위탁을 결정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내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계양산성박물관 운영 상 문제점은 코로나 19라는 외적 요인뿐이다.
이미 계양문화원 누리집에 학예사를 비롯한 직원 채용공고까지 게재된 것으로 보아 계양구는 박물관 위탁에 관한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 지은 것 같다. 이렇게 서둘러 박물관을 위탁하려는 이유가 내심 궁금하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박물관 운영 전반을 분석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석연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대한 진심(眞心), 왜 진심(塵心)이 되었을까?
박물관 건립은 지역을 불문하고 4년마다 치러지는 단체장 선거에 있어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그리고 어느 곳이나 ‘지역의 역사문화를 수집, 전시하여 지역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 주민 교육의 장으로 삼겠다’는 건립목적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을 향한 자치단체의 관심은 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불타오르고, 기공식 때 정점을 찍은 뒤 개관식을 마지막으로 차갑게 식어 버린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박물관 운영을 감당해야만 하고, 정해진 공무원 정원 내에 학예사를 포함시켜야 하는 부담감과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출연기관이나 지방문화원에 박물관을 위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박물관 운영비를 주민 생활에 밀접한 분야로 돌려 사용할 수 있고, 학예사를 줄이는 대신 그만큼의 일반 공무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출연기관이나 지방문화원의 입장에서도 조직과 예산을 늘릴 수 있는데다가 구비의 지원을 받고 있어 강하게 거부할 명분도 없다.
박물관을 위탁받은 기관이 진심으로 박물관을 운영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자치단체 직영보다 제도적으로 훨씬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 경우 자치단체가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운영비와 인건비만을 위탁기관에 지원하고, 위탁기관은 이를 다시 박물관에 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관련 부서와 직접 협의를 통해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직영 박물관에 비해 위탁 운영되는 박물관은 언제나 예산과 인력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박물관 운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박물관 건립은 물론 개관 후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이 있었더라면, 나아가 단체장이나 소속 공무원들에게 박물관은 있으나마나한 시설이 아니라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문화공간이라는 인식이 충만했더라면 이처럼 위탁 운영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인천광역시의 열 개 구‧군 중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모두 일곱 개로 그 중 박물관을 직영하고 있는 곳은 강화군과 동구 두 곳에 불과하다. 중구와 계양구를 비롯한 다섯 개 자치구는 건립 당시 직영으로 계획했던 박물관을 문화원이나 출연기관에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당연시되어 앞으로 건립될 박물관, 전시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출연기관이나 문화원에 위탁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박물관에 대한 진심(眞心)이 진심(塵心)으로 변하지 않고 진심(盡心)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