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래유산'... 연희동 감성 '독일빵집’
가끔은 빵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크로켓이나 크림빵 같은 게 생각난다. 아침엔 간편식으로 식빵에 잼을 발라 먹기도 한다. 입맛이 없을 땐 아이들처럼 햄버거도 먹고 싶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길에서 맛집을 찾다가 허름한 빵집 하나가 눈에 띈다. 간판도 화려하지 않고 밖에서 보면 골목 빵집 같다. 주차하기도 어려운 골목인데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한다.
예스러운 빵집 입구에 '서울미래유산'이란 안내 간판이 눈길을 끈다. TV에서 맛집으로 소개된 것 같지는 않은데, 미래유산이라?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를 들어가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해봤다.
서울시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 유산을 등록하여 지정하고 있다고 한다.
다채로운 공간들이 담겨 있는 북촌 한옥밀집지역이나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표적인 관광명소 남산서울타워, 대한민국 최초의 2층 교량 반포대교 등과 같이 반짝이는 보석들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즉,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향유해야 할 미래유산들이다.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후손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 같은 소중한 것들이다.
예스러운 감성의 골목 빵집
동네 작은 골목 빵집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니, 빵집에 어떤 역사와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빵집 문을 들어서자 깔끔한 진열대에 빵들이 수북이 진열되었다. 좁은 공간인데도 식빵에서부터 케이크, 햄버거 등을 비롯 추억의 빵 종류가 다양하다.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초코소라빵은 없네요?"
"지금은 없고, 조금 기다리면 10시경에 나와요."
"여기서 빵을 다 굽는 모양이죠?"
"네. 저희가 직접 만들어요."
인기 있는 빵은 일찍 동나는 듯싶다. 요즘 빵집들은 유명 프랜차이즈 본점에서 만든 빵을 아침에 옮겨 와 판다는데, 여기선 직접 바로 구워서 신선한 빵을 제공하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인 6시 반에 가게 문을 여는데, 빵이 나오는 시간에 찾아오면 따끈한 빵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서울미래유산 지정 간판이 붙어있던데요?"
"알아봐 주셔서 고마워요. 이게 2016년도에 지정되었으니 한 8년 되었네요."
서울 연희동 독일빵집은 1952년에 창업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70년도 넘은 빵집으로 4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제과점이란다.
빵집은 창업 당시 '독일빵집'이라는 가맹점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 1998년에 개인 업체로 전환하고, 개업 이후 몇 차례 이전하다가, 2013년에 현 건물에 자리를 잡아 동네 터줏대감 빵집이 되었다고. 연희동 일대에선 오래된 빵집 중의 하나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겉치장을 화려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빵집이다. 대를 이어 오랜 세월 동안 빵 장사를 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주인은 건강한 빵을 정성을 다해 만드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이스트, 즉 빵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건포도를 두 번 삶아 우려낸 물을 숙성해 만든 종반죽을 발효하여 빵을 굽는다 한다. 식빵, 단팥빵, 곰보빵, 꽈배기도넛, 찹쌀도넛 등 추억의 빵들은 이곳이 기본에 충실한 빵집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빵집의 대표 메뉴격인 식빵은 담백한 맛으로 남녀노소 가장 인기가 높다고 한다.
진열된 빵이 맛있어 보인다. 무얼 사 먹을까 고민하다가 단팥빵, 찹쌀도넛, 크로켓 등을 샀다. 오후에 다시 들러 보니 소라빵이 있다. 초콜릿과 크림이 들어간 빵이 세트이다. 햄버거도 하나 샀다.
단팥빵이 팥소와 빵의 비율이 적절하여 맛있다. 추억의 도넛은 쫄깃하다. 야채가 들어간 크로켓, 햄버거도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먹다보니 절로 '엄지척'이 나온다.
소라빵은 생각보다 우유가 많이 들어있고, 단맛이 많아 주로 아이들이 먹으면 좋아할 것 같다.
주인은 앞으로도 건강한 빵으로 손님들에게 인정받고 오래 남고 싶단다. 연희동에 오래 산 토박이 중에는 수십 년 단골로 빵집을 찾는 사람도 많단다.
70여 년을 이어왔으니 앞으로도 백 년, 아니 그 이상 손님들에게 계속 건강하고 맛있는 빵집으로 오래 남아있기를 기대해본다. 연희동 일대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미래유산의 자부심을 지켜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