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가족의 기억을 싣고 달리는, 원인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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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가족의 기억을 싣고 달리는, 원인재에서
  • 유광식
  • 승인 2024.12.02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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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41) 연수구 연수2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원인재와 승기천, 2024ⓒ유광식
원인재와 승기천, 2024ⓒ유광식

 

12월의 문턱을 앞두고 117년 만의 기록적인 11월 폭설이 내렸다. 겨울 태생인지라 눈이 내릴 때면 쌓인 눈으로 휘어진 대나무를 흔들어 못살게 굴었던 어릴 적 기억이 점점 더 짙어지면서 계절의 숭고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렇게 눈은 하염없이 내렸고, 하얀 눈꽃 세상이 우리 주변으로 가득하다. 거리에는 연말 대회 출발 신호라도 있었는지 크리스마스트리도 꽤 보이고 가마솥에서 방금 나온 고구마처럼 따끈한 노래들이 분위기를 돋우는 중이다. 감사와 격려가 담긴 각종 시상식과 발표회, 연말 모임 또한 시작되었다. 잠시 마음 펄럭이며 남쪽 연수동으로 날아가 보았다. 

 

월례근린공원 산책로에서 바라본 연수동, 2024ⓒ유광식
월례근린공원 산책로에서 바라본 연수동, 2024ⓒ유광식

 

연수구의 중심인 원인재역 인근을 빙 돌아본다. 연수구 또한 주거 지역의 상당 부분이 매립으로 계획, 건설되었다. 유독 아파트가 많다. 승기천을 사이로 연수구와 남동구(남동산단)가 자리한다. 잠시 월례근린공원에 올라 건너편 연수구를 조망하기로 했다. 월례근린공원(옛 남동공원)은 남동구의 1호 공원이다. 옛 섬이었다는 공원은 작은 동산의 모양새로, 분위기가 차분했지만 가는 길마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많았다. 오래된 정자에 올라 눈 덮인 운동장을 바라본다. 최근에 인천 닥터헬기 계류장 조성 이슈가 있었는데 소음으로 차질이 예상되는 모양이다. S자를 닮은 산책로를 두 번 돌았더니 다시 지상이다. 

 

월례근린공원 전망대에서, 2024ⓒ유광식
월례근린공원 전망대에서, 2024ⓒ유광식
눈 내린 월례근린공원 정상, 2024ⓒ김주혜
눈 내린 월례근린공원 정상, 2024ⓒ김주혜

 

남동대교를 건너면 연수동 쇼핑문화의 중심지가 나온다. 규모에 비해 좁은 입구 앞에 대형 산타클로스 트리가 설치된 스퀘어원(SQUARE1). 바로 아래편의 한 공간을 바라보니 어언 10년을 거슬러 오르게 된다. 지금은 반품 물건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바뀐 옛 공간은 당시 연수구 문화의 집_아트플러그(ART PLUG)였다. 2014년, 공공미술 2.0 프로젝트 중 <우리집 갤러리> 사업을 진행하면서 인근 아파트 아홉 가정을 각각 세 차례씩 방문한 적이 있다. 아이가 속한 가정엔 하나 같이 사진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야기들을 묶어 집의 한쪽 벽면을 가족 갤러리로 꾸며 보는 애틋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어린아이들이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소복이 쌓인 눈 사이로 옛 기억이 피어난다. 어느 집에서 해주신 기름기 쫙 빠진 부침개가 매우 맛있었다. 

 

남동대교에서 바라본 승기천 하류, 2024ⓒ유광식
남동대교에서 바라본 승기천 하류, 2024ⓒ유광식
스퀘어원 복합 쇼핑몰 입구, 2024ⓒ김주혜
스퀘어원 복합 쇼핑몰 입구, 2024ⓒ김주혜

 

조금 춥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장갑을 끼고 걷는 가벼움으로 단지 내 상가에서 단팥빵도 사고 연수구청과 경찰서를 돌아 대동월드 상가에까지 다다랐다. 혹자는 추억한다. 학창 시절 대동월드 지하 아이스링크(1994~2003)에는 학교 현장학습으로 방문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행렬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고 말이다. 지금은 슈퍼마켓이 되었고 그 시절의 아이들은 지금 부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유독 1층에 헤어숍이 많다. 겨울 간식인 떡볶이, 호떡, 붕어빵의 향기가 군침을 돌게 하는 풍경 안으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갯마루를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에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는데, 저 끝에 원인재역이 나타났다. 

 

대동월드 상가몰, 2024ⓒ유광식
대동월드 상가몰, 2024ⓒ유광식

 

지금은 인천지하철 1호선과 수인분당선의 환승역으로 기능하는 원인재역은 연수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옛 협궤열차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역 앞 승기천에 남아 있는 옛 철교를 찾아가 보아도 좋을 것이다. 철로를 달리던,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 인천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다. 지금이야 다리도 놓이고 길도 반듯하게 정비 되어 하천을 건너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지만 말이다.

 

원인재역 입구, 2024ⓒ유광식
원인재역 입구, 2024ⓒ유광식
승기천과 폐 수인선 철교, 2024ⓒ유광식
승기천과 폐 수인선 철교, 2024ⓒ유광식

 

승기천이 바다와 가까워지는 연수동에서 많은 가정이 건강하게 성장해왔다. 여전히 소중한 보금자리로 우뚝 서 있는 가운데, 단지 사이사이로 소식통 까치들이 노래하고 마을을 관통하는 수인분당선 열차가 시계추처럼 오른쪽 왼쪽을 오가며 미래 사회를 퍼 나르고 있다. 탁 트인 하늘에 비친 깊은 바다처럼, 펼쳐지는 마음에 흡족한 기분을 만끽한다. 한 바퀴 가볍게 도는 여정에 기억, 변화, 바람들이 교차 환승한다. 

 

눈 내린 원인재, 2024ⓒ유광식
눈 내린 원인재, 2024ⓒ유광식

 

열두 달 중 열한 장을 뜯어 마지막 달력 한 장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아갈 2025년도 기대가 크지만, 여며둘 2024년 뒤쪽을 살피며 잘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지난 기간 걸었던 장소들 덕분에 인천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이런 기회가 고맙기까지 하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이 있다면 다음 해 계획에 큰 차질은 없어 보인다. 

눈이 내렸으니 곧 혹독한 겨울 추위가 올 것이다. 올해는 안방 창문에 이중 단열 뽁뽁이를 붙였다. 가뜩이나 치솟는 에너지 기후에 대응해 몸으로 이겨낼 방법을 궁리하고 실천할 것이다. 연수동의 마을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수 로제의 <APT.> 노래를 듣자 하니, 연수의 아파트 집 하나하나가 뽁뽁이처럼 이어 붙어 겨울을 함께 나는 대동세상大同世上 큰잔치가 벌어진 건 아닌지 가락이 심상치 않다. 부디 전쟁 나부랭이 같은 건 서둘러 끝내고 조금씩 나누어 돕는 따뜻한 연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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