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정민나 /시인
인천 시내에서 거주하다가 얼마 전 강화도로 귀농한 시인이 있다. 그는 오십 평생 아름다운 치장을 위해 웨이브나 멋스러운 퍼머 머리 한 번 하지 않았지만 미소 하나만큼은 금쪽같은 자연산 시인이다. 필자가 서평을 쓰기도 했던 그의 첫 시집엔 농부시인으로서 드러나는 그의 열정적 삶이 숨어 있다.
웬만한 것들은 소금물을 뒤집어쓰면 숨을 죽이지만
볍씨를 고르는 일엔 소금물이 제격이다
소금물엔 알맹이를 추려내는 힘이 있다
키질이 잘된 볍씨도 그 속에 넣으면 영락없이 뜨는 것들이 있다
고 작은 껍질 속에 좁쌀만큼만 틈이 있어도 종자가 될 수 없다고
꽉 찬 속으로 바닥까지 가라 앉아 짠 맛을 보지 않고는
모가 될 수 없다고
쭉정이들을 모조리 밀어낸다
알맹이들만 고요한 세상
초봄의 햇살이 생강나무 꽃을 넘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금방이라도 지느러기가 돋을 듯 또록한 것들이
소금물을 뒤집어쓰고 순간의 경계를 넘고 있다
폭염을 잘라내고 폭풍을 치받을 힘 쟁이고 있다
김종옥 -「소금」 전문
우수가 지났으니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단단하게 얼었던 땅이 풀리고 싹이 움트는지 공기의 냄새와 흙빛이 달라진 듯도 하다. 농부시인도 볍씨를 고르며 분주해질 것이다. 쭉정이를 모조리 밀어내고 있는 소금물 속에서 또록한 눈을 뜨고 있는 볍씨처럼,
농사를 지을 때에나 시를 쓸 때 농부 시인은 소금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치열하다. 그런 모습을 그의 시에서 엿볼 수 있는데 “뻣뻣하게 서서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 / 너무 햇살이 퍼져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 / 너무 흐린 날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 / 바람이 부는 날도 피가 보이지 않는다” 라고 쓴 이 시는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순간의 경계를 넘는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꿈과 현실을 함께 가꿔 가는 시간이 버겁다고 해서 그 중 어느 하나를 내버려 두고 치우친 한 정체성만으로만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그는 종종 내 비친다. 도회적인 문화를 벗어나 농촌의 현장에 살면서도 그곳에서의 감회를 시인은 여전히 시적인 감성으로 노래하고 있다.
베란다 창문으로 날개달린 개미들이 기어오르고 있다 / 무거운 듯 축 늘어진 날개를 지고 저들은 지금 막, / 순한 양떼가 지나가는 하늘, / 새 한 마리가 파고드는 하늘을 가려는 것이리라 // 나는 숨소리에도 날아갈 듯한 곤드레 씨앗을 고르고 있다 / 내 손바닥 속 이랑들은 너무도 메말라서 / 한껏 좁혀보아도 빛살같이 퍼져 자꾸 떠오르려 한다 // 중략 // 반짝이며 날아올랐던 씨앗 하나 / 먼지 쌓인 바닥에 나려 굴러 간다
김종옥 -「비상」, 「非常」 부분
“곤드레 씨앗을 고르고 있”는 그녀는 이 시에서 현실적으로 그 어떤 미적이고도 초월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시인으로서 현실에 압도당하는 일은 무거운 듯 축 늘어진 개미 날개를 연상시킨다. 글 짓는 일이나 농사짓는 일이 ‘짓는다’는 생산적인 의미에서 같겠지만 농부 시인에게 있어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요 따라서 내부와 외부가 상호 내통할 때에만 반짝 빛나는 생명이 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시인으로 살면서 일상의 총체적인 실체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밤중 느닷없이 바람이 휘몰아친다 / 팽팽하게 버티던 비닐하우스 한쪽이 송두리째 뽑혀 날린다 / 문짝을 후려치고 가둥을 잡아 흔들어대며 퍼덕인다 / 하늘이 쩍쩍 갈라진다 / 저 얼굴도 없이 미처 죽은 귀신처럼 날뛰는 것은 무엇인가”
김종옥 ― 「바람」 부분
농부 시인으로서 충실한 인간성의 교직을 구현하는 그는 시시때때로 출몰하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농사짓는 일이 오로지 단순 반복적이고 손을 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도 ‘새 한 마리 파고드는 하늘’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날아오르는 곤드렛 씨앗’과 같은 기쁨이 된다는 것을 그는 확실히 보여주는 詩人이다. 몸과 마음이 접속하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암초와 여울목은 위태로워도 이 시대 사이렌을 돌아 나오는 사람은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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