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뺏기고 눈물 뺏기고 표정까지 뺏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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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뺏기고 눈물 뺏기고 표정까지 뺏긴
  • 김명남
  • 승인 2013.05.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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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김명남 / 시인
우중출~2.JPG
 
 
집 뒤편 계양산을 본다. 가지에 생기 있게 일던 봄물은 어느새 푸르른 잎새를 키워냈다. 가지에 새순이 돋고 커다란 잎사귀가 될 때까지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을 것이고 비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눈부신 오월, 다 컸다고 까불고 돌아다니는 잎새를 본다. 푸르름을 앞세워 흔들리는 잎새의 허세를 본다. 그 푸르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리 없는 잎새는 또 다른 푸르름을 엮느라 오늘도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버젓이 직장생활 하는 나는 대체로 쌀과 김치를 고향 부모님께서 보내오는 것으로 생활한다. 가끔씩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그저 쌀은 떨어지지 않았느냐, 김치는 아직도 있느냐와 같은 질문에 시달린다. 예,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라고 대답해야지만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 간다. 그런데 김치나 쌀이 떨어질 때를 용하게도 아시고는 언제쯤 부쳐줄 거니까 잘 받으라고 한다.
 
작년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이 밥 먹다가 갑자기 걱정이 된 건지 궁금해진 건지 뜬금없이 물었다.
“아빠, 난 이 다음에 누구한테 김치 갖다 먹어?”
지금 우리 부부가 시골에서 갖다 먹는 걸 보면서 아마 자기 딴에도 엄마가 해줄 것 같지 않으니 물었던 것이리라.
“글쎄, 아무래도 엄마한테는 못 얻어먹을 것 같고, 니 장가 가서 장모님한테 갖다 먹어야겠다. 아님, 할머니 오래오래 사시라고 해서 할머니한테 김치 해달라고 하던지.”
이게 내 대답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대답이다. 내가 아이한테 이걸 말이라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장가 갈 나이가 되면 우리 어머니는 아흔에 가까운 연세가 될 텐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되니 올해 칠순을 맞이한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고생이지 싶다.
 
   
宗 家
 
도순태
 
 
 
대문 안 빗장은 늘 걸려 있었다. 늙은 감나무 허리 휘감은 흙담만 바람 서성이는 넓은 바깥 마당을 지키고, 측백나무 손바닥 흔드는 저녁, 안개라도 내리면 고즈넉한 종가宗家 마당까지 내려온 하늘이 시든 감국甘菊 향기에 온몸이 젖었다. 측백나무 한 쌍이 지키는 중문 계단 올라서면 안채 가득 마른 풀잎 같은 세월이 눕는 소리, 뒤 곁 대숲 몸 부비는 아픈 시간 등에 지고 앉은 아홉 씨앗 거느린 종부宗婦는 식은 아궁이 그 안에 재 같은 날들이 풀썩이며 스며드는 훈기 없는 방에서 동백향 나는 빗질을 되풀이했다. 주인 잃은 바깥채, 감국주甘菊酒 익는 소리만 얇은 창호지를 만지다 노을 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젊은 날부터 섬돌에 묶어 잠재운 종부의 사랑가, 오랜 회한의 옷을 갈아입고 연한 어둠이 스러지는 종가 모퉁이 그림자와 마주하는 밤 종일 돌아오지 않을 빈 사랑실 풀다 돌아 눕고, 오랜 세월의 기다림만 빈 방에 누워 저 홀로 부끄러운 치마끈만 풀었다.
 
『울산작가』 (2005)에서 인용
 
 
 
 
우리 집 또한 종가집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장남이기에 내가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줄곧 제사를 지내왔다. 제삿날이 되면 느끼는 게 있다. 남자들은 그저 도포만 입고 술 잔 따르고 절하는 게 전부다. 한 것이라곤 고작 축문 하나 썼다는 것뿐.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장만 등 거의 모든 준비는 여자들 수고이다. 여자들의 노동을 빌려 남자들이 폼 잡는 날이 집안 제삿날이라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구조적인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여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종가, 라고 불리는 집안은 더더욱 그렇다. 종가에서 종부가 없다면 그 종가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기 어렵다. 종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종부의 노동, 종부의 피눈물, 종부의 희생이 전적으로 작용한 덕택이다.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종가들은 종부에게, 종부의 부모에게, 더 나아가 종부의 집안에게 대대로 감사의 표시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굳이 종부가 아니더라도, 맏며느리가 아니더라도 그 집안에서 제사 의식을 위해 애쓰는 모든 며느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제사 의식에 필요한 인력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시 ‘宗家’에 나오는 것처럼 그 분들의 인생이 ‘누운 세월이 되거나 아픈 시간이 되거나 식은 아궁이 속 재 같은 나날’이 되어 생의 마지막 꼬리를 소리 없이 감추지 않도록 노을을 펼쳐 드리는 게 남자들이 그 분들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울음 2
-푸른 호랑이 31
 
이경림
 
 
 
어으으 어으 어으!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며 또 노인이 운다
-시상에, 아흔이 넘은 노인이 목소리도 크제 이 할매 또 뭐 누셨능가 보다
환갑이 넘은 며느리가 달려가 기저귀를 만져본다
-괜찮은데 와 우시능교, 뭐 잡숫고 싶어요?
그녀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짜겠노? 이제 우시는 기 말이 됐으니
-무신 노망이 우는 노망이 다 있노?
며느리가 딱하다는 듯 투덜거린다
-아이라 이 사람아, 평생 참은 울음이 터진기라
실컷 울고 가시게 그냥 두소
칠순을 바라보는 아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보소, 양반집 종가 며느리로 80년인기라
말 뺏기고 눈물 뺏기고 표정까지 뺏긴 세월이 80년인기라
보소, ‘음전한 종부’가 우리 어무이 별명 아이가
그 별명 값 하니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 셋씩이나 먼저 보내고도
조상 앞에 죄스럽다고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던 양반 아이가
육이오 나고 世傳之財物 다 거덜 나서 끼니가 간 곳 없어
삯바느질로 연명하면서도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이고
아랫돌 빼서 윗돌 놓으며 찍소리 없이 오대봉사하던 어른 아이가
동네 사람들 하기 좋은 말로 울 어무이 밥통은 조갑지만도 못하다고 놀렸제?
평생 밥이라곤 반 그릇도 못 잡숫는 양반이 힘은 황우라고
40년 모신 당신도 울 어무이가 고기 못 잡숫는 사람인 줄 알았제?
그저 시래기나물만 드리면 최곤 줄 아는 양반이라고?
하이고, 요새 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그런 식성 때문에 저래 오래 사시는 기라고 호강에 겨운 소리들 하더라만, 봐라, 어무이 정신 놓으시고부터 고기반찬 없으면 진지 안 잡숫는 거, 장정 저리 가라 고봉밥 잡숫는 거
그거 다, 일생 참고 사신 거 보여주고 가실라 카능기라
울 어무이 몸띠이가 울음 뭉치 아이가
저 몸 울음으로 다 흘려보낼라 카먼 낙동강 칠백 리도 모지랄끼라
 
-어으 어으 어,억,억
 
수십 길 울음 폭포 또 쏟아진다
거기서 갈려 나온 울음 두 줄기
밤새 두런두런 흘러내리며
 
 
시집 『내 몸속에는 푸른 호랑이가 있다』에서 인용
 
 
 
이경림 시인의 시를 보니 기름값 아끼느라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 끈 채 지내시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고향 집에 갔을 때 왜 그리 춥게 사시냐면서 내가 매번 보일러를 세게 틀면 다시 어느 샌가 슬그머니 보일러를 꺼놓으시는 어머니. 푸성귀 나물 반찬만 잡수시다가 아들 내외가 가야만 고기 구경을 하시는 어머니. 들끓음으로 가득하던 세월이 저 멀리 떠나가고 삭정이로 남은 시간만 눈 앞으로 끌어당기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일 뿐, 다습게 대접도 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일 뿐.
잡숫고 싶은 거 맘껏 잡숫지 못한 그 숱한 세월, 이제 모든 어머니들께, 며느리로 살아온 모든 어머니들께 뜨듯한 진지 한 그릇 대접하는 5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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