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은 '모난 목소리를 없애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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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모난 목소리를 없애라' 하더라."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6.0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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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팝 포엠,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천양희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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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이 2년 전에 리스팝 포엠을 찾으셨을 때는 시작(詩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오늘은 자작시 열 편을 소개하고,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이다. 시인이 두 해 만에 오신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우리에겐 친근한 분이다.” 5월 31일 오전 11시, 구월동 리스팝 포엠에서는 천양희 시인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를 들었다.

“‘봄’은 많은 것을 바라봐서 ‘봄’이라고 하는데, 이번 봄은 너무 짧았다. 오늘은 체험한 시 얘기를 할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체험이 상상력과 어떻게 버무려지느냐가 중요하다. 시가 있는 한 시인들은 이 문제와 싸워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 ‘소화’하기 위해 ‘산책’을 해야 한다. 나는 ‘산책’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50m, 100m 걸을 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도 다르다. 시에서 가장 큰 적은 ‘동어반복’이다. ‘몸을 움직여 체험’하면 본인도 생각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체험은 자기만의 경험이고, 자기만의 체험은 아주 중요하다. 관념으로 시를 쓰면 감흥도 감동도 없다. 시를 쓰는 일은 감정이 아니고 체험이다. 릴케는 ‘보는 법도 배운다’고 했다. ‘시인의 눈은 구경꾼이고, 시인의 발은 나그네’다. 시인은 늘 ‘더듬이’가 돼야 한다. 랭보도 시인을 ‘견자(見者)’라고 했다. 시인은 ‘바라보는 자’, ‘발견하는 자’다. ‘깊이 바라보면서 발견하는 자’가 시인이다. 이는 ‘산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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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보아라>

자식들에게 바치느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 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 없는 바다이신
받침 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 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시다. 어머니에 대한 시는 <바다 보아라>, <그믐달>, <활> 이렇게 세 편이다. 7남매 가운데 막내인 나는 1961년에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에 들어갔다. 막내다 보니 부모님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버지는 배운 분이라 박식해서 붓글씨로 ‘여식 보아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셨다. 반면에 어머니는 당시의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공부를 하지 못하셨다. 언문을 스스로 깨친 분이시다. 침을 묻혀 글씨를 써서 안부를 물으셨다. ‘바다 보아라’로 시작되는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었다. 희생적인 어머니,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한 어머니는 마치 받침도 바닥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럴 생각하면 참 뭉클했다. 이 시는 한참 후에 썼다.”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
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
철길은 저렇게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기차는 또 누구의 생에 시동을 걸었는지 덜컹거린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기차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며 쏘아버린 화살이며 내뱉은 말이
지나간 기차처럼 지나가 버린다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 정처가 없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차역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차역을 지나간 기차인지
얼마나 많은 기차를 지나친 나였는지
한 번도 내것인 적 없는 것들이여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지나간 기차가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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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했다. 집이 기찻길과 가까워서 늘 기찻길을 보면서 지냈다. 그 긴 기차가 가느다란 기찻길로 가는데 넘어지지 않고 가는 게 참 신기했다. 기차를 누가 끌고 가나 궁금했다. 그래서 기관사가 되고 싶었다. 뒤뜰 감나무에 올라가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도 기차를 끌고 서울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당시에는 여자가 기관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후로 기차 통학을 6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단련됐지만, 중학교 때는 초등학생 티도 못 벗고 다녔다. 겨울에는 별을 보고 학교에 가고 별을 보고 집에 왔다. 해가 긴 여름에는 낙동강변에 앉아서 저녁놀을 바라보기도 했다. 또 물가에서 새 발자국을 보면서 이집트 상형문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갈대 우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인이 될 기질이 있었나 보다.(웃음)”

“그때 내가 느끼던 풍경은 아직도 내 마음에 살아 있다. 시가 잘 안 될 때는 유년으로 돌아간다.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된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나고 금방이라 기차도 딱 한 번 다녔다. 토요일엔 연착이 잘 됐는데 그때는 모범생이라 학교에 걸어갔다. 학교에 도착하면 참 난감했다. 애들이 끝나고 나오면 펑펑 울었다. 그때 ‘기다림’을 알았다. ‘기다리는’ 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기차가 떠나가는 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과 같았다. 만나지 않는 평행선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다.”

“기차는 달리는데 풍경은 뒤로 간다. 이 사실이 초등학생 때는 아주 궁금했다. 살아가면서 내가 달려가면 다른 사람이 풍경처럼 처지고, 누가 달려가면 내가 풍경처럼 처지고…. ‘풍경’이 나를 가르쳤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많은 걸 느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기차역을 스쳐가나. 그렇게 나이들어 가는 것 같다. ‘평행선’은 늘 의문이었다. 나이들면서 왜 평행선인지 알게 되었지만, 어릴 때 보던 안타까움은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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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15년 전에 썼다. 서울역을 지나는데 성당 종소리가 들렸고, ‘노틀담의 곱추’가 생각났다. 저 소리 뒤편에는 수많은 사람의 기도소리가 있겠구나 싶었다. 시청역 앞 롯데백화점을 지나면서 쇼윈도우에 있는 정말 화려한 옷을 보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시침이 꽂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사람들 뒤편에는 반드시 희생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장면을 메모했다. 마음에만 있으면 잊을 때가 있다. 종소리 하나가 이 시를 쓰게 했다.”


<들>

올라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마들’은 ‘말들이 뛰어노는 들판’이다. 그 들판을 산책하면서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 들판이 나를 참 편하게 하는구나’라는 싶었다. 젊었을 때는 ‘높이’에 대해 생각했고, 중년에는 ‘물의 깊이’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은 ‘들’에 관심이 생겼고. 좋아졌다. 나이들면서 높이나 깊이보다 여러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이’에 관심이 생긴다. 욕심도 욕망도 내려놓게 한다. 가진 게 없어서 오히려 ‘들처럼 살 수 있구나’ 싶다. 체험을 통해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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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좋다>

노을에 물든 서쪽을 보다
든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든다는 말이 진실로 좋다
진실한 사람이 좋은 것처럼 좋다
눈으로 든다는 말보다 마음으로 든다는 말이 좋고
단풍 든다는 말이 시퍼런 진실이란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노을에 물든 것처럼 좋다
오래된 나무를 보다
진실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진실이란 말이 진실로 좋다
정이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진실을 안다는 말보다 진실하게 산다는 말이 좋고
절망해봐야 진실한 삶을 안다는 말이
산에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나무 그늘에 든 것처럼 좋다
나는 세상에 든 것이 좋아
진실을 무릎 위에 길게 뉘였다


“25,6년 전 여름휴가가 끝날 무렵 ‘몽산포 해수욕장’에 갔다. 해송이 좋다고 해서 갔는데 과연 좋더라. 몇 년 전에 갔더니 모텔이 잔뜩 있더라. 자연을 망치고 있더라. 이러다 지구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오래 전에 갔을 때, 해송 그늘에 앉아서 노을을 바라봤다. 저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물들거나, 누군가를 물들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시울만 물들더라. 그때 ‘내가 비로소 오늘에야 노을이 주는 축복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슬프기도 하고 아득했다. ‘내가 이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고 싶었다! 이 세상 더러움에 물들 바에야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싶었다. ‘든다’는 것에 생각이 많았다. 옛사람들은 ‘산에 오른다’고 하지 않고 ‘산에 든다’고 했다. ‘단풍 든다’, ‘산에 든다’, ‘마음에 든다’처럼 ‘든다’는 말은 진실의 원천이었다.”


<단추를 채우면서>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서울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2001년쯤, 누군가하고 약속했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서두르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옷이 삐뚤어지는구나’ 싶었다. 작은 단추가 깨달음을 줬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첫 연애에 실패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첫 단추를 잘못 채운 탓이구나’ ‘난감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처음’에 관심이 많아졌다. 누구를 만날 때 신중해졌다. 경계가 생겨 좋지 않았지만…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생각에서 풀려났다. 까뮈도 ‘처음’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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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게 길을 묻다(수초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 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물 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 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물보라는 길게 물을 뿜어올리고
물결은 출렁대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돌을 던지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물소리 바뀌고 물살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웅덩이 속 송사리떼를 생각했지요
연어떼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물가의 잡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눈비에 젖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물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물 먹고 산다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물 먹고 살수록 삶은 더 파도쳤지요
오늘도 나는 물 속에서 자맥질하지요
물같이 흐르고 싶어, 흘러가고 싶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남한강에 갔다. 물은 가장 좋지만 물같이 사는 것은 참 어렵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아주 작은 시내도 강에 이른다. 힘들 때는 ‘물한테 길을 물었다.’ 깊은 물은 소리도 없다. 물은 모난 돌을 부드럽게 한다. 물은 ‘모난 목소리를 없애라’ 하더라. ‘물에게 배운 게 많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물에게 길을 물었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나’하고도 맞닿아 있다.”


<새에 대한 생각>

새장의 새를 보면
집 속의 여자가 보인다
날개는 퇴화되고 부리만 뾰죽하다
사는 게 이게 아닌데
몰래 중얼거린다
도대체 하늘이 어디까지 갔기에
가도 가도 따라갈 수 없다 하는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날고 싶지만
삶이 덜컥, 새장을 열어젖히는 것 같아
솔직히 겁이 난다
시작이란 그래,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지

새 중에서 제일 작은 벌새들도
이름없는 잡새들도
하늘 속으로 몸을 들이미는데
귀싸대기 새파란 참, 새가
아, 안 된다, 바람 속에 날개를 털어야 한다

일어나 멀리 날 때 너는 너인 것이다
기어코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너인 것이다.


“1992년, 친구 집에 갔는데 새장에 까치가 있더라. 무척 화가 났다. 친구 말인즉슨, “어느 날 청소하려고 문을 열었더니 까치가 들어왔다. 나가지도 않고, 날려보내도 다시 들어오고, ‘인연’이구나 싶어 같이 살게 됐다”고 했다. 그때 ‘집 속에 갇힌 여자’가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억압받던 시절이었고, ‘까치가 된 여자’가 많았다. 역시 새는 날아야 새이고, 여자도 인간인데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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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山行)>

덕성여대 앞 까페 늪을 지나
8번 종점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다
不二寺(불이사) 쪽으로 길을 꺾는다
지나온 길이 비뚤비뚤
발가락 어디가 아픈 것도 같다
미로는 처음부터 미로였다
길 찾기를 멈추기 전에는 모든 것이 숲처럼 무성하리라 믿었다
배낭을 짊어진 채
나무 뒤에 나무처럼 붙어서니
잡목 숲 엉클어진 내력을 알 것도 같다
대낮에도 캄캄한 산 숲에 덮여
능선이 찢어져라 널 부르면
어둠도 아름다운 품 속이었다
나뭇가지 위로 나그네새 빠르게 스쳐가고
종소리 흩어지고……
루비스의 소설 <자카르타의 황혼>을 읽고 있을 때
저 눈물꽃! 수유리가 황혼에 젖는다

언덕길이 너무 가파르다. 내 인생도 가파르게 넘었지만,
本家(본가)까지 본질까지 다 버리고
월세월세 하면서도 도시에서 세월 보낸 친구.
그도 헐떡이며 저 길을 올랐으리라
몸 따로 마음은 자꾸 내려가고
물소리도 따라 내려간다
절은 절대로 길에선 보이지 않는구나
언제나 길의 끝에 가서야 있구나
不二門(불이문) 밀고 들어서니
대웅전은 목하 보수 중이라
헐은 내 마음은 수고로워 몇 년째
보수할 길이 없다
불쌍한 몸이 배가 고픈지, 萬年菓(만년과)를 그리는지, 우울증에 빠진 듯
흐르고 싶은 마음이 우물에 빠진 듯
빠져나오지 않는다
오, 우울과 우물의 깊음이여
절하지 못한 우울이
우물만큼 깊었던가 아니던가
저마다의 슬픔으로 절문이 젖고
經典(경전)이 젖고 끝내 할말조차 젖어
勇猛精進(용맹정진) 들어간 국민학교 내 친구
일우 스님 선방을 기웃거릴 때
불두화 하얗게 웃으며 반기면
이상 더 숨을 수 없어서
나는, 마른나무 밑에 쌓인다
썩은 잎들이 거름 되는 것을 눈여겨보며,
일생을 보기 전엔
거뭇거뭇 남은 누구의 흉터인지…… 죄다 버리고
살터를 찾아 산속
저 적요 속으로, 반야 속으로 딸려가
아마 나는 피안 거리를 걸었을 것이다
산 끝에 가서야
나는 몇 번이나 아제아제 불러본다


“방학동에 살 때 북한산에 자주 갔다. ‘산행’은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고, ‘나를 넘어서는 길’이었다. 정상에 오르면 안도감과 기쁜데, 이는 시를 쓸 때와 비슷하다. 물론 똑같진 않지만 시를 쓰는 과정이 괴롭지만 시를 쓰고 나면 기쁘기도 하다.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는 생각이 다르다. 새롭다. ‘새로움’은 시의 가치다. ‘창조의 기쁨’, ‘언어로 통한 삶의 성찰’이다. 아주 큰 의미를 준다. ‘산행’은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5,6년 전부터 무릎이 아파서 못 간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면 ‘청결함’을 느낄 수 있고, ‘삶의 가치’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수수밭>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千佛山(천불산)이
몸 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개밥바라기: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이르는 말.


“이 시는 ‘직소포에 들다’와 함께 오래된 시다. ‘직소포에 들다’는 13년 만에 완성했고, 이 시는 1985년부터 1993년까지 8년에 걸쳐 쓴 시다. 이 시를 쓸 무렵에는 ‘마음’이 화두였다. 마음이 잡히지 않아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돌아다녔다. 고향에서 만난 지 몇십 년 만에 수수밭을 만났다. ‘바람’이 수수수 흔들렸다. 그 안에 퍼질러 앉는 순간 ‘통곡’이 터져 나왔다. 그때 울음이 평생 운 울음보다 많았다. 울음통이 크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울음의 매듭이 끊어지는 순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마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면 이 순간이겠구나 싶었다. 수수밭을 헤치고 나오면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여행을 떠났는데 살게 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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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느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우레 같은
기립박수 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1979년 37살 때 쓴 시다. 완성하는 데 13년 걸렸다. 폐병이 재발하고, 심장이 안 좋은 데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때였다. 날마다 죽을 생각을 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나를 고민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시멘트 바닥이 바다처럼 출렁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신문에서 ‘직소폭포’ 안내에 관한 기사를 봤다. ‘임금한테 직언’하는 것도 ‘직소’라고 하잖나. 이런 데서 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배낭을 메고 신문을 들고 떠났다. 길을 물어 물어 정읍에 도착하고, 버스를 타고 어느 마을에 도착하고, 내소사를 지나 30분쯤 갔나 싶었는데 길이 끝나는 곳에 폭포가 있었다. 7월이라 물이 많았다. 작은 폭포가 ‘판소리처럼’ 컸다.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너는 죽을 만큼 살았느냐’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보니 폭포 소리였고, 그때 내 나이는 37살인 데다 ‘죽을 만큼 살지 않았더라.’ ‘나를 살린’ 폭포 소리를 듣고 반성하고 자각했다. 수수밭에서 느낀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폭포는 곧은 물줄기다. ‘너는 죽을 만큼 살았느냐?’는 소리가 ‘나를 살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잘 살았다. 그래서 이 자리에도 있잖나.(웃음)”

“‘잘 씌어지지 않는 시’가 대표시다. ‘정신의 긴 투쟁’을 한 시가 대표시다. 글 쓰는 일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한다. 세퍼드 코미나도가 쓴 <쉬운 글쓰기>에 보면, 시랑 교감하면 내면의 고통도 치유한다고 한다. 시랑 계속 교감하면 비감이 줄어든다. ‘글쓰기 습관에 시간을 많이 줘봐라.’ 20일 동안 똑같은 행동을 하면 습관이 된다고 한다. 좋은 시를 읽고, 좋은 시를 필사해 봐라. 쓰다가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쓰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시는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또 쓰는 것이다.’


-참석자 질문
“‘놓았거나 혹은 놓쳤거나’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

“연애할 때도 안달하면 놓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시를 그리워하고 준비하고 있으면, 기다릴 줄 알면 시가 온다. 시가 나를 봐주지 않는다고 앙탈 부리지 말고, 꾸준히 써라.”

-질문
“‘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새’에 대한 체험이 있으신가? 새 이미지가 왜 많이 나오는가?”

“혼자 살다가 상처 받으면 ‘삶이 무겁더라.’ 새들이 자유롭게 나는 게 부럽다.”

-질문
“<단추를 채우면서>에서 ‘첫’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순간이 떠오른다. <옷깃을 여미며>를 보면서 이제는 선생님은 그 시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때와 옷깃을 여몄을 때는 어떠신가?”

“‘실패’한 다음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옷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어디에 앉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까, 단추를 ‘꼭 채워야 하나?’ ‘단추가 없는 옷도 입고, 단추가 있어도 채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단추를 채우지 않아도 정직하고 올바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질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 있는 삶’을 사셨는데 어떻게 바람을 좋아하게 됐나? 어떻게 바람까지 사랑할 수 있나, 뭉클했다.”

“언젠가 어떤 잡지사랑 인터뷰를 했다. 그 장소에는 근처에 산이 있어 바람이 불었다. ‘바람도 함께 찍어주세요!’ 했더니 그 이야기도 썼더라. 그만큼 사랑한다. 바람에 얻어맞고 살다보면 바람이 고난을 주지만, 나를 키워주더라.”

-질문
“시마다 장소가 다르다. 여행을 많이 하시나 보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어 여행을 못할 때가 많다.(웃음) 그럴 때는 가까운 데라도 걸어다닌다. 방구석에 있으면 동어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각이 새로워야 젊은 시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장소’가 중요하다. 생각이 자유로워진다. 나는 새가 좋더라. ‘나그네새’는 21일만에 세계를 정복한다고 한다.”

“제대로 쓴 시를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찢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세상을 발칵 뒤집을 수 있는 천재도 있지만, 대개는 노력해야 한다. 시가 내 생활이 돼야 한다. 벼락치기해서는 안 된다. 숨쉬는 것처럼 생활이 돼야 한다.”

‘리스팝 포엠’ 6월에는 ‘강인한’ 시인이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6월에는 마지막날인 30일이 일요일이므로, 28일 금요일 오전 11시에 시낭송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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