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좋지, 깔아도 좋지, 그냥 옆에 둬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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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좋지, 깔아도 좋지, 그냥 옆에 둬도 좋아"
  • 김영숙기자
  • 승인 2013.07.06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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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유일하게 '대나무 파는 집', 54년째 '충남죽재사'를 꾸려온 정순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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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한 개가 8m인데, 그렇게 무겁지 않아. 잘 마르기도 했지만, 속이 비었잖아.” 가게 앞에 대나무가 줄을 맞춰 길게 세워져 있다. 정순희 할머니(77)는 손님이 주문하는 대로 가게 앞에 쌓아놓은 대나무더미에서 나무를 빼낸다. 휘청거리는 대나무를 길에 길게 누인 다음, 원하는 길이대로 눈금을 표시하고 전동톱을 찾는다. 위잉, 톱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대나무톱밥이 흩어지고, 어느새 주문한 길이대로 묶인다. 중구 율목동에서 54년 동안 대나무를 파는 정순희 할머니. 할머니가 꾸려가는 ‘충남죽재사’는 인천에서 유일하게 대나무를 파는 곳이다.

할머니는 반세기 넘게 대나무만 팔았다. “스물한살에 시집 와, 스물세살부터 장사를 시작했어. 대나무만 팔았지. 대나무는 경상도 함양에서 가져와. 배 만드는 사람도 사가고, 공사판에서도 쓰고, 실내장식하는 사람도 많이 사가지. 너무 기니까 큰 차가 와서 사가야 돼. 아니면 잘라가든지. 대나무는 거의 8m가 많아. 좀 작은 건 3~5m지. 긴 거 하나는 대개 만원이야. 2m로 자르면 네 개 정도 나오니까 자가용에 싣고 가기 딱 좋아. 더 길게 필요하면 창문을 좀 열고 가야지.”

할머니는 요샌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며 허리를 두드린다. 요즘들어 사는 게 재미없을 때가 많단다. “영감이 간 지 18년 됐어. 재미있는 일이 없네. 하긴, 그게 사는 거지. 애들 클 때나 재미있는 거지. 애들 자라는 거 볼 때가 좋았어. 집이 북적거리고 시끄럽고, 애들이 바쁘니까 나도 바쁘고. 지금은 늙어서 재미있는 일이 통 없어. 나이 먹으니까 숨도 차고, 어깨도 아프고… 앉아 있다가 손님 오면 파는 거지. 맨날 바쁘게 팔리는 건 아니니까 쉬엄쉬엄 하지, 뭐.”

배다리에는 할머니까지 포함해 대나무를 파는 곳이 더 있었다. 지금은 할머니 가게뿐이다. 아니, 인천에서 단 한 군데다. “예전엔 몇 집 있었지. 세 집인가,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아파. 사람은 늙으면 아프고, 그러다 죽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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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쪽에는 대나무 뿌리가 많이 쌓여 있다. 할머니는 뿌리를 찾는 사람이 꽤 된다고 말했다. “이파리 툭툭 쳐낸 대나무 뿌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 속에 화가 잔뜩 들어 있는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한테 대나무 뿌리가 좋다는구먼. 보리차처럼 그냥 알맞게 잘라서 주전자에 팔팔 끓이는 거지. 한참 끓이면 ‘노리끼리’한 색이 나오고, 쓰지도 않고 달지도 않아. 좀 ‘상기한 맛’이 나지. 먹을만 해.”

한쪽 벽에는 굵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가 여러 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사다리는 만들어서 팔아. 전기, 전압 일 하는 사람들이 찾거든. 대나무는 전기가 안 타. 전화국, 전기 하는 사람, 전기공사 하는 사람들한텐 꼭 필요한 거야. 길이에 따라 값이 다른데, 큰 건 5만원, 좀 작은 건 3만5천원에서 4만원.”

나뭇가지를 잘게 잘라놓 묶은 것, 대소쿠리, 대빗자루 등 대나무로 만든 물건이 구석구석에 보인다. “저기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놓은 것은 만신아줌마들이 굿할 때 쓴대. 대나무에 종이를 감싸서 쓰나 봐. 소쿠리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가끔 찾고. 대빗자루가 잘 쓸리다며 꼭 찾는 사람이 있어.” 그는 또 대나무는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버리는 게 없다고 덧붙인다. “대나무를 좋아하는 단골손님이 많지. 꼭 대나무로만 만들어야 하는 게 있거든. 대나무통밥 파는 식당에서 오면 한 마디씩 다 잘라가. 대나무통 안에 쌀, 잡곡, 대추, 밤 넣고 찌면 아주 맛있잖아. 요샌 몸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 가게도 잘 되나 봐. 또 예전엔 대나무로 물건을 만들어 주는 할아버지가 있었어. 사람들도 할아버지가 만드는 물건을 많이 찾았고. 근데 물건 대던 할아버지가 인제 안 와. 90살이 넘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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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앉아서 쉬는 곳에는 굵은 대나무를 반 가른 게 보인다. “잠깐잠깐 누워있을 때 베는데 아주 편해. 인제 나도 늙어서 안 아픈 데가 없어. 아침마다 아들이 가게 문을 열고 대나무를 다 꺼내서 쌓아주지. 어떤 때는 내가 꺼내기도 하고. 이 나이까지 장사를 했으니까, 5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 돈을 벌어 좋기도 하지만, 솔직히 먹고 살려고 하는 거지, 뭐.”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장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다행히 장사를 못할 정도로 아프지 않아. 할 때까지는 해야지. 대나무는 사람한테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무냄새 풀냄새도 좋고, 깔고 자도 좋고, 베고 자도 좋고. 그냥 옆에 둬도 좋아. 여긴 몽땅 대나무잖아. 하루종일 대나무 냄새를 맡으면서 장사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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