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명남/시인
도둑놈 얘기를 하나 하려 한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한 도둑이 어느 부잣집에 종을 훔치러 갔다. 들고 가기에는 종이 너무 무거워 종을 깨뜨려 조각내어 가져가기로 하고 커다란 망치로 힘껏 종을 내리쳤다. ‘쨍’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자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 고사로 <여씨춘추>에 나온다.
‘엄이도종’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둑이 자기 귀를 막고 소리 나는 종을 훔친다"는 내용으로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자기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말함이다.
1997년 4월 전두환은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수수죄로 추징금 2205억원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는다. 판결 직후 312억원만을 자진 납부하며 버텨 오다가 2004년 2월 아들 재용 씨가 구속된 후 200억원을 납부한다. 그러다가 2013년 6월 전두환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곧이어 7월 16일 검찰이 전두환 일가 자택 및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시켜 차남 재용 씨를 소환한다. 그러자 9월 10일 전두환 일가는 미납한 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 납부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자진 납부 계획이라는 걸 발표하는 것 자체가 국민우롱이요 엄이도종이다. 진정성이 담긴 납부 의지가 있다면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하고 납부하면 될 것을 굳이 납부 계획 쇼를 펼치는 이유는 뭘까이다. 아들이 소환되고 여론이 악화되니까 검찰의 수사 의지를 약화시키고 국민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그깟 계획을 발표했을 뿐이다. 아직 납부한 게 아닌 것이다.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을 뿐이다. 그것도 자신의 귀를 말이다. 지켜보는 국민의 귀는 항상 열려 있는데 말이다.
지금 전두환 일가가 해야 할 것은 납부계획쇼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과 추징금 미납 행태에 따른 국민들의 상처에 대해 전두환은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마땅하다.
국민의 법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자동차세, 주민세 등 여러 세금이나 교통범칙금을 미납해도 가산금이 붙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1672억원을 16년 간 내지 않았다면 거기에 붙는 가산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국세를 체납하면 3%의 가산금이 붙고 다시 납부하지 않으면 이 가산금에 0.12%의 중가산금이 붙는다. 국세 체납에 대한 가산금 방식으로 계산하면 전두환은 추징금 1,672억이 아니라 5천억 이상의 추징금을 내야 한다는 결론이 이른다.
대법원 등에서 벌금형이 확정된 후, 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강제 구속돼 노역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전두환은 노역형은 커녕 징수금도 안 내고 버텨오면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왔던 것이다. 과연 국민들의 시선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추징금의 경우 원금만 환수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두환은 미납된 추징금 1,672억원만 내면 된다. 이것은 일반국민이 겪는 세금이나 범칙금 미납 시 과태료나 가산금이 붙는 것과 비교하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전두환이 16년 동안이나 수천억 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추징금에 대한 과태료나 가산금이 없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국민들의 법 감정이 또 한 번 요동친다. 정말이지 단군 이래 최대 도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역사에 법집행의 오류를 남기지 않으려면 불법취득한 모든 돈에 대한 이자소득, 증여세, 소득세, 과태료, 가산감 등 모두 받아내야 한다. 그게 국민들의 법 감정이다. 추징금을 납부하고도 전두환 일가의 재산은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일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번 추징금 납부 계획 쇼로 검찰에서는 부정축재와 5.18 광주시민학살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 5.18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는 전두환은 역사 앞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없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게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며 평가임을 그는 깨달아야 한다.
그 도둑놈의 얼굴이 TV에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그리고 그 시인이 쓴 시 한 편이 있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술회했던 시인. 수많은 친일시를 남기고, 박정희 군사정권 때인 1966년 8월 14일 한국일보에 발표한 ‘다시 비정의 산하에’ 라는 시를 통해 ‘새로 나갈 길은 /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 베트남뿐이다 / 베트남뿐이다’라며 베트남전 개입을 부추기기도 했던 시인. 암살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자 새로 나타난 권력자 전두환에게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을 아끼지 않은 시인.
교과서에 실린 ‘국화 옆에서’의 시인 미당 서정주.
처음으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서정주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 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년 1월)
이 글을 읽는 여러 점잖은 분들께 향기는 커녕 고름으로 가득한 어처구니없는 시(詩)를 알려드려 죄송할 따름이다.
저작권자 © 인천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