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시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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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시 몇 편
  • 최일화
  • 승인 2013.10.3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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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최일화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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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뜻밖에 문학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20여 년 전에 한번 인천문인협회 행사에서 문학 강연을 해본 적은 있지만 학생들을 상대로 문학에 관한 강연을 한 적이 없기에, 망설이면서 나 대신 다른 좋은 시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원고료를 많이 못 드려 죄송하다며 거듭 부탁하는 분에게 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수락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무슨 말로 시간을 채워야 할지 몰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문학 창작 강의 같은 형식은 안 된다, 문학의 효용이라든지 문학의 본질 같은 것을 얘기하면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다른 시인들을 벤치마킹하기로 하고 아주 사소한 일상생활이나 시가 태어난 과정을 자연스럽게 낮은 톤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는 강연의 제목을 ‘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시 몇 편’으로 정하고 부제로 ‘우리는 왜 시를 쓰는가?'’라고 달아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칼럼은 그때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중에 고향 이야기는 빼고 어머니에 관한 부분만 발췌하여 다시 칼럼형식으로 손을 본 것이다. 고향에 관한 부분은 다음 기회에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내 시에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을 세 편의 시를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작품 1)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으시고 조석으로
끼니를 마련해 주시었어도
어떻게 내 마음 낱낱이 아시기나 하랴
곤충을 쫓아다니던 어린 날의 기쁨
토끼풀을 뜯던 들녘의 그 평화
어떻게 모두모두 기억이나 하시랴

동무와 다투고 코피를 쏟던 그 난감
첫사랑이 움틀 무렵의 그 비밀한 울음
어떻게 일일이 아시기나 하랴
늘 가까이 계시지만 아득히 멀고 비밀이었을 생각의 거리
감추어진 내 가슴에 자라는 꿈
어떻게 어머니가 아실 수야 있으랴

그러나 뜻밖에 내 생각의 끝 간 데 까지
내 이상의 높이에 까지
어머니는 거기에 계시였다
햇빛으로 계시거나 봄바람으로 계시였다
또 영롱한 별빛으로 계시였다

절망과 비애의 늪에서도
오뚝이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시어
나는 모험을 즐기는 탐험가같이
미지의 세계로 미지의 세계로
용감히 나서는 전사와도 같았다

이 시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시를 떠난 후 30대 중반 다시 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써보았던 작품 중에 하나다. 1985년에 나온 첫 시집 <우리 사랑이 成熟하는 날까지>에 실려 있다. 그때는 어머니가 생존해 계셨고 나는 인천에 온 지 7년 째 접어드는 사회 초년생이고 인천이 아직 낯설 때였다. 그때 나는 자주 고향을 떠올렸고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나는 자연히 내 어렸을 때를 자주 떠올리며 이런 시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늘 객지에 나가 계셨기 때문에 유소년 시절을 거쳐 사춘기를 지날 때까지 나는 고향의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나는 유독 사춘기의 진통을 심하게 겪었는데 그 힘든 질풍노도의 시절을 거쳐 오면서 늘 나의 행방에 방향키가 되어주신 분이 어머니다. 이 시에 보면 3연에 ‘햇빛으로 계시거나 봄바람으로 계시였다’는 구절이 있다. 이 햇빛의 이미지는 그 이후 어머니에 관한 시편에 계속 등장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다음 두 번 째 세 번째 작품을 보면 햇빛이 어떻게 의미를 바꿔가면서 어머니의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알 수 있다. 다음 두 번 째 시를 함께 읽어보자.

작품 2) 육신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었을 거야
 
내가 먹고 자란 어머니의 젖
그 젖무덤도
이제 다 썩어서
흙이 되었을 거야
 
사시사철
밥상 차려주던
어머니의 손
 
그 따뜻하던 손도
이제 다 썩어서
아무런 흔적도 없을 거야
 
어머니의 육신은
이제 다 썩어서
바람이 되고
물이 되었을 거야
 
저 강산 저 들판
햇살이 되었을 거야

이 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 쯤 뒤에 쓴 시이다. 사람이 죽으면 모두 썩어 결국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화하게 된다. 자녀들이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은 늙는다. 그토록 나를 위해주고 나를 위해 모든 희생을 다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형체도 없이 화장이 되거나 몸뚱이가 부패해 없어지는 걸 우리는 체험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육신이 썩는다고 어머니가 아주 없어지는 것일까.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우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육체적으로 존재이기도 하지만 영혼을 가진 영혼의 존재라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육체는 해체되어 사라지지만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영혼의 세계로 떠나고 몸은 흙, 물, 불, 바람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런 전이의 과정에 어머니는 다시 한 조각 햇살이 되었을 것 같은 상념을 시에 담아보았다. 이 시에서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햇살의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때의 햇살은 첫 번 째 시의 햇살과는 성격이 다르다. 첫 번째 시의 햇살은 어린 자녀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사랑과 염려, 즉 자식을 보호하고 성장을 지켜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내는 햇살이라면 두 번 째 햇살은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환하고 희망적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남아 있는 자녀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밝고 건강하게 이승의 삶을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저승에 있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정의 이미지로서의 햇살인 것이다.

다음 세 번 째 작품은 지난해 내가 인도에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썼던 작품이다. 물론 어머니 돌아가신 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머니는 내 가까이 계시면서 내 마음에 사랑과 염려를 보내주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쓴 작품이다. 나는 작년 2월부터 4월까지 인도 동북부 샨티니케탄이란 곳에 두 달 반을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은 동양에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라빈드라낫드 타고르가 교육 사업을 펼치고 집필활동을 하던 곳이다. 마침 내 생일날이 되어서 저녁 무렵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작품을 읽기로 한다.

작품 3) 해와 달보다도 먼 곳 
―산티니케탄 1
 
천만리 먼 더운 나라의 조그만 창문 옆에 앉아 생일의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언어도 풍습도 다른 곳으로 달려왔는데 해와 달보다도 멀리 계신 어머니가 어떻게 이곳을 아시기나 할까요.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오랜 옛날 아주 작은 씨앗으로 맺히었지요. 그 조그만 씨앗의 어린 새싹을 남겨 두고 미운 아기 젖 안 주고 밀어내듯이 경전 속의 전설보다도 먼 나라로 어머니는 떠나시었습니다. 그 까만 씨앗의 봄의 텃밭에 작은 싹을 처음 틔운 날이 나의 생일입니다.

그 어린 새싹과 그날의 봄볕을 어머니는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기쁨인 그날이 오늘인데 어머니는 해와 달보다도 먼 곳에 계십니다. 저녁 무렵 지친 몸으로 돌아와 낯선 나라의 창문 곁으로 다가앉으니 어머니는 저녁 잔광으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의 방을 둘러보시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시고는 부엌으로 가 생일상을 들고 오셨지요. 생일상을 물리고 나니 어머니는 떠나시었습니다. 고요한 밤의 이불을 내 곁에 놓아두시고 저녁 잔광과 함께 해와 달보다도 먼 곳으로 어머니는 다시 떠나시었습니다.

*산티니케탄 : 인도 동북부 서벵골주의 도시로 ‘평화의 마을’이란 뜻을 가졌다. 동양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R. 타고르가 세운 대학도시로 타고르는 이곳에서 교육 사업을 펼치고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이 시의 배경은 먼 인도의 한 하숙집의 저녁나절이다. 창문을 통하여 비쳐 들어온 저녁 햇살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고 이어서 내 탄생의 이야기라든지 어린 시절 고향의 텃밭의 이미지라든지, 저녁밥상이나 이부자리의 이미지까지 어머니에 관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접목시켜 이 시를 썼다. 타고르의 시를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타고르는 주로 산문시를 쓴 시인이다. 이 시가 산문시로 쓰여진 것은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은 독창적이지만 형식은 타고르 식의 산문시를 차용한 것이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아주 먼 곳에 계신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그 먼 곳에 계신 어머니가 역시 지리적으로 천만리 먼 남의 나라에 와 있는 아들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가 구성되어 있다. 짧은 시간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햇살의 이미지와 함께 사후에도 한시도 자식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염려를 표현했고 어머니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애틋한 정을 나타낸 본 것이다. 이렇듯 지역적으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적으로도 옛날이나 오늘날에나 모든 어머니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시인들도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시로 많이 노래하고 있기는 우리나라 시인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꽤 오래 전에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뉴욕 외곽 지역을 지나가다가 큰 아울렛에 들어가 서적 코너를 둘러보다가 나는 시집 두 권을 찾아냈다.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시만 모아놓은 시집이고 또 하나는 사랑에 관한 시만 모아놓은 시집이었다. 나는 두 권의 시집을 사가지고 귀국했다.그 시집들을 읽으며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자녀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 세계 공통적이라는 것을 강하게 깨달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변할 리 있겠는가. 자식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변할 리 있겠는가. 시대와 삶의 여건에 따라서 그 형식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자식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늘 가슴 속에 어머니의 추억과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인류 보편적 진리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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