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무작정 배낭여행] (5)자이쁘르~분디~오르차~카주라호
벌써 3월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새학기이니 신입생들이니 하면서 꽤나 시끌시끌한듯 하다. 군대를 제대한 친구들도 복학해서 학교에 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허나 아직 내게는 먼 세상의 이야기만 같다. 이곳은 아직도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고, 갑자기 무슨일이 닥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도는 아직도 필자가 당연시 해왔던 생각들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현재 인도는 홀리축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거리가 다 시끌시끌하다. 여행객들도 어느 도시에서 홀리를 즐길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워낙 사람들이 뒤엉키며 온갖 색의 가루나 물감을 던져댄다고 하니, 과연 필자가 사진으로 그것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홀리축제는 인도에서 디왈리와 함께 가장 큰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는 '힌두력'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힌두력으로 매년 새해 첫 날 벌어지는 행사가 바로 홀리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서 서로에게 색 가루나 물감을 서로에게 뿌리는 행사이다. 서로에게 색 가루를 뿌리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고 한다.
자이뿌르
푸쉬카르에서 어느 정도 더 휴식을 취한 후, 자이뿌르로 향했다.
자이뿌르는 라자스탄의 주도인 곳이다. 또, 델리와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도시 규모는 꽤나 큰 편이다. 자이뿌르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로컬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자리가 꽤나 불편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애를 먹었다. 도착해보니 듣던대로 대도시 다웠다. 번잡스럽고 시끄러웠으며, 무언가 사람을 정신없게 하는 것 같았다. 숙소도 꽤나 비싼 편이었지만 방의 상태는 그에 비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숙소가 한곳에 몰려있지 않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이곳에 와서 인도에서 처음으로 우박을 경험했다. 하루는 자이뿌르에 있는 Raj Mandir라는 유명한 영화관을 가보기로 했다. 인도에서 얼마나 유명하면 가이드북에까지 소개가 되었을까 하고 가보았다. 표를 끊고 시간을 보니 2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주변의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가끔 이런일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신기하게도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크기도 꽤 커서 놀랐다. 분명히 낮에 더웠는데 갑자기 우박이라니... 갑작스러운 우박에 사람들도 당황했는지 급히 실내로 들어오고 번잡하기만 했던 대로변은 한순간에 개미 한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스산한 거리로 변했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이내 비로 바뀌었다. 아무리 건기라고 하지만 가끔식 비는 오나보다.
라즈만디르; 자이뿌르의 LAJ MANDIR 영화관이다. 겉모습부터 범상치가 않다. 사진을 찍는 필자를 바라보는 경비아저씨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관에서는 요새 인도에서 '핫'하다는 'Gunday'라는 영화가 상영중이었다. TV에서 광고도 많이하고 이곳저곳 포스터도 많이 붙어있어서 보고싶었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안에 들어가니 희한하게도 상영관이 하나밖에 없는 단관이었다. 그런데 내부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흡사 예술의 전당에 온 느낌이었다. 왜 이곳이 인도에서 유명한 곳인지 알법했다. 그리고 다른 영화관에 가면 항상 외국인은 없었는데 이곳에는 다른 나라 여행객들도 많았다. 상영관 내부에도 일반 좌석들 처럼 되어있는 곳도 있었고 그 위층에는 더 비싼자리인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리까지 있었다. 필자는 영화가 아닌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러 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대부분의 힌디 영화들은 말은 못 알아들어도 대략적으로 내용이 다 이해가 가고 흥미로웠는데 이번 영화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약간은 힘이 들었고 생각보다 별 재미도 없이 조금 오그라들기만 했다. 이번에는 유명한 영화관에 와보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자이뿌르에는 유명한 라씨집이 있다. '라씨왈라(LASSI WALA)'라는 집인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인도 제 3대 라씨집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갔보니 듣던대로 라씨집이 줄줄이 4개가 들어서있었다. 그 중에 한곳이 원조이고 나머지는 다 이후에 생겨난 짝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였으면 원조집 옆에 똑같은 간판을 내걸고 여러 가게가 장사를 하면 당연히 원조집에서 항의를 했을텐데, 인도는 그런 것 없이 버젓이 모두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런것에 대한 감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인도인 특유의 NO PROBLEM의 자세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몰려있는 집 중에 어떤 집이 원조인지를 필자는 미리 알아 두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갔다. 다른 집들과는 달리 그 집만 호객을 하지 않았다. '역시 원조의 자부심인가'하고 갔는데, 그 집은 이미 라씨를 다 팔아서 더 이상 남아있지가 않았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오후 2시나 3시정도 되면 라씨가 다 팔려서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는단다.
역시 원조는 다르구나 생각하며 그 주변의 다른집에서 라씨를 먹고 다음 날 오전에 그 집으로 다시가서 라씨를 먹었다. 그리고 다른 몇 곳에서도 라씨를 먹어봤는데 맛 자체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인도에서 먹은 라씨들 중에 자이뿌르의 이 곳이 가장 나은 듯 싶다.
자이뿌르에는 '암베르 성'이라는 유명한 성이 있다. 자이뿌르 근교에 있는 곳인데, 로컬 버스를 타고 이 곳에 갔다. 실제로 성이 상당히 크고 외관이 멋드러졌다. 성 초입부터 깔끔하게 정원을 정리해 놓아서인지 인도 사람들도 그곳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아마도 자이뿌르 사람들의 피크닉 장소로 애용되는 것 같다.
암베르; 자이뿌르에서 버스를타고 20분만 가면 나오는 암베르 성이다. 라자스탄에서도 손꼽히는 성 중에 하나인 성이다.
원래 대도시인 자이뿌르에서 빨리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푸쉬카르에서 자이뿌르로 가는 도중 여권을 조드뿌르의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놓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게 되면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그들에게 여권을 줘서 복사하게 해야 하는데 그들이 가져간 후에 필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다시 푸쉬카르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시는 분 중에 필자보다 이틀정도 늦게 자이뿌르로 오시는 분이 계셔서 다행히도 그 분께서 자이뿌르로 가져와 주셧다. 결국 그 분이 자이뿌르로 오실 때 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자이뿌르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또, 자이뿌르에서 처음에는 바로 바라나시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역에서 알아보니 기차표가 없었고, 다시 생각해보니 바로 바라나시로 가기는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맥그로드 간즈'라는 북부의 한적한 마을에서 쉬다 오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긴 시간이 문제였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델리로 갔다가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10시간이 넘게 다시 올라가야 했다. 너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하고 동선에서 멀리 떨어져있기에, 그곳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예전에 같이 다녔던 이태리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라자스탄의 남부쪽에 '분디'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여행지로는 유명하지 않은 한적한 마을이라고 했다. 한적하니 쉬기도 좋으면서 상당히 괜찮은 곳이라 해서 더 알아보니 그곳을 다녀갔던 소수의 사람들의 평이 꽤나 괜찮았다. 결국 '분디'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분디
'분디'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자이뿌르 버스스탠드에서 수시로 분디행 로컬버스가 출발한다고 했다. 마침 필자가 갔을 때는 로컬버스가 아닌 '디럭스 버스'가 가는 시간이라 운 좋게 편안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디럭스 버스; 로컬 버스는 시내버스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타고 좌석 또한 불편한데, 디럭스 버스는 의자도 시외버스처럼 푹신하고 뒤로 젖혀지기도 하는 버스이다. 인도 서민층 보다는 여행자들이나 중산층들이 이용한다. 요금은 당연히 더 비싸다)
하지만 분디는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막막했다. 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숙소가 좋다는 정보도 없을 뿐더러 어느곳에 숙소가 몰려있는지도 몰랐다. 한마디로 무작정 분디로 떠난 것이다.
결국 그나마 잘 터지지도 않는 핸드폰 인터넷을 부여잡고 알아본 결과 숙소 한곳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에는 또 다시 어두워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건기인데 왜 이렇게 비가 내리나 싶었지만 조금 지나니 비는 걷히고 다시금 더워졌다.
버스는 자이뿌르에서 '코타'라는 곳으로 가는 버스였다. 코타라는 도시가 라자스탄에서 교통의 요충지인 듯 싶었다. 그리고 코타로 가는 도중에 분디를 들르는 버스였다.
한참을 가던 버스는 어느 허름한 버스스탠드에서 멈추더니 여기가 분디 버스스탠드라고 내리라고 했다. 내려보니 시골 버스터미널 같았다. 그곳에서 오토 릭샤를 잡아타고 알아둔 숙소로 가자고 하니 다행히도 그곳을 아는듯 했다.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있는지는 몰랐지만 우선 얼마냐고 물어본 후, 무작정 흥정을 시도해보니 약간 요금을 깎을 수 있었다.(알고보니 깎은 값도 꽤나 바가지를 쓴 값이긴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싼 방이 있나 알아보니 심플하긴 했지만 깔끔한 방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집의 거실 옆에 필자의 방이 붙어있었고 화장실도 이집 거실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을 사용했다. 거의 홈스테이 같은 느낌이었다.
알아본 바로 이 집 주인이 '찐뚜'라고 해서 당신이 찐뚜냐고 물어보니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아냐며 놀라했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찾은 글을 말해줬다. 알고보니 이 숙소가 2007년에 문을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첫 손님이 한국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한국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필자가 본 것이었다. 첫 손님이었던 그 한국인을 그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한국인이던 필자 또한 이곳에서 이들과 가족같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 분디에서 2박 3일정도만 쉬다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낼수록 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결국 5일인가 6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 동안 한 일이라고는 '분디 성'을 올라갔다 온 것과 마을 주변을 둘러보고 중간의 호수를 둘러본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한국 집인냥 숙소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이집의 각각 3살, 2살인 애기들과 놀아주거나 단골로 가는곳 몇 곳을 정해놓고 그곳에서 노닥거리며 보냈다. 애기들이 집에서 울거나 보채면 놀아주고 같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시장에 있는 단골로 가는 달걀을 요리해주는 좌판에서 삶은 달걀과 오믈렛을 저렴한 가격에 사먹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했다.
달걀아저씨; 분디에 있을때 매일 한번쯤은 들렀던 달걀집 아저씨이다. 레스토랑에서 시키는 계란음식보다 이곳에서 먹는 것이 절반 이하로 저렴하다.
끼니는 LAKHA라는 곳에서 많이 먹었는데 필자가 가서 요리를 시키면 그제서야 재료를 사러 갔다가 돌아와서 음식을 만들었고, 다 만들면 식사하는 필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놀거나 아니면 그의 핸드폰으로 인도 영화나 노래를 듣곤 했다.
정말 분디에서는 여행을 다녔다기 보다는 쉬면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심지어 숙소의 게스트도 필자 밖에 없어서 일반 가정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그 식구들이 먹는 식사를 공짜로 얻어먹기도 했다. (메뉴는 무려 치킨커리였다.) 그리고 같이 앉아 술을 마시기도 했다. 또 하루는 찐뚜네 가족이 친정집에 놀러가버려서 혼자 식사를 하시기가 적적하셨던 찐뚜 아버지께서 손수 필자의 끼니까지 챙겨주셔서 둘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찐뚜네; 찐뚜네 가족들이다. 찐뚜의 부인만 사진에 빠져있는 점이 아쉽다. 찐뚜와, 찐뚜 아버지, 그리고 아들과 딸이다. 큰 아이가 딸이고 작은 아이가 아들이다.
그렇게 가족같이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계속 그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별다른 한 일도 없었지만 벌써 그곳에 있은 지 1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다른 여행지로 향하기로 하고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오르차'로 향하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분디의 인상을 좋게 해주는 일이 있었는데, 속소에서 찐뚜네와 작별을 하고 나와서 버스스탠드로 가기 위한 오토릭샤를 잡아타는데 처음 분디에 와서 탔던 가격보다 조금 더 싸게 불렀더니 오히려 릭샤꾼은 그것보다 더 싼값을 부르며 원래 그 값이라며 더 싼값에 데려다줬다. 지금까지 인도를 다니며 필자가 부르는 값보다도 더 싸게 가겠다는 사람을 본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버스스탠드에서 필자가 타야 할 버스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버스에서는 어떤 사람이 필자의 자리를 맡아놓았다며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다니면서 이렇게까지 좋은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필자를 여행자로만 생각하고 그저 돈을 더 받아낼 궁리를 하거나 사기를 쳐볼까 하는 사람들 틈에서만 있다가 이들처럼 나를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니 정말 새로운 기분이었다. 분디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르차
오르차에 가기 위해서는 몇 군데를 거쳐야 했다. 분디와 오르차 모두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우선 분디에서 1시간 30분이 떨어진 '코타'로 간 후, 슬리퍼 버스를 타고 '잔시'라는 곳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오르차로 들어가야 했다.
코타까지 무사히 도착한 필자는 같이 버스를 탄 사람들의 안내로 슬리퍼 버스를 타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들 또한 본인들이 가는 길은 다른 방향이었는데 필자를 위해서 일부러 돌아가는 수고를 했다. 그러면서도 필자에게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았다.
'코타'에서 잔시까지 가는 슬리퍼 버스는 미리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별 다른 어려운 점이 없었다. 그래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서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고 모기들이 엄청나게 날아다녀서 밤에 잠이나 잘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버스가 출발하자 그 많던 모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사라져버렸고 냄새도 시간이 지나가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나지는 않았다.
잔시에 도착한 필자는 오르차로 가서 바로 숙소를 잡았다. 중간중간에 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을 몇 상대했지만 별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오르차에서는 1박만 하기로 했다. 동화에 나올 법한 쉬기 좋은 동네라고 했지만, 분디에서의 생활이 너무 좋았는지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다시 여행지로 가다보니 좀 더 느낌이 별로였고 도착하자마자 바가지를 씌우려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있기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오르차에서는 오르차 성만 봤다. 오르차 성 자체는 상당히 좋아서 몇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숨겨져 있기도 해서 색달랐고 위에 올라가서 주변 풍경을 보니 이곳도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일반 동네들이 보이는 듯 싶더니 갑자기 큰 사원 하나가 우뚝 솟아있기도 했고 눈을 조금만 다른곳으로 돌리면 숲이 보였고 그 중간중간에도 다른 건축물들이 보였다.
오르차 성에 올라 내려다 본 오르차의 전경이다.
이어 바라나시로 가려고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그 구간이 인기 구간인지 기차는 모두 예약이 된 상태라 더 이상의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카주라호'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는데 혹시나 해서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니 다행히도 몇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예 오르차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표와 그 다음날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까지 같이 끊어버렸다. 잘못해서 기차표를 못구할바에는 있을때 미리 끊어두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르차에서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다시 잔시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이른 아침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합승릭샤들이 있었다. 결국 그 합승릭샤를 타고 싼 값에 잔시에 도착해서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카주라호
예전부터 이곳을 갈지 말지 많이 고민했었다. 2년반전의 여행에서도 이곳을 갈지말지 하다가 결국엔 가지 않았었고, 이번에도 원래는 가지 않으려 했다가 어쩔수없이(?)가게 된 느낌이 강했다.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야한 사원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유명한 '카마수트라'도 이곳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때문에 이 도시 또한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도시 중에 하나였는데 그 사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그 곳 사람들이 여행객들에게 집적대기도 하고 귀찮게 하는 일이 많다는 말에 그렇게까지 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던 곳이었다.
카주라호로 가는 기차를 타려 역에 갔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연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연착이 되는지 물어보니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결국에 무작정 플랫폼에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14시 반에 출발하여 19시 반에는 도착을 해야 하는데 연착이 되버려서 도착시간 또한 늦어지게 될 상황이었다. 결국 기차는 1시간 반 가량 늦게 들어왔고 도착한 시간은 거의 2시간 넘게 늦었다. 밤 늦게 내려서 상당히 부담스러워지려고 하고 있었는데 옆의 스페인 사람이 필자를 보더니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했다. 결국 그와 함께 동행하여 싼값에 이동할 수 있었고 숙소도 그가 알아놓은 곳에 싼 값에 묵을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허기진 우리는 밤 늦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인도에서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갈 거란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한국에 오게되면 다시 만나기로 하고 SNS를 교환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원도 같이 보러 가게 되었다. 다니면서 보니 그 사람은 같은 스페인 사람을 만나도 자신이 스페인 사람임을 밝히지 않고 영어로 대화를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은 영어를 더 많이 써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스페인어를 쓰면 필자가 아무래도 소외 될 것이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했다. 자기나라 사람들을 만나도 일부러 아는 척을 안하는 그의 스타일이 새삼 신기하기도 했고 필자를 배려해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다.
카주라호 사원; 카주라호의 사원중에 하나인 곳이다.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사원이다.
사원은 듣던대로 지금까지 보았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사원 벽면에 야한 조각상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원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이 정도일 줄 생각을 못했는데 말끔하고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도인 관광객도 많았고 어린애들끼리 몰려다니며 구경하기도 했다. 보존도 꽤나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야한 것 이외에 별 다르게 느낀 건 많이 없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멋있게 지어놨구나' 이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사원 안의 조각들을 찍어놓은 사진이다. 비교적 야하지 않은 걸 고른 것이다.
지금 필자는 바라나시에 와 있다. 2년 반만에 다시 찾은 바라나시는 여전히 더럽고 복잡하고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바라나시만의 매력 때문에 한 동안은 여기서 머물 듯 하다. 홀리축제도 현재의 상황으로는 바라나시에서 보내지 않을까 싶다.
3월이 되면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돌아간 것 같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인의 수 보다 일본인의 숫자가 더 많다. 아마 지금이 일본인이 오는 시즌인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일본인 여행객을 본 적은 처음이라 저번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바라나시에서의 생활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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