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인천교육 미래찾기(57)
대부분의 남자들은 세월이 흐르며 여자들에게는 없는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언제부턴가 술술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심할 때는 바람만 세차게 불어도 머리카락 날아갈까 걱정이 된다. (물론 느낌일 뿐. 아는 의사는 빗질에 빠질 정도의 머리카락은 그냥 둬도 날아갈 것들이라고 했다.) 그럴 때 가발광고의 비포 애프터 영상은 획기적이었다.
‘야, 역시 머리카락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구먼. 한 이십년은 젊어 보이는 것 같네….’
마흔 넘어가며 한 때 탈모 증상이 있던 내게 가발의 비포 애프터는 눈에 쏙 들어왔다. 그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가발을 사용하는 사람도 꽤 여럿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가 없어 차마 시도하지는 못했다. 성형의 비포 애프터는 더 생생하다. 이런 광고는 전과 후의 간극이 크고 많이 벌어질수록 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만일 비포와 애프터의 차이가 미미하다고 생각해보라. 가발이던 성형이던 그 사업 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어찌 외모뿐이겠는가. 사람의 내면도 어떤 시점을 계기로 성장의 대전환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중국 후한말의 무장 여몽이 그랬다. 오나라의 손권에게 의탁하여 지내고 있던 그는 타고난 무인으로 다른 분야에는 눈도 주지 않는 강골의 군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권으로부터 ‘장군이란 넓게 학문을 닦고, 세상사와 병법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듣고 공부를 시작했다. 성품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공부도 요령 없이 우직하게 들이팠을 것이다.
당시 오나라 최고사령관 노숙은 용맹은 하지만 교양 없는 여몽을 평소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찰 중 오랜만에 여몽과 대화를 나누고는 그의 놀라운 성장을 접하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가 생겼다.
“그대는 지난 날 소주에서 노닐던 내가 알던 그 여몽이 아니구려!”
“선비란 3일을 만나지 않으면 그 사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 없으니 눈을 비비고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중국인들이 무신(武神)으로 지금도 가장 존경한다는 관우를 번성의 싸움에서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사람이 바로 오나라 명장 여몽이다. 공부를 하기 전과 후의 여몽은 몸은 같은 사람이었으나 공부를 한 후 그의 내면은 새로워지고 변화되고 격상되었다.
이 사람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불과 일 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고졸자로 별다른 학연이 없었던 그는 여러 불편함이 있었겠지만, 가난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재판에서 90%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다 한 공안사건의 변론을 맡게 되는 데, 이 사건은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불법으로 체포, 감금, 고문하여 기소한 사건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를 부림(釜林-부산의 학림)사건이라고 불렀고, 이 사건으로 그는 인권변호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건 이전의 그는 성실하고 평범한 변호사였을 뿐이지만, 이후의 그는 인권을 위해 일신을 거침없이 희생하는 투사적 변호사로 거듭났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후자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는 나중에 대한민국의 아홉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전시(戰時)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다는 대참사를 맞았다.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0여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것이다. 두 달이 넘게 지났으나 여전히 6월 22일 현재 실종자 12명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사정 모르는 다른 별(?) 사람은 탑승자 대부분이 구조되고 12명만 실종된 것으로 오해할 수 도 있겠으나, 알다시피 이미 수백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2명이라 함은 가라앉은 배안에서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의 유해다. 보통 ‘실종’이라고 하면 생존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실종자’라는 표현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사고의 발생부터 원인파악, 후속 대책 등이 진행되며 국내외 언론이 들끓었다. 대참사를 계기로 자본만능주의와 탐욕에 대한 반성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목소리가 SNS 등에서 터져 나왔다.
과연 우리 사회는 거듭나기 위한 허물벗기가 진행 중인가?
6월 4일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진보진영에서는 세월호참사로 인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기지도 못했고 지지도 않은 선거라는 평이 나왔다. 다만 총 17개 교육감선거구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아마 이런 진단은 6 ? 4선거를 기점으로 교육지형에 진보적인 변모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편은 녹록치 않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새누리당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였고, 여론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직선제 추진에 관한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간선제니 직선제니 진절머리가 나다 못해 이제 ‘뭐든 어떠랴?’라는 생각마저 든다. 단, 교육적 진정성만 담보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교육적 현안에 관해 현장의 적극적 의견 수렴 없이 관료들이 책상에서 생각하고 고민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는 점이다. 교육 현안에 관한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민심의 동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데도 말이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에 대하여 (단위: %) | ||
동의한다 39.5 | 동의하지 않는다 45.6 | 잘 모름 14.9 |
공교육의 문제점은 (단위: %) | |||
교육이 이념 대상으로 되는 것 16.6 | 지나친 경쟁 구도 28.0 | 교육정책의 혼란 21.1 | 기타 34.3 |
혁신학교에 대해 (단위: %) | ||
필요하다 63.6 | 불필요하다 15.8 | 그저 그렇거나 잘 모름 21.6 |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대해 (단위: %) | ||
불필요하다 49.4 | 필요하다 29.5 | 그저 그렇거나 잘 모름 21.2 |
전교조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단위: %) | ||
긍정적이다 50.3 | 부정적이다 41.5 | 모름 8.2 |
진보교육감으로 향후 교육 환경이 변할까 (단위: %) | ||
변화 있을 것 74.4 | 변화 없을 것 21.3 | 모름 4.3 |
그러나 어쨌든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는 2014년을 기점으로 비포 애프터로 비교될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전에 비하여 얼마나 비약적이냐는 나와 너, 우리의 생각과 손, 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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