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긴 시간,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떠들썩하던 부평 문화의 거리는 이제야 조용하다. 매서운 겨울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사람들의 왕래는 평소보다 더욱 뜸하고 가로등만이 소리 없이 거리를 밝혀주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가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 때였다. 낯익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선생님, 배고파요!" "선생님, 추워요!"라고 떠들며 다가오는 그들을 아웃리치 천막 부스로 데려왔다. 이들의 얼굴엔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 웃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 배어 있는 그들의 쓸쓸한 이면을 느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캄캄하고 추운 이 밤이 마치 그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얼굴로 오히려 우리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농담도 건넨다. 몇 달 전만 해도 사탕 하나씩 들고 다가가는 우리들을 경계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색 없이 친구처럼 우리를 대한다.
13년간 밤거리를 헤매며 거리의 아이들을 만났던 미즈타니 오사무의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 그 책은 나에게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밤 깊은 시간 거리를 헤매는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책은 나에게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의 살아있는 아픔으로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나쁜 게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자신을 맞아 주어야 할 부모의 빈자리에 눈물만 흘리던 아이, 선생님을 보자마자 선생님의 두 팔에 안기며 응석을 부리는 아이들, 함께 몰려다니던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가 된 두려움에 눈물짓던 아이, 흡사 지어낸 것만 같은 참담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말하는 아이들까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먹먹해지는 사연을 가진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일 뿐이다. 이렇게 살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기특하다고 칭찬했던 저자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단 몇 개월의 짧은 활동이었고 특별한 무언인가를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믿고 찾아와준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그들의 추위와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상담지원센터와 여러 기관. 그리고 여러 제도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춥고 배고파 한다. 아마, 몸이 춥고 배고파서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이들에겐 그들의 부모를 대신할 관심이 필요하다.
그들의 부모를 대신할 만한 거창한 관심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을 나쁜 아이가 아니라, 그저 조금 특별한 아이로서 바라봐줄 수 있는 관심.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면 이들의 밤은 그저 밤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 될 것이며, 어쩌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