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인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천만의 가치창조를 위한 열린 정책 토론회' 장면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
민선6기 유정복 인천시정부가 비전과 슬로건을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로, 시정목표를 “새로운 인천 행복한 시민”으로 정한 이래, 올해 초부터는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재창조"를 강조하며 다양한 논의 자리 마련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계획 마련에 분주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는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인천의 문화적 가치 창조>라는 주제로 문화정책토론회를 가진 바 있고, 3월 11일 인천시청사 대회의실에서는 유정복 시장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인천만의 가치창조를 위한 열린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여 지역의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3월 16일에는 백령도행 배에서 ’섬 프로젝트 선상토론‘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접하며 갖게 되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그 간의 시정부가 무분별한 개발이나 투자유치 사업 등 경제 논리에 치우침으로써(민선4기 안상수 시정부는 “세계 일류 명품도시 인천 건설”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경제자유구역 조성사업과 전면 철거식의 도시재생사업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민선5기 송영길 시정부는 보다 직접적으로 “대한민국의 심장, 경제수도 인천”을 내세웠다.) 이러한 정체성과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에 앞장섰거나 방기해 온 점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동안 앞선 시정 담당자들은 식민지와 분단, 이식된 근대,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며 발전과 성장, 효율과 속도만을 중시하며 과거를 부정하고, 지역의 정체성은 무시해온 대한민국이 지닌 일그러진 역사의 궤적을 같이 해 왔다. 그 속에서 인천이라는 도시가 지닌 속살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인천이 지닌 시공간적 특성으로부터 오늘의 문제를 넘어서고 미래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의 모습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유정복 시정부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그 자체로 이는 긍정적이고 환영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섣불리 판단하고 규정짓기 어려운 것이 이와 관련된 인천시(장)의 구체적인 발언과 행보를 보면 앞선 시정부가 추진해왔던 경제 논리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진정성을 의심스럽게 하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무색해지는 유정복 시장의 행보와 사업
유정복 시장이 맞지도 않은 방위개념의 인천 구(區) 명칭(현재의 중구, 동구, 남구 등의 명칭이 붙여진 유래를 살펴보면, 1962년 인천시가 여러 개 출장소로 나눠 행정을 효율화하면서 방위기준으로 획정하고 중부, 동부, 남부, 북부로 출장소명을 붙였다. 그 중 중부출장소는 당시 이곳이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시청이 자리 잡고 있어서 붙인 명칭이었고, 이를 ‘중심’으로 방위 기준을 삼았다. 그 후 인천시가 빠르게 확장되고 1968년 구제를 실시하게 되면서 안이하게 이 출장소명들을 지명으로 이어간 것이 오늘의 구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인천 전체 권역으로 볼 때 위치상의 방위로도 맞지 않고, 더욱이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또한 담지 못하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을 때만 해도 나름 신선했고 적지 않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지역의 모 언론에서 <인천의 정체성 찾기> 기획 연재로 연결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유정복 시장이 이와 관련하여 강조해 온 내용 즉 “▶인천이 가진 최초, 최고의 역사 ▶바다와 섬 등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인천만의 지리적 특성 ▶공항, 항만, 경제자유구역 등 인천이 지닌 잠재력을 기반으로 인천만의 가치창조를 위한 대표 브랜드사업”을 보면 그 실체와 의도가 무엇인지 확인되기에 이른다. 인천시가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며 소개한 취지문 속 “인천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발굴해 인천의 발전방향으로 삼기 위해 마련됐다"라는 표현을 보면 인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표현도 눈에 띠지만 ‘브랜드’ ‘경쟁력’ 등 기존의 인천시정부나 여타의 지자체에서 도시상품화의 일환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눈에 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면 과연 제대로 된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는가에 회의적인 시각을 들게 하는 모습들이 드러난다. ‘인천인물’을 찾는다며 “교육·언론인, 문화예술·체육인, 기업·의료인·단체, 정·관계인, 법조인 등 인천 출신의 사회지도층을 발굴하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성공담 및 인생관 강연회를 개최하고, 사회적으로 명성을 높인 인물을 '올해의 인천인'으로 선정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일 예정”이란다. 이런 분들도 물론 필요하고 관심을 가져 그 지혜와 삶의 철학, 활동의 성과를 지역사회에 환원 및 접목시키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곳곳에서 묵묵히 각자의 일을 충실히 수행해오며 인천을 인천답게 만들어온 평범하고도 남다른 분들도 많은데, 이런 분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기존의 사고와 시각으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해당 주체의 변화가 없는 정체성 찾기와 가치 창조는 기존의 사고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정복 시장의 또 다른 행보를 보면 앞서 소개했던 여러 논의와 의견 수렴의 장도 ‘보여주기’ 식에 불과했고, 새롭게 인천의 정체성을 찾고 인천만의 가치를 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사업 계획에 이러한 문구를 가져다 붙였다는 사실 또한 확인된다. 이미 올 1월 초에 인천시가 지역 섬에 대한 특성을 살려 세계적 브랜드로 육성시키기 위한 '매력과 감동을 주는 명품섬 조성'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3월 16일 전날의 ‘선상토론‘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된 그날 또 다른 언론에서는 “인천시, 168개 섬 테마별로 특화 개발”이라는 기사가 소개되었다. “인천시는 해양레저와 관광 등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인천지역 168개 섬(무인도 포함)을 테마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로 했다”고 한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162129195&code=620104) 선상토론을 통해 표명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색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보름이 지난 4월 1일에는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가 인천 섬 관광 활성화와 다양한 관광자원 홍보를 위해 ‘2015년 인천을 대표할 10대 섬과 10대 도심여행테마를 포함하는 베스트여행 20선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10대 섬을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매겨 발표하였다.
결국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라는 말은 또 다른 방식의 개발 이익 창출을 위한 수사적 표현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말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지역과 장소를 바라보는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시선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의지와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섬은 물건이 아님에도 '명품'이란 이름을 함부로 붙여 어설픈 인간의 잣대로 꾸미려 하는 것 자체가 오만과 무지의 산물인데, 그것도 모자라 대표 10곳을 선정하고 순위까지 매기는 일을 우매한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섬은 섬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세기 시인의 말((재)인천문화재단 ‘문화의 길’ 총서 『흔들리는 생명의 땅 섬』, 한겨레출판, 15쪽.)이 무색해진다. 더더욱 바다와 섬을 살리려면 육지에서 행했던 그간의 온갖 잘못을 반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를 그대로 바다와 섬으로 가져와 또 다시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물론 바다와 섬에 대한 관심은 많아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동안 뭍의 사람들이 너무나 소홀하고 외면하면서 섬 주민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개발에 대한 기대나 욕구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자연생태의 황폐화는 물론 뭍으로부터의 대소규모 자본의 유입(대형 호텔이나 콘도에서부터 팬션 등의 건립)으로 인해 섬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 있다. 결국 공멸하거나 싸구려 관광지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섬 생태 환경도 살리고 주민들의 삶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이나 분석, 대안은 전혀 거론이 안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짐은 물론 오히려 이에 반하는 개발 사업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인천시가 밝힌 검단~장수 간 도로 신설 계획은 대표적이다. “땅투기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도시공사가 추진 중인 검단신도시 분양율을 높이기 위해 인천내륙의 유일한 자연녹지이며 300만 인천시민과 미래세대의 허파인 한남정맥을 내어주겠다는 발상”인 것이다.(가톨릭환경연대 인천녹색연합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성명서(2015. 4.15)) 이러한 일은 또 있다. 인천시와 국토교통부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인천 송도습지보호지역을 관통하는 제2외곽순환도로 건설 계획을 세워 지역 환경단체와 국제기구가 이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얼마 전에는 코레일이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 경인철도 개통과 더불어 한국철도 탄생역인 제물포역으로 시작하여 한국전쟁 때 파괴됐던 시설을 1960년에 신축하여 복구한 간이역인 인천역을 없애고 오피스, 오피스텔, 호텔, 멀티플랙스, 전문매장 등의 시설을 도입하는 민자역사 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를 포함한 지역 시민문화단체 및 공간으로부터 재검토 요구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를 외치는 유정복 시장이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채 오히려 개발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과 겹쳐지며 이러한 구호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자기모순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천시청사
진정성 확보는 일관성 확보와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이상과 같은 사례를 통해 볼 때 민선6기 유정복 인천시정부의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는 결국 이전 시정부가 추진해왔던 경제 논리의 또 다른 버전임이 결국 확인되었다. 즉 도시상품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일관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앞에서 살펴 본 대로 그 어디에서도 이를 찾을 수가 없다. 한쪽으로는 인천의 정체성을 찾고 인천만의 가치를 창조하겠다고 하면서 한쪽으로는 기존의 사고와 시선, 태도와 달라진 바 없거나 이에 반하는 사업들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이 말을 믿겠는가.
제대로 된 진정성을 보여주려 했으면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과거를 돌아보는 일부터 선행했어야 한다. 즉 인천의 역사와 문화, 공동체, 자연 환경 및 생태 등 인천만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특성이나 자산 등을 중시하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으려 한다면 이를 훼손하고 파괴하며 투기를 조장하는 등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현재 곳곳에 펼쳐놓거나 계획 중인 각종 개발프로젝트에 대한 성찰과 재검토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전제되고 여기에 기반하여 추진했어야 시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가 '과거'를 통해서도 필요하지만, 지구촌 또는 미래 후손들의 삶의 문제와 관련하여 여타의 도시들과 '함께'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와 과제, 이를테면 '지속가능도시' 또는 '생태공동체도시‘ 등에 대한 비전이 마련되어야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그러나 유정복 인천시정부는 이러한 방향성이 없다 보니 무엇을 위한 ’찾기‘인지 ’창조‘인지가 불분명해졌고, 결국은 경제 논리의 반복이자 개발 사업의 포장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인천의 정체성 찾기와 인천만의 가치 창조”는 또 다른 표현으로 시민들을 호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정복 인천시정부는 반성할 줄을 모르고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천시 재정이 파산 직전이고 그 중에는 도시공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인천시부채 13조 중 8조로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화시킴은 물론 ‘관광’을 내세워 또 다른 개발사업을 벌이려 인천관광공사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고, 지난 4월 중순에는 3일 동안 국회의원회관에서 ‘인천의 가치 및 정체성 찾기 -인천! 국회상륙작전’ 행사를 열었다. 결국 여기에 놀아나지 않는 시민의 깨어있는 안목만이 이를 막고 바람직한 도시 비전을 제대로 세워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