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좀 그렇지만, 필자는 공부를 잘 못하기도 안 하기도 하여 수능시험을 세 번 본 경험이 있다. 적어도 수도권에서 재수생이나 혹은 공무원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떠올리는 지명이 있다. 바로 노량진일게다. 필자도 1999년을 노량진에서 보낸 경험이 있다. 사실 노량진에서 진은 포구를 의미하는 지명이다. 용산과 마주보고 있는 나룻터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의미로 노량진을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게다.
노량진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노량진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은 노량진하면 떠오르는게 뭘까? 아마도 대부분은 육교를 떠올릴 것이다. 노량진역에서 내려 각자 다니는 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대부분 육교를 건너가야 한다. 수십 만 명의 수험생들이 모두 육교를 소중하게 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량진이라는 우리나라의 다소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장소를 사람들의 기억과 매개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노량진역의 육교가 없어졌다. 도시재생, 혹은 도시재정비의 일환으로 철거된 것이다. 미관상 육교가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정작 노량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수험생이지만 그 지역의 주체는 결국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쉽다. 1999년 초였을까? 수능을 한 번 더 봐야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던 기억이 있다. 몇날 며칠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해 수능을 봐야하는 사람치고는 시간을 말 그대로 죽이면서 살았었는데, 어느 날 그 해에 입시에 붙은 친한 친구가 집에 찾아와서 어딜 가잖다. 어딜가냐고 물어도 아무말도 하지 않길래 그냥 전철을 타고 따라갔는데 우리는 노량진에서 내렸고 육교에서 노량진학원가를 처음 바라보게 되었다.
아직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딱 봐도 수험생으로 보이는 수많은 학생들이 노량진일대를 누비고 있는게 보였고, 손에는 다들 책 한권씩을 들고 있고 그 모습들은 분주해보였다. 이게 노량진의 첫 인상이었다. 아마도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노량진에서 수능을 준비한 사람들은 기억할거다. 언어영역에는 유두선, 수리영역은 한석현, 이들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많은 학생들은 단과반을 수강하기 위해서 이틀 전부터 줄을 섰다. 심지어 부모님들이 대신 줄을 서서 학원에서 나누어 주는 번호표를 받아가기도 했다. 한 해 수능을 90만 명씩 보던 입시시대혹은 입시지옥이 절정이던 시절이었다.
너희들이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면 예전처럼 좋아질거라던 어른들의 말과 달리 90년대 말 학번과 2000년대 초반 학번들은 좋은 시절을 맞이하지 못했다. 덕분에 고생해서 들어간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한 학생들의 상당수은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IMF 이후부터 2000년대 접어들면서 이러한 현상이 본격화됐다. 콩나물시루 같던 수능단과학원들은 이제 인터넷동영상강의시장으로 흡수됐고, 수능을 가르치던 강사들은 공무원시험강사로 변신해서 그 아이들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교사되기 위해서 학생들은 노량진으로 몰려들었다.
시험이 장기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순히 학원만 있던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시설과 따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이 계속 만들어졌다. KBS에서 방영하는 다규멘터리3일에서도 이를 보도하기도 했고 종종 학원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노량진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노량진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도전의식이 없는 젊은이들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이 도전의식이 없다고치자, 그들이 시험을 보게 만든게 누구인지도 그 누구도 이야기하거나 반성하지 않으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욕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고 비난이다. 비판이던 비난이던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최소한 공무원시험은 아버지가 누구라던가 어느 학교 출신이라던가 이런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런 지형을 만든 사람들의 자식들이 지금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량진에는 개인적인 기억과 현재의 실업문제와 사회구조의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다. 겹겹이 쌓여있다. 이 쌓여있는 층의 두께를 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서 고학번의 나이가 얼마정도인가를 보면 대충은 맞을 것 같다. 노량진의 기억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갔고, 이제는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정체성 혹은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요즘 도시재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재생이 제대로 진행되고 작동되기 위해서는 계획과 사업의 추진이 중요하다. 문젠 이러한 계획과 사업에는 지역이 갖고 있는 공동의 기억과 이야기를 포함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장소가 하지 않는다. 장소를 매개로 떠올릴뿐이다. 그러나 그 매개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생을 한다고 이런 매개체를 지운다면 그렇게 당신들이 떠들던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건 도대체 어디서 발휘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인천에서도 도시재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창이다. 인천에는 오래된 동네도 있고 청라처럼 만들어진지 얼마 오래지 않은 동네도 있다. 주로 재생은 만들어진지 오래된 동네에서 진행되는데 노량진의 경우처럼 장소가 품고 있는 기억의 층층들을 혹시나 지우는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항상 든다. 주민생활을 개선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 자체를 막자는 건 아니다. 오래된 동네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 같이 살았던 사람들, 주변 지역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기억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텔레비전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먹방과 힐링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먹으면서 위로받는 것 같다. 여기에 더 큰 위로를 받으려면 장소의 기억까지 추가되면 더 힐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장소에서도 우린 위로 받을 수 있다. 원래 도시재생을 하려고 했던 이유가 뭔지 지금 벌여놓은 사업목록들을 펼쳐 놓고 무릎을 맞대고 따져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도시재생이 꼭 창조적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