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시발지, 부평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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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시발지, 부평을 엿보다
  • 부평사람들
  • 승인 2016.02.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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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사랑과 평화' 보컬 이철호씨를 만나다


<밴드 '사랑과 평화'에서 보컬을 맡은 이철호 씨>


<부평사람들 - 인천in 협약기사>

 

부평은 1950~70년대 미군기지 주변 50여 개 음악클럽을 중심으로 수많은 가수를 배출한 한국 대중음악의 거점 기지 같은 곳이었다. 가왕 조용필도 유명해지기 전 부평을 거쳐 갔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다.
1970년대 미8군에서 활동을 시작해 한국 음악의 새 지평을 연 밴드 ‘사랑과 평화’ 보컬 이철호 씨를 만나보았다.


시대를 앞서 온 펑키 음악의 전설


이철호 씨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흑인음악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장본인이다. 흑인 필의 펑키한 곡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알려졌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66년에 음악을 처음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 너덧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밴드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피스(Peace)라는 팀으로, 1973년경에는 영 에이스의 멤버로 음악을 해오다 1975년부터 '사랑과 평화'로 활동을 펼쳐왔다.

사랑과 평화는 당시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등 수 많은 곡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이후 이들은 전국의 미 8군을 주 무대로 공연을 펼쳤다. 공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생소한 소울, 펑키를 들려주었는데 대중은 처음 접하는 이들의 음악에 열광했다.

“클럽에서 우리가 공연한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클럽은 거의 장사가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다른 밴드도 구경을 왔어요. 당시 미군, 특히 흑인들에게 음악인으로서는 최고 등급을 받은 밴드가 우리뿐이었죠.”

이런 인기의 비결 뒤엔 밤새워 가사를 외우고 악보를 만들어가며 노래를 연습했던 노력이 뒤따른다. ‘어떻게 하면 흑인들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수없이 고뇌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 가수는 잘 부르지 못했다는 음악을 그는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펼쳐놓았으니 펑키 음악의 전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음악도시 부평에 대한 기대감 UP!

과거 부평이 대중음악의 시발점이었다면 올해는 음악도시가 다시 조성되는 원년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부평에서 26년 동안 살아온 구민으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음악 활동을 하는 부평구민의 자격으로 작년에는 부평아트센터에서 주관하는 음악공연에 참여했어요. 호응도가 높아 굉장히 즐거운 무대였죠. 또 애스컴시티를 배경으로 음악인들의 삶을 그린 연극(아름다운 시절)도 봤는데 아주 감명 깊더군요.”

그는 1960~70년대, 클럽에서 공연 활동이 왕성했던 것에 비교하면 오히려 요즘이 공연무대는 더 줄어든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부평이 다시 음악도시의 근거지가 된다는 소식을 그는 누구보다 반겼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하지만 이제 사랑과 평화라는 밴드의 히스토리를 남기는 작업이 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음악으로 표현해야겠죠.”

언제나 음악으로 충분히 행복했고 앞으로도 음악이 있어 행복할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곧 조성될 음악도시 부평에서 또다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은 그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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