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봤다아. 우리 민정이 돈도 읍는데 뭐 그렇게 비싼 향수를 사왔냐아."
"그거 냄새 오래간대. 그동안 할무니가 발랐던 향수중에 젤로 향이 쎈거야."
"그랴...고맙다. 내 새끼 ‥비쌀거인디."
"안 비싸. 할무니. 오십프로 세일했어."
"오십이 뭐?"
"아, 할머니 싸게 샀다고."
"싸게 샀다고? 싸믄 거저 줬간? 우리 민정이 맛있는거 사묵을 돈 이 할미땜에 다 썼겠구만."
"할무니, 요즘 나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어. 그러니 할무니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되여. 근데 할무니 향수 아깝다고 한 방울만 찍 뿌리지말고 아까와하지말고 아끼지말고 팍팍 뿌려. 할무니 알았지여. 다 쓰면 내가 또 사다드릴께여."
우리 심계옥 어무니는 향수를 좋아하십니다.
돌아가신 심계옥엄니의 엄니 즉 나의 외할머니 정원래여사도 ㅡ오랜만에 불러보는 울 외할머니 이름ㅡ향수를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나도 우리 민정이처럼 울 정원래 할무니 향수 참 많이 사다 드렸었는데.‥
"이거믄 되냐?"
슬그머니 방에 들어갔다 나오신 심계옥 엄니,
만원짜리 한 장을 민정이에게 내줍니다.
"아후 할무니됐어여."
"되긴 뭐가 되야. 이 할미땜에 우리 민정이 떡볶이 사묵을 돈 다 썼을거인디. 암말 말고 집어넣거라."
하시며 민정이 손에 돈 만원을 꼭 쥐어 주시는 심계옥할무니.
"고맙습니다, 할무니
근데 할무니 돈 남어요.
내가 엄청 싸게 샀어."
하며 민정이가 오천 원을 할머니에게 드립니다.
"됐다. 그럼 너 써라. 돈도 다 써서 없을거인디."
"할머니 나 돈 많아.엄마한테 또 달라고 하믄돼."
"내가 왜?
내껀 사지도 않았으면서.
저거 얼마줬어?"
심계옥엄니가 방에 들어가시고 난 후 큰넘한테 슬쩍 물어봅니다.
"오십프로 할인해서 육만 원"
"뭐?뭔놈의 향수가 그렇게 비싸? 몇 알캐나 들었다고"
"엄마 작을수록 향수는 비싸."
"향수가 무슨 고추야?
작은게 맵게? 아니 비싸게."
"엄만 향수를 안 발라서 값을 몰라 그러신거고..."
"모르긴 뭘 몰라 얘가 얘가 간만 커가지고."
"향수가 비싸서 향수지. 싸믄 그게 향수간? 싸구려 향수는 못써. 냄새가 벨루야."
"어이구 그러셔. 딸, 엄마도 향수 좋아해. 나도 사줘봐 향수."
"엄마는 아빠보고 사달라그래."
"치사빤스다아~"
"하하 뭐 그래도 할수 읍어."
"관둬라, 관둬. 치사하다, 치사해. 나도 내 손녀한테 사달라고 할거야."
"나 결혼안할건데."
"어후 그르지마로.
지금까지 너 뒤치닥거리 한 것 만으로도 충분햐."
"나는 부족햐아. 나는 시집안가고 할머니랑 엄마옆에 평생 꼭꼭 붙어살거야."
소파에 앉아 실실거리던 큰넘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내게 만원짜리 한 장을 내밉니다.
"엄마 이거 나 없을 때 할무니드려."
민정이가 즈이 할무니에게받은 만원짜리 한장을 나에게 다시 건네줍니다.
"니가 드려."
"내가 드림 안받으셔.
할머니가 뭔 낙이 있겠어.
수중에 돈이 있어야 든든하지."
아니 저 말은 내가 울 외할머니 정원래여사한테 했던 말인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엄마 울어여? 그케 서운해?
아고 울엄마 늙나보다. 툭하믄 울고. 엄마꺼 여어, 여기. 장난친거야."
민정이가 큰 향수병 하나를 건네줍니다.
"딸, 근데 내꺼는 왜 이렇게 커?"
"엄만 큰거 좋아하잖아."
"작은 향수가 좋은거라며?"
"작은건 엄마도 할머니되믄 사주께."
언제 아이가 저렇게 컸지?
"아고 울 엄마 늙나 보네. 툭하믄 울고."
"아니거든, 나도 우리 할머니 보구싶어서 우는거야."
보고싶다.우리 외할무니
향수를 좋아했던, 아흔 셋에 돌아가신 울 할메 정원래여사 보구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