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확인하고 희망을 놓지 않게 한 4.13 총선의 여파가 아직도 가슴에 그대로이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그렇다. 국민의 의식은 진보하는가? 그렇다. 오랜 질문에 4.13총선은 결과로 응수했다. 우리는 그간 역사의 경험으로 야권의 분열은 패배라고 확신했고 휘몰아치는 여론의 광포함 속에 개헌저지선이 무너질까 가슴을 떨었다. 그러나 국민은 절묘하게, 너무도 절묘하게 알파고보다 정확히 여당을 심판하고 야당에게 준엄하게 경고하며 신의 한수와 같은 결과를 끌어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 편의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들이 속출했다. 그 중에서 관심을 쏙 잡아당긴 것은 부산 연제에서 당선된 흙수저 국회의원 김해영이었다. 그는 동토의 땅이라 이야기되는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로 출전했고 “끊어진 기회평등의 사다리를 잇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의 이런 약속을 부산 시민들이 믿어준 것은 그가 바로 흙수저였기 때문이리라. 고모 집에 얹혀살며 점심굶기를 일쑤로 하고 가출로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가 1996년 이래 20년 내리 새누리당 후보가 뽑힌 곳,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2선 의원 김희정 새누리당 후보를 이긴 김해영의 승보를 듣고 많은 이들이 ‘흙수저 신화’라 평했다.
흙수저 신화는 계속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수저 입시’, 학생부종합 전형에 대해 다시 곱씹게 된다. 최근 대입의 대세가 되고 있는 학생부 종합 전형은 수시의 한 유형으로 교과 성적과 함께 봉사, 동아리, 진로탐구, 독서 등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고 있다. 전체대학의 수시전형 비율이 2017학년도 69.9%에서 70% 훌쩍 넘어 80%선에 다달았고, 수시전형의 50% 이상이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이루어고 있는 현실에서, 이 논란은 입시제도에 큰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학생부 종합전형은 애초에 1∼2점 차이로 학생들의 가능성을 재단하는 기존 입시제도의 일원성을 극복하고 학생들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개개인의 ‘꿈과 끼’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무색하게 비교과의 반영은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그리고 학교순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학생 배경 전형’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부모들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시대회까지 개인과외를 붙이기도 한다. 비교과 코칭의 경우 겨우 2시간에 20만원이 호가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경우 비용은 더욱 높아져 프로젝트 당 수백만이 들어가기도 한다. 워낙 학생부종합전형이 복잡해 학부모의 정보전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부모들은 아예 팀을 짜서 정보를 공유하고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기도 한다. 또한 ‘금수저 학교’ 만 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고소득계층 출신이 많은 강남 3구 일반고나 특목고·자사고에서는 서울의 명문 대학교 교수 혹은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특별 강의는 물론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는 프로그램을 ‘교내 비교과 활동’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한편 일반고 안에서의 불평등과 차별도 또 다른 장벽이다. ‘명문대’ 입시에서 실적을 내기 위해 동아리,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 비교과활동의 기회를 1등급(상위 4%) 정도의 소수 상위권 학생들에게 몰아주는 것이다. 과거 우열반체제는 심화반, 특별반 등의 형태로 건재하고 심화반 안에서도 서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남다른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이 이런 상위권 학생들에게 집중돼 심화반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은 물론 보충수업비도 면제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 불평등한 입시제도 환경에서 일반고가 살아남기 위해 흙수저들을 희생시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결과는 올해 서울대 입시에서 더 확연해졌다. 2013학년도 서울대 합격생 비율 중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 강남 3구 일반고가 합격자를 독식하는 쏠림현상은 42.0%였고 2016학년도 입시에서는 49.1%로 늘어 절반에 달했다. 전국 1799개 고등학교(2015년 기준 직업교육을 하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제외) 중 서울대 합격자를 1명이라도 배출한 고교는 2016학년도 824곳에 불과했다.
대학입시에서 나타난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계층 대물림의 민낯이다. 게다가 금수저들에게 사회적, 제도적 혜택이 공공연히 집중되고 있어 계층 대물림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양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수저 입시’는 이제 걷어차진 계층사다리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이동 사다리가 부러진 우리사회의 모습을 풍자한다. 부러진 계층사다리는 청년 실업과 청년 소득, 그리고 교육의 현장까지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를 수습하고 부러진 사다리를 동여매고 다시 일으켜 세울 희망을 정치권에서 이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흙수저로 입시를 준비하는 우리의 아들, 딸을 위해 20대 총선에서 이 땅의 부모들은 그래도 면피를 했다. 이제 20대 국회의원들이 흙수저들에게 화답해야 할 때다. 이제 ‘금수저 입시’를 개선할 사회의 다양한 논의와 노력을 수렴하고 흙수저와 그 부모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제도적 변화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응답을 지켜보며 다가올 대선에서 더 정확히 국민의 뜻과 요구를 각인해야 하리라.
< 인천시교육청 입시설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