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라."
진종일 집에서 중중거리는 내가 안스러웠는가. 심계옥엄니 목욕시켜드리자마자 나를 집밖으로 내모신다.
그래서 나왔다. 마음은 불안한데 봄볕이 너무 좋아 나왔다.
심계옥엄니 목욕도 시켜 드렸고 낮잠 주무실테니 두 시간 쯤 여유가 있겠다 싶어 좀 멀리 걸어나왔다.
"할무니 뭐 심으세요?"
"옥수수..."
남의 밭에 강낭콩도 심으시고 결명자도 심으시고 토마토도 심으셨다는 할머니.
"내가 결명자를 심어서 키로에 오천 원에 팔았다. 남들은 7~8천원 받았다는데."
"할무니도 그렇게 받으시지.
"에이, 뭐허러. 넘의 밭에 심거 먹음서 ‥내가 쪼금 먹고 말지."
전 세계적으로 울할무니들은 너무 착하다.
"할무니 이 까만 비니루안에는 뭐 심으셨어요?"
"강낭콩"
"근데 할무니, 깜장비니루는 왜 치셨어요?"
"풀 자라지마라고 쳤지."
"그렇구나. 와 할무니 땅이 꽤 넓어요.
혼자서 가꾸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긴~재밌어. 내가 파밭에 가서 일도 해봤는데. 노는 손이 아니라서 뭐라도 해야 맘이 편햐."
"파밭이여? "
"응, 파밭에서 일하고 돈 벌었어."
"와, 울 할무니 대단하시다. 몇 시부터 일하셨어여?"
"몇 시 부터가 어딨어. 해뜨면 나가서 껌껌해질 때까지 일하는거지."
"진짜여? 그러구 얼마나 받으셨어요?"
"사만원"
"아고,울 할무니 힘드셨겠다."
"힘들긴 뭐 노느니 뭐해.연금 삼십 만 원 받는거에 쫌 보태서 애덜 과자값이나 할까하고 했지."
"노령연금은요? 안받으세요?"
"내가 집이 있어서 노령연금은 못받지. 나 집 큰거 있어. 30평아파트에 살아."
"우와, 할무니 부자시다아.~"
"그랴 나 부자여. 아들 앞으로 집 하나 있고.그것도 내이름으로 있어서 노령연금 못 받어."
"왜 아들집을 할머니 앞으로 해놨어여?" ?
"뭐 이러저러한 이유로. 관리비도 딸이 내주고 나는 돈 나갈게 없어."
허리아프시담서 언능 옥수수 심고 들어가야겠다 하시면서도 박영숙할무니 이 얘기 저얘기 이야기주머니가 활짝 열리셨다.
울 할무니 이야기가 얼마나 고프셨으면.‥
"와,할무니 여기다가 또 뭐 심으셨어요?"
"토마토 심어서 먹었지.
땅주인도 주고. 노지토마토라 아주 달고 맛있거든.
배고플 때 하나 따서 먹어봐. 세상에 그런 맛이 없을걸. 토마토가 얼마나 맛있던지 고마워서 땅주인에게 좀 갖다줬거든. 그랬더니 땅주인이 비니루도 사다주고 비료도 만오천 원 주고 사다주고 나보고 또 토마토를 심어달래."
"이런, 할무니 힘드신데. 할무니 무리하지마시고요. 심심하니까 셤셤 힘들지 않게 조금씩만 하세요."
"그러게 토마토든 옥수수든 거저 나오는 줄 알아. 저번에도 땅주인이 토마토를 나 없을때 다 따갔더라고."
"이런,할머니한테 말도 안하고요?"
"응, 말도 안하고 ‥나와 보니까 다 따 가버렸더라고 ‥나도 사람이라 기분이 안좋더만"
"당연히 안좋죠. 할무니, 토마토 심어주지마요. 할무니 힘들게 가꾸신걸 말도 안하고 가져가다니. 나쁘다,진짜.‥"
"그니까 부자들은 돈이믄 다 되는줄 알아."
"그니까 해주지마세요."
"그래도 어떻게 그래. 비니루도 시다주고 비료도 사다주고 그런걸."
"사다주지 말라그래요.
거저 토마토가 열리나 이 땅도 할무니가 가꾸니까 옥토가 되았구만. 저기 저 내버려둔 땅, 거친땅이 안 보이나? 누구예요? 내가 가서 꽉 꼬집어주게."
"하하 우리 이쁜 색시가 화내주니까 나는 이거로 됐다.속이 뻥 뚫린거 같다."
햇볕이랑 놀려고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 할머니.
옥수수 심으러 밭에 나온 박영숙할머니. 남의 밭에다가 강낭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정성스레 밭을 일구시는 할머니.
꼭 예전에 시골에 혼자 사실 때 이거 저거 심으시던 우리 심계옥엄니같다.
울 어메도 가꾸지않고 내버려둔 남의 땅에 모기뜯겨가며 옥수수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그랬는데.
서른 아홉에 청상되셔서 삼남매를 혼자 키우셨다는 할머니. 울 심계옥엄니도 서른 아홉에 청상되어 나를 키우셨는데 ‥두 분이 똑같다.
"이거 갖다가 조물조물 무쳐 먹을래?"
정성스레 가꾼 부추도 따주시고 "미나리도 무쳐 먹을래?
가만 쑥도 튀김가루 무쳐서 튀겨먹음 꼬소하니 맛있다." 하시며 이거저거 따주시는 할무니. 할무니 얘기도 좀 더 듣고
할무니랑 더 놀고 싶었는데. 나땜에 일 못하시는거 같아서 궁디에 묻은 흙을 털고 서둘러 일어났다.
"할무니, 잘 묵으께요."
인사하고 뒤돌아오는데 할무니가 부르신다.
"야야, 이거 입에 물고가라."
할무니가 부르셔서 다시 가보니
밭에 벗어논 잠바호주머니에서 호박엿 두 개를 꺼내주신다.
"하나만 주세요.. 할무니 제가 사드려야하는데.."
"두개 먹어.하나 주믄 정 없디야."
"고맙습니다, 할무니. 해 있을때 언능하고 드가세요~~~"
가려고 하는 내게 박영숙할무니 그릇에 있던 걸 또 내미신다.
"이것도 가져가 먹을래?"
말린 옥수수다.
"찰옥수수다. 맛있어. 물에 불렸다가 밥에 얹어 먹어도 좋고 볶아서 차끓여 먹어도 좋고."
잠깐 동안에도 뭘 더 주지 못하셔서 안타까우신 할머니. 돌아가신 울 할무니들 같다.
"미나리랑 부추랑 같이 무쳐먹어도 좋다. 왜간장 쪼금 넣고 들기름 넣어서 조물조물 무쳐서 먹어.
너무 짜게 하지말고."
"주신 것도 못해 먹을까봐여?"
"니 그래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