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전이 먹고싶다. 비오는 날도 아닌데...
"준 것도 못해먹을까봐여?~"
"니 그래보인다."
지난 번에 남의 밭에다 농사지으신 부추를 잔뜩 따주시던 부추할무니 음성 지원이 들리는 듯 하여 혼자 실실 웃으며 부추 한 단을 사다 다듬었다.
"부추를 씻을 때는 홀랑 다 집어 넣고 한꺼번에 씻으면 부추가 죄다 흩어져서 성가시다. 한 주먹씩 실로 묶어서 흐르는 물에 훌훌 씻어.
그렇게 하믄 미친년 속옷맹키로 흐트러지지도 않고 얌전히 씻을 수 있다, 알겠냐아.~~"
부추할머니 말씀대로 부추를 한 주먹 씩 실로 묶어서 흐르는 물에 씻으니 흐트러지지도 않고 씻기가 참 쉽다. 역시 할머니들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찬물에 부침가루 넣고 양파 썰어 넣고 부추 숭덩숭덩 썰어넣고 부추전을 부쳤다. 지난번에 부추할머니가 주신 부추를 부쳐먹을 때는 그저 부추만 넣어 뭔가 심심했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첨부터 양파도 썰어 넣었다.
역시 시행착오는 중요하다.
먹으면서 든 생각 당근이랑 청량고추 좀 넣을걸.
어째 엉성하다, 오늘도.
할머니들 눈은 진짜 정확하시다.
준 것도 못해 먹을까봐?
그때 부추할머니가 부추를 주시며 "가서 바로 해먹어라."하셨을때
"준 것도 못해 먹을까봐요?" 했던 내 말에 "니 그래 보인다."하셨던 부추할머니
부추할머니는 나를 처음 보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나를 보셨지?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되면 요리도 잘하는 손맛 좋은 여자로 태어싶다.
삼신할무니 제 말 잘 들으셨지요?
하고 말하고 보니 오늘도 왠지 자존심이 무쟈게 상한다.
잘 할 때 까지 하고 말테다.
냉장고에 있는 당근를 꺼내 채치고 청량고추 세 개 어슥어슥 썰어 넣고 양파도 한 개 착착 채쳐서 썰어 넣고 다시 부쳤다,부추전. 저번보다 맛있어 보이는 부추전.
오호라~
당근의 빨간색이 비주얼을 살려주니 처음꺼 보다 먹음직스럽다. 훨씬 낫네.
근데 왜 남들 부침개는 부쳐놓으면 바삭바삭해 보이던데 내껀 왜 개죽 쑤어놓은거 같냐?
기름이 유기농오일이라 그런가? 바삭바삭 식용유로 해야되나?
한 장을 부치고 두번째 부터는 들기름으로 부쳤다. 바삭바삭하니 역시 맛있다.
그나 저나 오늘도 반죽을 너무 많이 했다.
이러다 또 300장 부치게 생겼다. 예전에 일본 강연갔을 때 일본 할무니들한테 김치부침개 300장 부쳐드렸을 때 생각이 난다.
우야둔둥 이렇게 저렇게 이궁리 저궁리를 해가며 부추전을 부치다보니 이번에도 부추전을 스무 장이나 부쳤다.
맛이 있나 없나 먹어보느라 자꾸 집어 먹었더니 속이 니글니글하다.
막걸리 생각이 난다.
막걸리 생각을 하니 막걸리 대장인 혼자 계신 울 할무니 생각이 난다. 부침개에 부추 무친걸 싸서 맛나게 드시게 하고싶다. 식기전에 빨리 갖다드리고 와야겠다.
"야가~야가 한밤중에 또 뭔 일이고?
내가 한밤중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냐? 안했냐?"
"했나?"
"했나?"
"아마 하셨을걸.."
"근데 또 오밤중에 여길 와?"
"할무니 보고 싶은걸 어트게. 보고싶은 사람은 봐야. 이거 따뜻할 때 언능 잡숴여."
"잘자리에 먹긴 뭘 먹어?"
"식으믄 맛없는데‥"
"말 돌리지말고 제발 깜깜한 오밤중에 돌아댕기지 좀 마라. 내가 김선생 너 때문에 자다가도 잠이 안온다.
뭔 가스나가 그래 겁시 없노?
김선생 너는 이뻐가지고 대낮에 돌아댕겨도 내가 걱정이다."
"아고~~언제는 문디 가스나 디비지게 못생겼담서~"
"시끄럽다. 내가 언제 ‥근데 니 이거 줄라고 왔나?"
"그럼 안되나?"
"에고~ 누구 말이라고 듣겠노? 이래 얘기하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잠 부족해가지고 눈깔 시뻘건거 좀 봐라. 어서 가서 자라."
"문 잘 잠그고 자여, 할무니."
"누가 들어온다고.가져갈 것도 없는데..."
"할무니 가져갈까봐 그러지."
"아이고 이늙은이 가져다가 뭐하게? 송장 치뤄줄라고?"
"할무니는 이뻐서 문 꼭 꼭 잠그고 자야돼."
"쉰소리 말고 언능 가라.
조심히 가.~~~~
오밤중에 또 돌아다니기만 해봐라.
선상님 너 그러구 밤이슬 맞고 자꾸 나한테 오는거 보믄 내마음이 쎄하다‥조심히 가라."
"할무니 이거..."
"모냐?"
"할무니 더위 많이 타시잖어."
"애들하고 돈 쓸때 많은데‥. 부채 부치믄 되는데."
"주무실때 틀믄 절대 안돼.
낮에만 틀어여."
"알았다. 조심히 가거라."
"꼭이야, 할무니 잘 때 틀믄 안돼~"
"알았다고~ 사다준 것도 못 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