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짝도 없고 쓴짝도 없어."
"왜 엄니는 딴짝이 없어?"
"다른 할망구들은 참견도 잘하고 모여서 남말도 잘하고 그러는데
나는 참견도 싫고 남말 허는 것도 싫고..."
"아고 울 엄니 왕따구만여~"
"왕딴지 머시긴지... 어떤 마누라는 새로온 할아버지가 좋은 건지 장난을 거는 건지 하두 주먹질을 하고 때려서 선생님들이 저짝으로다가 떼어놓고 그래도 소용이 없어. 금방 또 붙어서 장난치고 주먹질하고 그래. 주책들이지."
"그 할머니가 그 할아버지 좋아하시나보다."
"좋아하면 좋아하는거지. 주먹질은 왜 한대? 가지가지 오지가지야.
거기엔 별별 할망구들이 죄다 모여있어."
"하하 엄니 가지가지는 알겄는데 오지가지는 뭐여?"
"오만가지란 뜻이지. 어떤 할망구 둘은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데 선생님들이 못먹게 하거든?"
"그러게 할무니들 밥 잡숫고 바로 커피드시면 안되는데..."
"그니까 말이다. 허지말라는걸 궂이 한단 말이지. 한 마누라가 집에서 커피를 몰래 숨켜 가지고 와서는 점심 먹고나면 꼭 조짝 방에 가서 몰래 숨어서 커피를 먹어. 그 두 마누라는 커피 몰래 숨어서 먹는 단짝이야."
"엄니도 그런 단짝이 있으면 좋겠어?"
"좋기는 머시 좋아. 선생님이 하믄 안된다~하는 것은 허믄 안되는 것이지.나쁜짓 허는 단짝이 뭐가 좋으냐? 잘못된걸 못허게 하는게 단짝이지."
"엄니는 단짝 없어?"
"나는 단짝도 없고 쓴짝도 없어.
어떤 마누라가 내가 허튼말을 안해서 그런지 나보고 점잖다고 하드만은 점잖은 건지 뭔지. 아무튼 늙으나 젊으나 쓸데없이 말 많은 건 안 좋은거다.
너도 항시 조심하거라."
"네 ,엄니 걱정마셔요.나도 엄니 닮아서 단짝도 쓴짝도 읊어여."
하여 쓴짝도 단짝도 없는 왕따 엄니와 왕따 딸이 행주산성으로 늦가을 소풍을 갔다. 딱히 산성을 가야겠단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집에서 다리 하나만 넘어가니 멋진 가을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건 바다냐? 가심이 확 트이는구나."
"저것은 한강이여, 엄니."
"한강? 저것이 한강이구만. 난리가 났을때 서울 한강다리가 끊어졌지."
"육이오 전쟁?"
"그래 육이오 난리 정말 대단했다.
뱅기가 뜨고 총질허고 다리도 끊어지고. 쌀을 이고 가는데,
아다닥 다다닥 총알 떨어지는게 무슨 나무잎사리가 떨어지는 거 같더라. 총알껍데기가 와스스 와스스 이파리 떨어지듯 막 떨어져. 그러면 이고 가던 쌀자루를 집어던지고 논두덕에 가서 은신을 하고 있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쌀자루를 이고 피난을 갔지. 수원으로다가 피난을 가는데 밤이 되면 비어있는 돼지우리에 들어가서 자고 그랬지."
"왜 집에서 안자고 돼지우리에서 자?"
"가다보니 들어갈 때가 없어. 집에서 잔적은 별로 없다. 가다보니까 그렇더라고. 하두걸어서
나는 발꼬락이 그때 전부 병신이 됐어.
그런 속에서도 살갔다고 애쓰고
그런 속에서도 이 늙으니들이 죽지않고 살았다고 지금 괄세를 안하고 장허다고 보살피는거지.
뱅기소리만 나면 무서서 벌벌 떨었어. 그게 이북뱅기가 와서 지랄하는겨.
수원가서 얼마를 은신하고 살다가 돌아왔지.
서울한강다리 끊어지고 어떤 여자는 베갠 줄 알고 애를 던졌어. 그런 소문이 났어."
"애를 던졌다고?"
"정신이 없지뭐.
그짓말인지 그랬단 말이 났어."
한강을 건너며 심계옥엄니는 피난가던때 이야기를 두서없이 툭툭 하셨다.
"햐~이게 바로 그 스테이키구나.
테레비에서 젊은 애덜이 맛있게 먹더만. 이걸 내가 먹어보네."
"꼭꼭 씹어 천천히 드셔,엄니.
이건 카보마일이란 허브찬데 어뗘여?"
"밍밍하니 암맛도 없다."
"이게 여자들 피부미용에 그렇게 좋디야."
"그렇대? 그럼 마셔야지. 이 얼굴에 난 시커먼 독버섯이나 죄다 벗겨졌음 좋겠다."
"커피는 조기 딴데 가서 마시자, 엄니."
"여기도 좋은데 어디?"
"저기 빵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는 커피전문점."
"하이고 뭔 계단이 이리 많으냐?"
"어뗘 엄니? 요기 올라가실 수 있겄어여?"
"가보지 뭐."
"안되면 업고 내가 올라가고."
"하이고 니가?
어디 한번 올라가보자."
"엄니, 힘이 많은 쪽 발을 먼저 내딛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그래~ 으샤~"
스무 개도 더 되는 돌계단을 심계옥엄니 한 발 올라가고 열 번 쉬고 한 발 올라가고 열 번 쉬고
드디어 스무계단 다 올라 맛있는 커피집에 앉았다.
"이게 뭔데 이케 맛있냐?"
"카라멜 마끼아또."
"뭔 또?"
"카라멜 마키아또."
"맛이 좋구나. 센터에서도 매주 월요일에 커피 한 잔씩 주는데 그것도 맛있는데 그거보다 이것이 더 맛있구나."
지난밤 가을소풍을 가자는 내말에 귀찮다, 갈 마음이 아니다, 힘들다, 안간다 하시던 심계옥엄니.
가자
싫다
가자
싫다
한참을 심계옥엄니와 실랑이를 했었는데
그랬던 심계옥엄니 꼭두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분칠하고 이뿌게 몸단장하셨다.
"안가신다며?"
"자다가 내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고 싶어졌어."
"엄니, 나오니까 좋지."
"그래 좋다. 오늘이 내 평생에 젤로다 행복한 날이다."
다리가 아파 지팡이가 없으면 잘 걷지 못하는 심계옥엄니, 커피집 돌계단이 힘드셨을건데 한 발 한 발 끝까지 올라와 주신 울 심계옥엄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이렇게 좋은데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럴 수 있기를 두손 모으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