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다독을 한다고 늘 손에 책을 붙잡고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직업상 많은 책을 접하고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것보다 이것저것 직접 살펴보고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동네 서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이제 서울의 대형서점들도 온라인서점들로 인해서 위축 된지 좀 되었다. 그 보다 더 큰 원인은 더 이상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사지 않는 시대라는 점이다.
새 책도 좋지만 헌책방에 가서 절판된 책을 어렵게 구할 때의 기쁨을 아시는 독자분들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크게 내용이 바뀌지 않았는데 포장지만 바꿔서 가격이 올라가는 교재나 고전들은 사실 헌책방에서 사는 재미가 적지 않다. 그렇게 헌책방은 분명이 필요한 구석이 있는 존재이다. 필자의 견해에서 헌책방으로 이름을 알렸던 곳은 아마도 세군데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부산의 보수동, 사라진 청계천, 그리고 인천의 배다리이다. 청계천일대는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주변이 모두 사라졌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부산 보수동 헌책방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제는 수 십 개의 헌책방을 묶어서 헌책방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매출이나 운영의 현실적인 부분까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사람들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다는 검색 정도는 할 수 있다. 온라인서점에서 큰 지분이 있는 알라딘은 중고서점을 오프라인으로 운영한다. 인천에는 아직 지점이 없지만 서울에서는 강남, 대학로, 건대입구, 종로 등 시내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 중고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배다리의 헌책방들은 어떤가? 문헌들을 보면 배다리는 전성기때 45개 정도의 헌책방이 있었다고 한다. 수도국산에 사람들이 모여살고 학생들이 동인천역 일대에 바글바들 하던 시절에는 아마도 어쩌면 가능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필자가 배다리에서 처음 책을 구입한 것은 1993년이었는데 당시엔 중학생이어서 동네가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배다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재 배다리에는 5개의 서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한미서점이 배경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이런 일들이 있고나면 사람들이 몰려들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것만으로 지역의 재생이나 활성화를 말할 수는 없겠다. 배다리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우리는 그 동안 산업도로, 혹은 개항기때 조성된 조선인들의 거주지 등에 대한 논의를 많이 진행해왔다. 물론 그 동안의 논의도 필요한 부분이나 정작 헌책방 자체에 대해서는 그간 고민을 좀 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서점 내부는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어떤 책이 있는 검색이 거능하다. 우리는 배다리의 아벨서점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서점에 가서도 사장님에게 물어봐야한다. 서점 내에서도 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벨서점에는 서점에 보이는 책 말고도 창고에 있는 책까지 합해서 10만권의 서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쇼핑물은 고사하더라도 배다리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들을 세상에 꺼내는 것이 이 지역을 조금이라고 재생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매는 사람들이 직접 와서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책들을 정리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10만권이라는 책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얼마 전 인천시에서 발주한 인천가치재창조 선도사업 공모를 보았다. 필자의 부족한 능력탓에 이 아이템으로 제안서를 쓰지는 못했다. 가치재창조라는 말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만약에 말 그래도 받아들인다면 배다리가 갖고 있는 서적들을 정리하는 일들은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분히 오래된 헌책방 운영에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그 동네사람들의 문제는 아니고 배다리는 인천이 성장해 가던 시기 과거의 한 장면이고 도시쇠퇴를 보여주는 오늘의 장소이기 때문에 이 작업의 가치는 커 보인다. 오래된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니고 이를 매개로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될 수 있다. 굳이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
2016년 6월 부산보수동의 모습
2015년은 인천이 세계 책의 수도를 표방한 해였다. 문화도시를 향한 첫 걸음이 아니라 1회용 이벤트에 가까웠다.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인천의 역사가 크게 고려되지 않고 송도에서 이벤트성으로 개최된 것처럼 ‘세계 책의 수도’에서도 배다리에 대한 지원 내용이 있었지만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천이 꼭 세계 책의 수도가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 책의 수도가 되기 위해선 책과 관련된 공공 공간이 만들어져야한다. 1회성 축제가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문화활동을 지원방안이 만들어져야한다. 그 고민을 배다리에서부터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