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사랑터 생신잔치 있는 날
"엄니, 후~ 불어여~"
후~
후~
후우~~~~
"근데 이 초 한 개가 왜 이렇게 안 꺼지냐"
"ㅎㅎ 그르게 이초도 울 심계옥엄니 팔팔하게 오래 오래 사시라고 안 꺼지는가보네~~"
오늘은 우리 심계옥엄니 여든 여덟 살 생신 날
"뭔 초를 이르케 많이 꽂냐"
"많기는 머시 많다여, 이거이 모다 엄니가 살아온 이력인데~"
"하나, 둘, 서히, 너희, 아고 모르갔다. 내가 이르케나 많이 살았냐? 하이고오 징그랍게도 살헜네..."
"징그랍기는 나는 참말로 자랑스럽구만. 고생했어여 엄니 ..."
"고생은 니가 했지.."
무슨 놈의 감기가 근 열흘이 다 지나가는데도 떨어질 줄 모르고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져만가는 것인지. 목에 가래는 점점 더 켭켭히 쌓여가고 그 덕분에 목구멍은 자꾸만 좁아지고 머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우야둔둥 우리 심계옥엄니 목간은 시켜드려야하고 아츰도 혀야하고 갠신히 몸뚱아리를 일으켜 움직거리는데 하나 하고 이짝가서 엎어지고 하나하고 저짝가고 드러눕고 에고에고 리듬 타며 어찌구 저찌구하여 간신히 새벽 일차전을 끝내기는 끝냈는데
이제 조반을 준비해야하는데 다른 날과는 달리 생신상이라 지지고 볶고 해야하는데 몸띵이가 더 이상은 안되겄다 한다. 간신히 미역 담가논 거 주물주물 빨아서 미역국만 끓여 굴비 구어 심계옥엄니 아침 자시게 하고 사랑터 배웅 나가는길.
온몸이 물에 푹 젖은 솜처럼 천근이다 천근.
지팽이 짚고 걸으시는 심계옥엄니보다도 한참 뒷쳐진 뒷걸음에 간신히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나가 사랑터 차에 오르시는 심계옥엄니보고 사인을 하니 요양사 선생님이 심계옥엄니가 딸 못나온다고 그냥 가믄 안되냐고 하셨단다. 사인 안받고 그냥 가믄 저 짤려요 하시며 요양사선생님이 일주일치 사랑터 주간계획표 용지를 나눠주신다.
일주일 동안 우리 심계옥엄니가 사랑터에서 뭘하시는지 뭘 드시는지 상세하게 적어놓은 주간계획표.
머리가 무겁고 코가 맹맹한 데도 주간계획표에 저절로 눈이 간다.
난 사랑터 주간 계획표용지를 볼 때마다 사랑터선생님들의 세심함과 꼼꼼함에 매번 놀란다.
아 울 할무니, 할아부지들이 오늘은 치커리 생채와 제육볶음해서 점심을 자셨구나. 내일은 완두콩밥해서 김치전을 직접 부쳐 점심 드시겠네. 오늘은 물리치료가 있는 날이니 다리 마사지를 받으시겠구나. 션하시겠다. 오늘은 간식으로 단팥빵과 우유가 나오겠네. 하며 사랑터에서 나눠주시는 주간 소식용지를 보며 심계옥엄니가 뭘 드셨는지 확인하고 할머니 하부지들이 이런 반찬, 이런 간식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며 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간식표를 확인하고 일정표를 확인하고 두번째장을 넘기니 울 심계옥엄니 사진이 들어있다.
생일잔치사진이다.
매 달 두번째 주 월요일은 사랑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일잔치가 있는 날이다. 그달에 생일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합동 생일날.
이번 달에는 사랑터 다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생신이신 분이 울 심계옥엄니 한 명이신가보다.
이분은 사랑터 이뿌신 팀장님이시고 이분은 친절하신 간호사선생님이시고 그리고 이분은 울 심계옥엄니가 대장님으로 받드는 정명화 요양사 선생님이시네 그 옆은 이번에 새로 오신 요양사 선생님 이시고. 그런데 옆에 이쁜 옷입고 서계신 이분들은 누구시지? 노래공연단?
우와 악극단 좋아하시는 울 심계옥엄니 계 타셨네~~~
지금부터 십구년 전 울 심계옥엄니 칠순생신 때
둘째아이 출산을 오늘낼 오늘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심계옥엄니 칠순잔치를 어디서 해야 하나 함께 걱정하고 있더랬다.
그런데 울 심계옥엄니 딸자식하나 있는거 부담주기 싫으셨는지 잔치는 무슨 잔치냐며 번거롭다시며 식구들끼리 조용한데서 밥이나 먹자고 하셨다. 그래도 칠순인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지만 멋지게 칠순잔치를 해드리고 싶었다. 남들처럼 악극단도 불러다 흥겨운 노래도 불러드리게 하고 고운 한복도 해드리고 나에게 여러 형제가 없으니 친구들에게 한복 한 벌씩 해 입혀서 절도 부탁하고 그렇게 해야지하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칠순 생신 전날 저녁에 둘째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외로운 지에미 지함미 축하해주려고 예정일보다 미리 나온건 좋은데 꼼꼼하게 준비했던 칠순잔치를 못했다.
심계옥엄니는 괜찮다, 괜찮다하셨지만 그게 두고두고 한이 된 나는 팔순잔치 때만은 아주 멋지게 해드려야지 그리 마음먹고 있었는데
팔순잔치때도 울 심계옥엄니는 역시나 풍악을 올리지 못했다. 팔순을 앞두고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한쪽이 마비가 되셔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만 계셨더랬다. 그래서 나는 그때 결심했었다.
다음 구순때는 어떻게 할테다.
이 맹세를 그 다음부터는 머릿속에서 아예 싹 지워버렸다.
계획을 세우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무서워서 그래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대신 매년 심계옥엄니 생신이 되면 울 심계옥엄니가 젤로다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서 제일 맛있는거 먹고 케익불고 좋은 선물 사드리고 늘 고만큼까지만 만족해야지 하는데도 늘 내 맘 속에는 악극단 불러다 잔치해드리지 못하는게 늘 마음에 걸려있다.
"저기 방앗간집 노인네는 자식들이 카수를 불러다가 뻑적지근하게 팔순잔치를 해줬다고 으찌나 자랑을 하던지..
나는 그딴거 하나투 안 부러..
시끄럽기만 하고 ..내 자식 잘 됐으믄 그거로 족햐.."
어느 핸가 혼잣말로 하시는 말을 듣고 부터는 더더욱 마음이 그랬다.?
"엄니 오늘 사랑터에서 생신잔치 잘 하셨어요?"
"응, 혼자서 호강했지. 이쁜 카수들도 오고 악극단도 오고."
"좋았겠네, 울 엄니."
"응, 좋드라. 은젠가는 생일 맞은 사람덜이 하두 많아서 저 구탱이로 밀려 앉아있어서 초도 못불구
그랬는데 오늘은 나 혼자라 왠통 독차지를 했지. 선생님들도 생일상도.."
"그래서 좋았겄네?"
"좋기는 좋은데.. 나를 위해 저것을 죄다 준비했구나 허는 생각에...그 래서 많이 미안했지.
나헌테만 축하헌다고 이쁜 카수들이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춰주고. 아주 송구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내가..."
그래서 이번 심계옥엄니 생신때는 떡을 해가지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찬겨울 무사히 지내신 우리 사랑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맛있게 드시게 하고 울 심계옥엄니 생신상 정성껏 차려주시고 몸불편하신 울 심계옥어메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시는 선생님들께도 맛있는 떡을 드시게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이깟 감기에 발목 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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