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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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 김인자
  • 승인 2017.02.2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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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돌아다니는 치매
 
"에고, 에고 죽갔다."
 
오늘은 운동을 일찍 해볼까하고 심계옥엄니 사랑터에 가시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오르는데 1층 현관에서 붕붕카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어디 다녀오세요?"
붕붕카할머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많이 편찮으신가보다. 얼굴도 시꺼멓고 미간에 짜증이 한가득이다.

 

"병원에 갔다온다."
"많이 안 좋으세요, 할무니?"
"그래, 너무 아프다. 얼른 꼬꾸라졌으믄 좋겠구만 빨리 죽지도 않는다. 이년의 팔자는 편하게 죽는 복도 못 갖고 태어났다. 남들은 자다가도 쥐죽은 듯이 가기도 한다더만. 그런 복도 타고나질 못했다, 나는."
 
"어르신이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여. 그래도 어르신 혼자서 저렇게 병원 다녀 오실 정도면 자손들이 한결 편하죠."
 
붕붕카할머니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시고 안스러운 마음에 잠시 서있는데 누가 내팔을 살짝 잡아 당기신다.
우리 아파트 청소할머니시다. 마스크를 쓰셨다. 청소할머니도 감기에 걸리셨나보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아고, 우리 이뿐 선생님은 점점 더 어려지시네."
"에고 어려지긴요. 요번에 감기에 된통 걸려서 팅팅 부은걸요."
"아녜요, 언제나 멋져요."
"고맙습니다.~"
언제나 나를 이뿌게 봐주시는 울 할무니들 덕분에 행복한 아침.
 
"어무니는요?"
"치매센터 가셨어요."
"에고 선생님 어무님은 그래도 이쁜 치매라서 다행이에요. 나도 우리 시어무니를 98세까지 집에서 모셨어요. 마지막 일 년은 요양원에서 계시다 돌아가셨지요."
"예 , 그르셨구나아...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니요. 치매로요. 돌아다니는 치매셨거든요. 우리 시어머니는 집안에 잠시도 가만히 안 있고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치매셨어요. 파출소에 우리 시어무니 사진이 노상 걸려 있을 정도였으니까." "언제부터 할무니가 그렇게 나가 댕기셨어요?"
"93세 부터요. 치매걸리면서 나가시기 시작했는데 일 년은 미나리 캐러간다고 아침 일찍 나가서는 밤늦게 돌아오고 그르셨는데 94세부터는 나가믄 아예 집을 못 찾아와서 구청에서 몸에 딱지도 부쳐주고 목걸이도 해주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우리 시엄니가 보는 족족이 다 떼버렸거든요."
"그러면 할머니가 나가셔서 집에 못 찾아오고 그러시면 어떻하셨어요?
"그러면 등에 부친건 못 떼니까 그거 보고 사람들이 전화해 주면 산으로도 찾으러 가고, 김포로도 찾으러 가고, 안양으로도 찾으러 가고 그랬지요."
"안양으로도요? 그 멀리까지여?"
"그럼여. 을마나 잘 걷는지 몰라요. 계속가는 거예요. 정신없이...
하루는 짜장면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시어머니 모셔가라고."
"짜장면집에서요?"
"네."
정신없이 돌아댕기다가 정신이 잠깐 들면 여기가 어디냐고 이사람 저사람한테 물어보는거지요. 그날은 시어무니가 배가 고파서 짜장면집에 들어가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신거예요. 짜장면 참 많이도 시켜 먹었어요 하두 미안해서여. 파출소에도 짜장면을 열 그릇씩 배달시키고 그랬어요. 시어머니 찾아줘서 고맙고 미안해서요. 한 달에 스무 번 이상 파출소에서 시어무니를 길에서 찾아서 모셔왔거든요."
"힘드셨겠어요."
"힘들었지요. 나도 우리집 아저씨가 사업을 하두 말아먹어서 돈을 벌어야 했는데 우리 시어머니 뒤만 쫒아다녀야 하니까 돈도 못 벌고 짜증도 나고 그랬지요.그래도 나는 우리 시어머니한테 잘했어요, 나도 어릴때 우리 할무니밑에서 커서 우리 시어머니 불쌍해서 우리 시어머니한테 진짜 잘했어요.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는 나를 많이 미워했어요. 오밤중이고 신새벽이고 바깥에 나가신다는걸 못나가게 했더니 어느날인가는 우리 시어머니가 새벽 세 시에 창문을 열고 저렇게 불빛이 훤한데 왜 밖에 못나가게 하냐면서 창문을 열고 밖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거예요."
"뭐라고 소리를 지르셨는데요?"
"동네사람들~~~ 칠십 다섯 먹은 아주 고약스런 며늘년이 구십 여덟 먹은 늙은 시어무니를 때려요.~~" 하믄서 소리 소리 지르는거예요. 근데 남편이 그걸 못 믿더라고. 내말을 안 믿어주는 서방이 너무 야속해서 어느날 며칠을 집에 안 들어갔지요. 한번 제대로 상황을 보라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나없이 며칠을 즈이 엄마랑 있더니 바로 요양원으로 모시더라고...
일 년도 못돼서 돌아가셨어요. 묶어놓고 밥을 안줘서 말라서 돌아가신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묶어 놓을 수 밖에 없었을거고, 밥도 많이 못 드렸을거고... 우리 어무니만 모시는게 아니니..,
나도 내 어무닌데도 못 모시고 결국 요양원으로 보내고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청소할무니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신다.
 
"선생님 참 대단해요."
"대단하긴요. 당연한 것이지요 자식이니까여... 저는 할머니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나 따라오지마요... 끝까지 내손으로 모시지도 못한걸..."
"할머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할무니 하실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셨어요..."
 
이제 곧 봄이다.
울 할무니 할아버지들 바깥 세상 여기저기 자유로이 다니실 수 있는 따뜻한 계절이 오고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멀리 나가다니셔도 집에 잘 찾아오시기를... 혹시 길에서 헤메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게 되면 잘 살펴봐주시기를 두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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