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송정로 / 인천in 대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 겸 재판관이 낭독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탄핵정국이 이렇게 종지부가 찍혔다.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이 234대 56 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이후 92일만이다. 헌법재판소는 다수 국민의 판단에 어긋남 없이 8명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사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범죄 행각에 대해 언론의 보도와 검찰, 그리고 특검의 수사 결과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탄핵 인용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그간 드러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매우 놀라울 만큼 ‘대담’하고 심각했으며, 또한 대통령의 개입없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여왔다.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겨왔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그 의혹 제기를 대통령이란 힘으로 비난해 불통의 벽을 쌓았다.
그럼에도 탄핵 심판일이 임박하면서 대통령 대리인단의 변호사들을 비롯해, 친박 단체들의 막무가내식 집회와 막말 공세로 국민들은 적잖이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그 강도는 앞으로의 정국과 탄핵 심판의 결과까지도 걱정이 들게 할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 수호와 적폐 청산의 문제를 골 깊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로 둔갑시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일부 정치인 등의 그릇된 정치적 행태의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른바 ‘태극기 정국’이었다.
급기야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해온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내리기도 전인 9일 "8인의 재판관만으로 심리를 진행하고 평의를 열고 선고를 하는 모든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인하는 위헌이고 불법이므로 무효임을 천명한다"며 헌재 심판 불복 선언까지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잘못된 재판으로 역사에 과오를 범한 사례는 물론 적지 않고, 이들이 재심을 통해 바로 잡힌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따른 사법불신도 상당했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이나 영화 ‘변호인’으로 잘 알려진 ‘부림사건’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는 독재정권의 정치적인 힘으로 밀어부친 용공조작 사건이 대부분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정치권력에 의한 강압 재판이라거나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대통령 탄핵 심판관들은 지난 9년 보수 정부나 새누리당, 대법원 등에서 임명한 보수 성향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면 탄핵은 결코 인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듯이 문제는 '헌법의 위반'이라는 팩트의 문제였던 것이다.
박근혜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비밀 문건이 최순실에게 유출된 사실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한 중대한 법 위배행위였던 것이다. 대통령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한 것도 보수여서가 아니라 중대한 법 위배 행위이었기 때문에 탄핵의 사유가 된 것이다.
이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혼란스러웠던 탄핵정국을 뒤로 하고,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건설을 위해 매진할 때다. 이 또한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야할 일도 아니다.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오늘 탄핵 사유의 일단을 밝힌 안창호 재판관은 2012년 새누리당이 추천한 검찰 출신 재판관이다. 박영수 특별검사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검사 출신의 하나였다.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 속에 숨어 움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폐습’를 바로 보면서, 사드와 북핵, 정경유착, 트럼프 위기, 위안부 협상, 세월호 등등 산적한 난제와 적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데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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