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나두! 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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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나두! 나두!
  • 이정숙
  • 승인 2017.07.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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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 샘물반 아이들3(이정숙 교사/동수초교)


 

아이들은 흙에서 싹을 틔우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서 생명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네 것 내 것을 구분 짓지 않고 함께 키우기, 내 것만 수확하지 않고 함께 나누기를 하면서 공동체 문화를 체험해 간다. 
   
얼마 전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은 텃밭이 황톳빛 흙들을 뚫고 어느덧 잎이 무성해지더니 상추며 깻잎이며, 비타민이라는 잎채소가 텃밭 한 가득 그 푸름을 더해갔다. 점심시간 마다 나와 쨍쨍한 볕에 무성해진 상추 잎을 따던 아이들이 갑자기 기겁을 하고 고래울음소리처럼 높은 데시빌로 꺅꺅 소리를 질러댄다. 
“선생님 여기 벌레 있어요!”
하연이는 손가락을 오므리며 못 볼 걸 본양 어깨를 움츠린다.
“이 상추들이 너무나 싱싱하게 자라니까 애벌레들도 먹을 게 많아서 좋아하나보다. 우리만 먹을 수 없잖아 나눠 먹어야지.” 

심드렁한 샘물의 말에 아이들은 호기심이 생기는지 조금씩 벌레에 두려움을 거둬들였다. 영은이는 잎 뒤에 하얗게 알이 뒤덮인 잎을 가지고 와서는 “선생님 이게 뭐예요” 하며 들이민다. 
“흠! 이게 알인가 보다. 배추벌레 같은 벌레들 알인가 봐. 여기서 벌레가 나오는 거야 이건 비타민 채소이니까 비타민 채소 벌레가 나올거야. 이봐, 색깔이 비타민채소 색깔이란 똑같잖아.” 
“어? 정말!”
벌레가 있다고 기겁을 하면서 비명을 지르던 아이들이 샘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점점 호기심 어린 눈빛이 되어간다. 
“선생님 여기도 있어요 여기도요” 
자윤이도 질세라 하앟게 알이 덮인 잎을 가리킨다. 샘물이 잎을 따서 보여주자 손사래를 치며 멀찌감치 달아난다. 
“벌레가 이렇게 많으면 채소 잎을 다 먹어버리겠는데. 어쩌나. 진딧물도 고추에 잔뜩 낄 텐데” 
“선생님 약 안 뿌려요? 우리도 주말 농장하는데 약도 주고 그래요” 
“그렇구나, 약을 줘야 겠네” 
“선생님 딱정벌레가 많으면 벌레를 잡아먹는대요” 
“그으래? 딱정벌레를 어디서 가져오지?” 
“제가 잡아올까요? 저기에 많아요” 
아이들은 열심히 어딘가에서 딱정벌레를 잡아온다. 
“딱정벌레는 징그럽지 않니?” 
“딱정벌레는 괜찮아요” 
“왜?” 
“많이 봤어요” 





아이들은 익숙해진 벌레에는 친근함을 느끼나 보다. 덕택에 그렇게 진딧물이 잘 끼는 고추는 얼마 후 무사히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이 고추 모종은 과학실험을 위해 교실에 있던 것인데 성진이가 연휴 때 물 줄 사람이 없어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냐며 집에 가지고 갔다 다시 가져 온 것이었다. 실험이 끝나고 밭에 옮겨 심으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잘 자라주었을 뿐 아니라 열매까지 많이 열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추 열매의 모든 지분을 성진이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아주 사소한 것에 욕심을 부리지만 또 납득이 되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아이들이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수확한 잎채소들을 모아, 가져가기 쉽게 봉지에 넣어보았더니 다섯 봉지나 되었다. 
“와! 다섯 명은 가져갈 수 있겠는걸.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지? 누가 가져갈래?”
아이들 눈빛이 반짝인다. 서로 가져가겠다고 난리다. 결국 누가 가져갈지 제비뽑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첨자들은 수확한 채소를 집에 가지고 가서 어떻게 반찬을 해 먹었는지 반 SNS에 식탁 사진을 찍어 올리기로 했다. 햇볕에 쑥쑥 자란 잎채소들을 매일 매일 수확하다보니 어느덧 모두 다 골고루 당첨이 되고도 남았다. 무성한 잎채소들이 아직 많이 남아 각자 자기가 수확한 만큼 더 가져가도록 했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매일 잎을 수확하고 가져갔다. 그래도 수확한 양들이 넘쳐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샘물의 고민을 들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나눠드리자는데 기꺼이 찬성했다. 샘물은 매일 채소를 봉지에 싸서 나누는 일이 다시 또 일과가 되어버렸다.


쨍쨍한 햇볕이 주렁주렁 토마토며 가지며 호박을 무럭무럭 키워냈다. 이젠 호박과 가지를 딸 차례. 호박이 어른 팔뚝만 하게 자랐다. 가지가 부러질 듯 큰 열매라 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따갑다며 이걸 어떻게 따냐고 망설이더니 샘물이 “이렇게 비틀어서 따는 거야” 하고 시범을 보인 이후로는 서로 따겠단다. 따갑지 않냐고 하자 괜찮다고 한다. 수확된 호박을 탁자에 올려놓고 다시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조마조마하며 자신이 당첨되길 숨죽여 기대했다. 드디어 한결이와 정욱이가 당첨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아이들이 소란했다. 아이들이 화가 난 것이다.


“선생님 한결이랑 정욱이는 텃밭에 오지도 않았어요.” 
공교롭게도 가장 기대했던 커다란 호박을 텃밭에 무심한 두 아이에게 당첨이 된 것이었다.
“그렇구나.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물도 주고 가꿨는데 ..... 그래도 아침 당번 때 물은 주지 않았니?” 
샘물은 성난 아이들로부터 난처해진 당첨자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대뜸 아이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욱이는 물도 안줘서 예성이랑 진성이가 대신 줬어요. 쟤네들 주지 말아요. 취소해요” 
계속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자신이 키운다던 오이가 처음부터 비실대다가 말라죽자 엉엉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던 하은이가 소리 높여 반대했다.
“흠! 그럴까?” 
“네!!” 
아이들은 단호했다. 자신들의 노작 결과물이 노력도 별로 하지 않은 친구에게 가는 것이 참으로 부당한 일이었다. 그것도 맨 처음의 열매 수확이 그들에게 가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 불만 제기에 멋쩍은 정욱이는 영훈이에게 양보한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들이 또 “영훈이도 안 왔어요. 축구만 했어요” 한다. 
“그렇구나. 열심히 텃밭에 온 사람만 호박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거지? 다 열심히들 했는데 그치? 어떻게 할까?”
아이들 사나운 눈빛이 조금 누그러드는 것 같아 샘물은 아이들 눈치를 보며 슬쩍 ‘봐주기’란 말을 흘렸다. 
“이번에는 그냥 봐 줄까? 아님 저 호박 확 뺏어버릴까? ” 
그러자 너무나 단호했던 표정들이 엇갈리면서 누군가 말했다.
“에이, 그냥 이번엔 봐줘요. 대신 텃밭에 잘 나오라고 해요” 
“그래요 이번만 봐줘요.”





판도를 급반전 시킨 누군가의 너그러운 말 한마디 덕분에 정욱이와 한결이는 호박을 가지고 가서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샘물 반은 식물마다의 담당자를 두어 자기 것을 관리하지 않는다. 자기 것만 가꾸고 자기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열심히 가꾸는 마음보다 함께 가꾸고 나누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마존의 부족 중 하나인 조에족은 사냥을 하고 나면 적게 사냥을 하던 많이 사냥을 하던 모아서 사냥한 사람이 양을 정하고 나누어 주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나누기 때문에 분배에 불만이 없다고 한다. 간혹 불만이 생기면 부족들이 간지럼을 태우면서 화해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정의롭고 또 때로는 너그럽다. 선생님 말도 얼른 알아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원시적 공동체 문화를 경험한다.
   
부지런히 물을 준 텃밭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무성해졌다. 가뭄이 계속 되던 때였다. 텃밭이 바짝 말라 있었던 게 기억나서 샘물은 주말 내내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월요일에 와서 보니 평소 텃밭에 별로 관심도 없어보였던 차현이가 일요일에 학교에 왔다가 와서 물을 주고 갔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텃밭 식물들은 시들지 않고 싱싱했다. 호박과 가지 당첨자들이 매일 한두 명씩 나왔다. 얼마전 일요일엔 그토록 꽃만 피워대던 수박이 주먹만하게 열렸다고 하연이가 반 SNS에 사진을 찍어 올려 월요일 아침부터 아이들이 부지런히 텃밭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신기해 했다. 한결이도 텃밭에 잘 가지 않은 자신에게 큰 호박이 당첨된 게 미안했었던지 그 주 일요일에 몰래 와서 물을 주고 갔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텃밭에 애정을 쏟고 있었다. 

이제는 햇볕이 따갑고 숨이 턱턱 막혀 텃밭에 나가는 게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나와서 텃밭에서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선생님, 이거 봐요. 애벌렌가 봐요.” 
성진이가 비타민 잎 채소 위에 파란 애벌레를 올려놓고 신기해한다. 몇몇 아이들이 ‘어디어디’ 하며 달려들어 서로 보려고 하다가 급기야 손바닥과 손가락에 놓고 구경을 한다. 
“나도 나도, 나도 (손에) 올려줘!”
불과 한 달 전에 벌레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던 아이들이다. 손가락에 올려놓고 꼬물꼬물 기어가는 벌레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이것 봐요. 너무 귀여워요.” 
샘물은 귀를 위심하며 반문했다. 
“귀여워?” 
“예 신기하고 재밌어요” 
배추벌레 하나에도 마냥 행복해 하는 아이들 마음이 한 뼘 자라 보인다. 아이들 키만큼 자란 토마토 나무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호박이 주렁주렁 가지가 주렁주렁이다. 손톱에 물들이려고 키운 봉숭아가 아이 팔뚝처럼 굵은 나무가 되어간다. 소연이가 고추 하나를 따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애지중지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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