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모자 쓰고 가세요."
"괜찮아요."
"오늘 바람이 무섭게 불어요. 모자 쓰고 가세요. 어르신."
"괜찮아요."
"아니예요.어르신, 큰일나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들어가서 모자 가지고 나올께요."
"괜찮대도요. 차 타믄 금방 갈텐데여."
"아니에요. 어르신. 제가 들어가서 모자 금방 갖고 나올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요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아라찌여 어르신."
"괜찮타니까요. 차 타면 금방이라니까여. 에구,내가 여러 사람 구찮게 하네여. 얼른 죽어야 하는데..."
"모자 안쓰시겠다는 거 제가 간신히 씌어서 보내드렸는데 맘 상하신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르신 원래 모자 쓰는거 싫어하세요?"
"아뇨. 우리 엄니 모자쓰시는거 좋아하시는데여.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부터는 더 챙겨서 잘 쓰셨는데.."
"근데 왜 그렇게 극구 싫다셨을까여..."
지난밤 갑자기 배가 아파서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여름방학 때 장염 때문에 고생을 했더랬다. 보름을 입원하면서 치료를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요며칠 단게 몹시도 땡겨서 아이스크림을 겁없이 다섯 개를 연거퍼 까먹었다. 그러고도 속이 안차 노랑봉다리 커피를 두 개 털어 물 조금 부어서 진하게 타먹고 또 에이스 과자 한 개를 몽땅 다 까 먹었다. 그랬더니 열 두시 넘어가면서 부터 아프기 시작한 배가 한 시부터는 허리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두 시쯤에는 온몸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부터 도저히 참지 못할 아픔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아픈데 심계옥엄니 놀라실까봐 119도 못 부르겠고 식구도 못깨우겠고 간신히 기어 나와(정말 기어서 나왔다. 허리를 못 피겠어서) 택시를 탔다.
택시아저씨가 첨엔 술취한 여자인 줄 알았다고 안 세워줄려다가 이쁜 여자가 얼어죽을까봐 세워주셨단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심계옥어르신 보호자에요."
"아. 예, 안녕하세요~~"
"저 심계옥어르신 약 가져가셨는지 함 여쭤봐주셔요~"
"예? 약이요? 예~ 잠시만요.
예~ 심계옥 어르신 가져오셨다네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리고요, 저? 선생님 죄송한데요, 심계옥어르신 오늘 아침을 안 드시고 가셨을거예요. 선생님, 죄송한데요. 심계옥엄니 율무차 한 잔만 드실 수 있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율무차요?"
"예..."
"심계옥어르신 아침 안드셨어요?"
"예..."
"따님이 늦잠 주무셨구나 ~"
"아, 그게여...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심계옥어르신께 율무차도 타 드리고 약도 드시게 해드릴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선생님."
"엄니, 오늘 아침밥 왜 안잡숫고 가셨어요?
"아침밥?나 먹었는데?"
"아침밥을 잡쉅다고?"
"응, 먹었어."
"거짓말 하믄 망태할아부지가 잡아간다."
"그르치... 그짓뿌렁하무 안대지...
그라믄 너는 새벽에 어디 갔었냐?..."
"나? 어디 안갔는데?"
"어디 안갔다고?"
"응, 나 어디 안갔는데..."
"거짓말 하믄 되까? 안되까?"
"안되까..."
"다시 한번 묻는다? 내가.
너 새벽에 나 목간 안 시켜주고 어디 갔었냐? 한번도 이런일이 읍는데 니가..."
"새끼가 아픈데... 그르케 아프믄서 용을 써감서 참는데
에미가 대까꼬... 밥이 목꾸멍으로 넘어가믄...
그게 사람이가네
짐승이지..."
나는 아파도 아프면 안된다.
내가 아프면 심계옥엄니가 밥도 안드시고 치매센터에 가시니까 아프면 안된다. 나는...
건강하자 제발. 아프지 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