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금곡동이래? 창영동이래? 여기가 다 배다린 거야?, 금곡동과 창영동이 합쳐져서 금창동인거지? 근데 주소는 금창동이 아닌데? 우각로? 쇠뿔고개? 금곡로? 싸리재?” 이 말이 저 말인지 저 말이 이 말인지 헤깔리던 2005년,
그렇게 낯설었던 이름들은 어느새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 되었다.
도원역에서 나와 오른쪽 샛골길을 따라 송림오거리에 있던 사무실로 오가던 나의 출퇴근 길에 변화가 생겼다. 배다리 헌책방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된 것, 그리고 그 길은 지금까지 나의 출퇴근 길이 되고 있다.
도원역에서 철로변길을 따라 내려오면 인천양조장에 있는 아벨전시관에서 인천공부방연합 청소년들과 인문학수업을 했었다. 송림오거리 인근에 있던 사무실이 송현동 수문통길 주변으로 이사한 후 송림동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문화단체 친구들과 그렇게 배다리를 오가게 되었고, 2007년 창영초교 입구에 있는 가건물에 공방을 마련했다.
우리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고, 기록하며 주민들과 만났다. 창영초교 등 오래된 건물을 제외하면 별다른 기록이 없던 도로부지와 도원역 사이의 공간을 다녔는데 도로 확장 등의 이유로 자투리 공간들이 많았다. 텃밭이거나 의자가 놓여있는 작은 쉼터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도원역에서 창영초교 입구 공영주차장에 이르는 400여 미터 철로변길은 당시 ‘창영 7길’이었는데 경인전철 복복선 공사 때문인지 자투리 공간이 많았는데 공원은 없었고 텃밭이 많았다.
아스콘이 시커멓게 깔려 차량이 많이 다니는 우각로(쇠뿔고갯길) 보다 투박한 콘크리트에 차가 적었던 철로변 창영 7길은 나의 출퇴근길이기도 하거니와 바지런한 어르신들의 손길로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꽃과 작물들 덕에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사진기록이 많다.
또 이 길은 영화관광경영고(옛 영화정보고, 영화여자실업고)를 오가는 여고생들, 영화초교, 창영초교를 다니는 어린 아이들, 산업정보고나 정보산업고 학생들의 등하교 길이기도 해서 우각로와 함께 애정을 많이 쏟아 작업했던 게 아닐까 싶다.
만화할머니, 마늘할머니, 빼빼할머니, 꼬마할머니, 농사샘, 청암사 할머니, 반바지 할머니, 공원슈퍼 할머니, 티코트럭집 내외분, 태극기집 내외분, 우물터 아주머니,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선명히 떠오르는 분들이다. 할머니였던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아주머니였던 분들은 할머니가 되셨다.
눈내린 겨울날에는 너나할 것 없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집 앞을 쓸던 모습이 선하다. 특히나 여름 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는 날이면 붉은 융단이 깔린 철로변길은 장관이다. 그 더운 날에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철로변길로 나와 고추를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빙과류나 음료를 나누며 어울려 계시는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늦은 밤에도 모깃불에 텐트까지 치고는 바깥에서 주무시는 걸 종종 뵐 수 있었다.
물론 한 두 분씩 돌아가시고 이사 가시고 나이다 드시면서 그 풍경은 서서히 사라졌고, 재작년부터 공유지의 텃밭경작을 금하고 어설프게 공원화 작업을 하면서 올해는 고추말리기와 농작물 키우는 어르신들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2018년 1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가 북미 대륙에서 유라시아로 넘어오고 있다며 전에 없는 추위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예보가 나오고, 남부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천시장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사탕발림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제껏 해온 것을 보면 영 믿어지질 않는다. 당장 중동구 관통도로라도 폐기시키면 믿어볼까 싶지만 그럴 리는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들의 부정부패와 국민 사기극이 밝혀지는 가운데 ‘국가이익’이라면서 헌법까지 어기고 체결한 UAE와의 비밀군사협정-전쟁이 나면 자동 개입-이라는 엄청난 짓을 벌여놓고도 정치보복이라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고 있다.
이 추운 날, 송현터널 앞 천막농성장에서 주무실꺼라는 아벨서점 사장님의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다. 안상수, 송영길, 유정복에 이르는 인천시장들과 이화용, 조택상, 이흥수에 이르는 동구청장들에게 인천 민중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배다리를, 동구의 공동체를 해치는 도로를 만들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않았다. 배다리 사람들은 그 차가운 길 위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황금개띠해라는 2018 무술년이 된 지 10일, 지난 가을부터 이어진 헌책방거리 지중화 공사도, 인천양조장 안채와 한옥 공사도, 텃밭 옆집들의 집수리공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헌 집을 고치고, 새단장에 여념이 없다. 이 추위에도 고양이 사장님을 만나보겠다고 제주에서도 오고, 오산에서도 오고, 수원에서도 이 배다리를 찾고 있다.
문득 눈에 들어온 책은 2007년 마을작업을 기록한 <안녕하세요, 우각님>을 읽으며 가장 사랑했던 철로변 창영 7길의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나의 출퇴근길인데 전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조금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겨울은 되새김의 시간, 안으로부터의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이겠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겨울의 시간속에서 배다리는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는 걸까? 나는 또 어떻게 변하려고 할까? 아득한 겨울 밤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