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떠나야할 사랑터
심계옥엄니 사랑터에서 돌아오시는 오후 네 시 삼십 분.
저만치서 사랑터차가 어슬렁 어슬렁 들어오고 있다.
다녀왔습니다~하는 다정다감한 소리와 함께 사랑터차 문이 힘겹게 열린다.
요양사 선생님이 심계옥엄니의 지팡이를 내려주고 다음엔 심계옥엄니가 요양사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사랑터 차에서 어렵게 내리신다.
차에 앉아 계시던 순재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주신다. 심계옥엄니가 내리고 혼자 남겨진 순재할머니를 태우고 사랑터차가 느릿느릿 떠나간다.
연식이 오래되어 행동이 굼뜬 사랑터차. 울 할무니들 걸음걸이를 똑 빼닮은 차.
"날씨가 추워서 그릉가 요즘 사랑터에 할무니들 많이 안 나오셔?"
"응, 많이 안 나와."
"많이 안 나오셔? 할무니들이?"
"응, 안 나와. 아주 안 나와.
수다쟁이 할무니 있잖아. 그 할무니도 아들네 집으로 갔다고 하고, 또 딸이 가외 갈친다는 그 할무이도 다른 데로 갔다고 하고. 또 기저귀 차고 선생님들이 노상 따라 댕기믄서 챙겨야 하는 할무니 있잖아. 그 할무니도 딸이 일 댕겨서 딴데로 갔다고 하던데..."
"으응, 그러셨대?. 사랑터차가 그래서 텅 비었구나."
"5급이 모냐?"
"응, 5급?"
"응, 선생님들이 나보고 5급이냐고 물어보던데?"
저녁식사를 하시던 심계옥 엄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시며 갑자기 물으신다.
"5급? 선생님이 물으셨다고? 엄니한테?"
"응, 나헌테 묻더라고. 핵교가
5급만 다닐 수 있게 됐다고."
"그렇대? 그럼 머 다른데 가믄 되지~"
"너도 알고 있었냐? 선생님들이 이제 나 오지 말래냐? 난 성가시게 허는 것도 읍는데... 나혼자 밥먹고 화장실도 나 혼자 댕기고. 선생님들 손 가게 하는거 하나투 읍는데. 나 귀찮타더냐? 그래서 이제 나보구 이 핵교 오지 말래?"
"왜? 엄니. 엄니는 여기가 좋아?"
"좋으나마나 댕기던데니까. 그냥 댕기는거지. 낯선 곳이 머시 좋으냐."
"여기도 좋지만 다른 데도 좋은데 많아."
"많기는... 난 여기가 좋다. 선생님들도 편코."
"낯선데도 첨에만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금새 좋아져.
엄니 첨에 생각 안나? 사랑터 처음 가던 날."
"사랑터 처음 간 날?"
"응, 사랑터에 처음 다니실 때도 엄니 낯설다고 싫다고 안 가겠다고 했는걸."
"내가 그랬냐?"
"응, 첨에는 다 그래.
새로운 곳도 처음엔 낯설지만 또 댕기다보믄 친해지고 정 붙이면 좋아져."
"아 몰라. 나는 여기가 좋다. 다른데 안가."
새해들어 사랑터가 변하려나보다.
"여보세요 ~사랑터예요."
"예, 선생님."
"이번에 심계옥어르신 장기요양등급 몇 등급 받으셨어요?"
"4등급이요."
"아 예 저희기관이 올해부터는 5등급 어르신들부터 이용하실 수 있게 되었어요.
나라 정책이 그렇게 바뀌게 되어서 알려드리려구요."
"아, 그럼 저희 엄니는 다른 시설로 옮겨가셔야 하나요?"
"아마도 그리 되실거 같아요."
"언제부터 옮겨가야하지요?"
"글쎄요. 딱 날짜가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서요."
"유예기간이 얼마나 있는지요?"
"글쎄요. 한 두 달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에고 울 심계옥엄니 우려하시던 일이 현실이 되었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열심히 재활치료받으시고 첫 사회생활하신 곳이 바로 이곳 사랑터였는데...
오랜동안 이곳 사랑터에 다니시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신 할머니들 마음도 우리 심계옥 엄니 마음과 똑 같으셨겠구나. 사랑터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않은 마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
내가 이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면 할머니들이 다니고 싶어할 때 까지 다니시게 해드릴텐데. 어차피 할머니들이 다니고 싶어하셔도 다닐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할머니들한테 "다니고 싶으실 때 까지 다니세요" 할텐데. 그러면 우리 할머니들한테 "이제 그만 오세요" 해서 섭섭한 마음 들지 않게 해드릴텐데...
바야흐로 졸업시즌이구나. 울 할머니들이 늙으막에 몸이 아파져서야 비로소 정붙이고 다녔던 치매센터.일부러는 아닐건데 할머니들 고만 나오시라고 조기졸업시키는거 같아 마음이 안좋다. 내가 이러니 울 심계옥엄니 마음은 어떨까...
낼부터 심계옥엄니 다니실 다른 치매센터를 알아보러 다녀야겠구...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더 춥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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