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배다리통신>을 쓸 즈음이 되면 무척이나 추운 날씨가 이어지곤 했다. 물론 그 혹한에도 조금 날이 풀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애를 먹곤 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아니라 칠한사진(七寒四塵)이나 오분(五粉)정도 되는 건가? 2월이 된 어느 날부터 비도 오지 않았는데 아스팔트에 물기가 어리고, 생각해보니 어느덧 얼음이며 눈자국이 없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우수? 눈이 녹아 비나 물이 된다는 말이라고 한다.
<우수(憂愁)였던 그날 저녁 주민모임이 있었다. 두 주에 한 번 모이기로 한 모임이 벌써 여섯 번째였다.>
배다리에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주민들이 마을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소통하고 공유하기위해 만들었던 모임이 자연스럽게 마을의 공터(도로부지)를 주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잘 살려 쓰려는 노력으로, ‘관광지개발’같은 난개발을 막고, 도로를 막는 일들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모임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금창동 일대에서 자발적으로 마을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는 유일한 모임으로 자리잡았고, 이에 행정기관이나 외부 단체에서 주민들과의 논의가 필요한 자리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자신이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민모임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
지난해 초부터 주민들을 들쑤시던 ‘근대문화로경관조성사업(이하 ’근대문화로사업’)‘ 이라는 관광지 개발 사업이 2018년 들어 다시 진행되려하고,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뉴딜‘ 사업이며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사업에 따른 대체도로 성격으로 바뀐 ’중동구 관통도로‘를 다시 간보는 시정부와 국토부, ’희망지‘ 사업이니 ’애인동네 만들기‘ 사업이니 하며 저층주거지 정비사업 등 동구, 인천시, 국토부, 종합건설본부(이하 ’종건‘)가 연일 쏟아내는 바람에 생각해보아야 할 일들이 많았다.
지난 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사업이 처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시기를 맞기도 했지만 ‘6.13 지방선거’ 용 유정복 시정부의 선거용 사업이라는 생각도 뺄 수 없다. 인천시의 곳곳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된데 반해 ‘배다리 관통도로’와 재개발이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구의 배다리(금곡·창영동)을 ‘관광자원’ 또는 ‘개발요소’로 눈여겨보는 이들의 많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모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아파트라도 한 채 분양받으려고 집을 사두고 비워두거나 개발을 기대하고 들어온 외지인들도 있고, 개발을 기대하고 건물을 고치지 않고 집세만 받으며 외지에 사는 사람도 있고, 도로가 나든 안나든 확정이 되면 팔거나 사거나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그런 기대를 하고 공간을 새롭게 꾸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마을이라는 공동체보다는 돈이 되는 공간이나 물건으로 보는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이며 도로개발 문제로 십 수 년 전의 모습에 멈춰있는 마을은 곳곳을 고쳐야 하는 것도 많고, 가게라도 하나 하려면 정화조나 하수정비 등도 필요하다. 몇 평 되지 않더라도 집이 있는 주민은 어찌되었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마을 곳곳의 도시정비사업에 자신의 이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번잡한 대도시 한 가운데 한적한 시골 모습을 자아내고 있는 상황이 되었고, 사람도 차도 적어서 조용하고 좋아 떠나지 않는 주민들도 있고, 이사 온 주민도 있다. 또 저렴하게 공간을 빌려 쓸 수 있었던 각종 도매점과 세입자들도 있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일상에서 즐기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에 호감을 가지던 이들이 공방이나 작업실, 작은 가게를 열거나 월세방이라도 찾아 들어오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런저런 개발사업이나 정비사업에 마냥 좋을 수도 없고 마냥 싫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미 많은 이웃이 떠나 슬럼화나 공동화 현상을 고민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좋은 교통조건에 대도시 한 가운데의 이 작은 마을은 재개발과 도로개발로부터 마을을 지켜냈다는 자신감, 여기에 지속적으로 마을의 일상에 녹아지는 문화예술의 다양한 노력들이 더해져서 공동화-슬럼화의 우려가 자연스럽게 부분이 해소되는 상황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임자리 끝에 ‘대보름 달맞이’ 행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수 년 전 부터 마을공터이자 놀이터, 정원이자 텃밭으로 쓰이고 있는 도로터에서 '스페이스 빔'이 달집태우기를 하며 대보름 행사를 진행해 왔었는데 주민모임에서 주관하는 게 어떠냐며 제안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
오곡밥을 떡집에서 주문하고, 부럼이나 구워먹을 견과류에 막걸리도 좀 사기로 했다. 어머님들이 나물 한가지씩을, 빔에서는 달집과 웹자보를 준비하기로 했다. 쥐불놀이 할 깡통은 금속공방에서 불붙일 것과 폭죽은 마을사진관 '다행'에서, 오랜만에 여럿이 준비하니 가능하면 풍물놀이패를 섭외해 마을 골목을 다니며 지신밟기도 하고, 뜨끈한 국물과 이웃들에게 알릴 포스터도 잊지 말고 만들어 붙여야 한다.
손과 발이 움직이고 마음이 나눠지는 작은 이야기를 하니 말이 없던 이도 거들고, 좀 길어진 회의에 지루해 하며 하품을 하시던 어머니도 무슨 나물을 할지 고민이라며 웃었다.
마을사람들이 다 모이는 자리도 아니어서 어떤 결정 권한도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는 모임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곳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도로정비나 환경개선, 텃밭가꾸기, 마을공터 정원사업 등 갖가지 고민들을 하며 논쟁도 하고 논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교통사고로 몇 달을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물리치료 다니는 개코막걸리 어머님 걱정도 하고, 봄이 되면 텃밭에 뭘 심을까 고민하고, 몸이 아파 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이웃들 안부도 묻는다.
오늘내일 먹거리 일거리 걱정, 가족들 밥 챙기는 일에 아이들 등원 등교 걱정, 집안일도 해야하고 가게일도 밀렸고, 아침 집회도 나가야 하고, 부모님 용돈도 가게 월세도 걱정인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온 나라 걱정부터 일상의 걱정까지 맡길 수 있는 ‘걱정 인형’ 따위는 없다는 걸 오롯이 느끼는 일상이다.
그 걱정하라고 맡겨뒀더니 고양이 생선가게 맡긴 듯 되어버렸고, 높은 자리랍시고 앉은 이들은 법원이고 검찰경찰, 군대며 회사, 학교, 시민단체, 정치단체에 예술합네, 체육합네 하는 자들까지 자신들의 딸이고 아내고 누나고 어머니였을 여성들에게 입에 담기도 역겨운 성추행 성폭행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그 힘겨운 와중에 평창의 올림픽에서 땀 흘리고 경쟁하며 울고 웃는 이들에 모습에 어떤 위로를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엄마는 옆에서 넘어지는 선수들을 보며 연신 ‘아이고, 어쩌냐? 안다치냐? 그동안 고생했는데 어쩌냐... 아이고 잘했네’ 하며 안타까움 말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메달도 못 땄는데 왜 잘했다고 하냐며 묻기도 하신다.
‘여긴 어디? 난 누구?...’ 하며 일상의 공간과 삶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마을은 무엇이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런 것들의 분별을 통해 만들어 가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의 시간이 길어진다. ‘마을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