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를 열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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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를 열어야 돼!!
  • 강영희
  • 승인 2018.04.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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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마을이 지속하기 위한 조건


@2008년 배다리문화축전때 만든 마을지도
 


배다리의 시간

‘동인천 배다리’라 불리는 지역은 지금보다 꽤 넓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조선인 밀집지역이었던 배다리는 중앙시장 송현시장부터 싸리재 초입과 참외전로 일대 전도관으로 가는 우각로 일대까지 배다리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인철도가 생기고 참외전로, 송림로, 금곡로까지 사방팔방으로 길이 생기며 지금의 동구의 창영동, 금곡동 일대가 배다리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산업도로를 만든다며 마을 가운데 폭 50여 미터, 3000여 평의 부지가 생기자 도로부지 동편과 경인전철, 송림로로 둘러쌓인 삼각주 일대를 배다리로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재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창영어린이공원’에서 중구 도원동으로 넘어가는 육교 인근, 도원역에 이르는 어귀까지 헌책방과 많은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경인전철이 개통하면서 배다리 주변 학교 학생들의 통행이 불편해지면서 학생들이 적어지자 학교 앞으로 이사를 가면서 책방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철로로 가로막히고 도로로 통학로가 단절되다보니 책방은 점차 동인천역이 있는 지금의 헌책방 거리 일대만 남고 대부분 사라진 게 90년대였고, 2000년대 경인전철 복복선 공사와 창영공영주차장 공사를 하면서 많은 주민들이 떠났고, 많은 집들이 헐렸으며, 산업도로를 만든다고 지금 배다리 생태공원과 텃밭 자리에 있던 수많은 집이 헐리고, 사람들이 떠났다고 한다.
 



@경인전철 복복선 공사 이전의 모습_사진_동구사랑 카페
 


창영초교와 영화초교, 동명초교가 있는 도로부지 서쪽 금창동 일대는 2006년부터 주택재개발정비구역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2010년 2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해 2015년 9월 해제되었다. 정비사업 지정 전부터 이미 집을 팔고 나간 주민들도 적지 않았고, 외지인의 투기성 자금이 들어와 빈집들도 늘어나는 등 일련의 과정 속에 거주민들이 줄어들었다가 정비사업 해제 후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되고 있다.

 

거주민이 줄어들면서 헌책방거리가 있는 도로부지 동쪽 일대에 있는 헌책방이나 가게들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수월한 교통여건 탓에 서적, 문구, 완구 등의 도매점이 늘고, 빈 집이나 공간이 생기는 족족 그 도매점이나 책방의 창고로 사용되면서 책방거리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남아 있어도 대부분 노년층이다, 개인을 상대하는 상점이 사라지면서 마을 안에 있던 거주민들의 편의시설도 거의 다 사라진 상태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았다는 100여년 역사의 마을은 근 2-30년 사이의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였고, 그때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이곳저곳으로 내몰리며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daum 지도 - 스카이 뷰

 

도시에 마을은 있는가?

 

아파트와 빌라, 주상복합건물 등의 다세대 공동주택에 의해 도시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구도심- 원도심이라 불리는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의 마을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을만들기’, ‘마을사업’은 학교와 입시, 취업경쟁에 내몰린 아이와 청년들 없이 열정도 힘도 잃어가고 있다.

 

‘도시 속에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 회복’이라는 나의 지향은 ‘도시의 마을, 마을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물음에 턱하고 막혀버렸다.

 

개발, 발전이라는 환영에 꽂힌 세대와 결혼, 직장, 집, 가족라는 것을 포기하거나 그것들에 묶여 다른 삶은 상상하지 못하는 세대들이 각자의 벽에 갇혀 있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이웃과 사귀는데 애쓰기 보다는 먹방 TV를 보거나 SNS와 인터넷 서핑을 하고, 빚을 내 소비하고, 갚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우리에게 ‘함께 살기’라던가 ‘공동체’ 같은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생뚱맞게 '연탄길'이 어디냐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둘레길을 만든 이들이 임의로  '연탄길'이라고 이름 지은 것. 예전에 배다리에 살던 사람이 그런데가 있었냐며 물었다. 

 

 


느슨하게 소통하는 삶

 

도시의 공동주택들은 다 함께 모여 살지만 각자의 벽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어 공동체나 마을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피곤한 관계 맺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었던, 나 살기도 바쁜데 굳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이유도 없는 도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구조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바람(wish)을 읽게 된다.

 

느슨하게 소통하는 삶.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주고받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읽게 된다. 반려동물과도, SNS와도 자신을 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속적인 관계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집중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제비꽃_ 저 척박한 시멘트 벽 아래 봄이면 피어 나는 게 놀랍다.

 

이제는 마을을 열어야돼!
 

배다리가 작은 섬이란 생각이 종종 든다. 배다리가 폐쇄적이라는 말도 적잖이 듣는다. 완전히 고립되었지만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어 변하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게 된 ‘갈라파고스’라는 섬이 떠올랐다. 하지만 도시의 섬은 이미 느리지만 계속 변해왔고, 다양한 가치들이 있지만 언제 어떤 바람이 불어 사라질지 위태위태하다.

 

그런 마음을 나누다보니 이웃이 중얼거리듯 건넨 말이다. “이제는 마을을 열어야 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공동의 지향을 만들고 노력하는 일이다. 혼자 앞서가는 열 걸음이 아니라 함께 가는 한 걸음이 혁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때때로 현재 상황에 대한 점검을 해야 한다. 나와 내가 살아가는 그러면서 현실을 냉정히 보고, 변하지 않는 것, 변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현실의 한계나 상황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가는 열 걸음도 함께 가는 한 걸음도, 사방팔방 제멋대로인 걸음도 다 응원하고 싶다. 무엇이 그걸 가로막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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