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축제가 벌어지는 ‘작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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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축제가 벌어지는 ‘작은 도시’
  • 양진채
  • 승인 2018.05.07 0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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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 모항 첫 출항, 코스타 세레나 크루즈 여행기 / 양진채·소설가

인천항을 모항으로 인천항만공사(IPA)와 인천관광공사 주관하는 크루즈 여행이 지난 4일 첫 출항했다. 일본 남쪽의 휴양지 오키나아와 이시가키를 거쳐, 대만 타이페이를 돌아 10일 오전 부산항에 귀항하는 6박7일 일정이다.  첫 크루즈에 인천시민 서포터즈로 선발돼 승선한 양진채 소설가의 크루즈 여행기를 연재한다.



ⓒ김종은


크루즈 여행을, 그것도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서 시작할 수 있다니
 
5월 4일 오후 4시가 넘어 인천 송도 신항만에서 출항했으니 크루즈에서 2박을 잤고 3일째를 맞았다. 벌써 일주일은 보낸 듯하다. 크루즈여행은 기항지를 여행하는 것보다 크루즈 선내에서 즐기는 그 자체가 여행이라는 말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루즈 자체가 완벽한 하나의 도시 같았다. 그것도 축제가 열리는 낯선 도시.
‘낯설다’와 ‘여행’이 만나면 설렘을 동반한다.
 
크루즈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내게 크루즈라고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느낌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지금 크루즈 안에서 이 글을 쓴다. 인천항망공사와 인천관광광사 공동으로 인천에서 출항하는 크루즈를 홍보하기 위한 서포터즈 선발 기사를 보자마자 지원했다. ‘첫’의 끌림, 게다가 인천 모항, 크루즈 경험이 어떤 영감으로 작용해 소설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런 것들이 나를 이끌었다.
 
대기 장소는 어떤 곳인지, 신항만까지는 어떻게 가는지, 어떤 사람들이 크루즈를 이용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좀 당황했다. 대기 장소에서 만난 엄청난 인파! 대기 장소인 인천대입구역까지 가는 전철 안에서부터 적지 않게 만난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을 볼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다. 모두 한국사람, 대부분 인천시민, 가족동반도 많았고, 연로하신 분들도 꽤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했다. 크루즈를 떠올리면 당연히 떠오르게 되는 유럽인들은 대부분 코스타 세레나 호의 직원들 뿐이었다. 유럽인들 앞에서 기죽으면 어떡하나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인천 송도에 크루즈가 입항할 수 있는 신항만이 건설되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도 손쉽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크루즈 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얘기였다. 또 한국을 기점으로 출항하니 한국인 관광객이 많을 테고, 당연하게 한국인을 위한 여행 가이드, 선내 안내원이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영어울렁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직원 1000여명과 여행객 2000여명을 합해 3000명을 태운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는 그렇게 한국 관광객을 태우고 일본 오키나와를 향해 출항했다.



ⓒ양진채
 
 
‘크루즈’는 축제의 도시였다.
 
대기 장소에서 모여 버스를 타고 크루즈가 정박한 항만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는 크루즈의 시설을 다 알만하면 여행이 끝나있을 거라고 했다. 이틀째가 되자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63빌딩을 옆으로 뉘어놓은 크기보다 큰 크루즈인 코스타 세레나 호는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객실을 나서면 복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수시로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듯, 자주 길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어도 염려는 없었다.
 
목적을 정하지 않는다면 어디든 머물만한 곳이었다. 크고 작은 공연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었고, 같이 춤을 배우거나, 바에서 맥주 한 잔 하거나, 면세점을 구경하고, 카지노에 들어서게 된들, 극장 앞을 지나고 3층 높이의 대 공연장 입구에 서게 된들, 수영장을 만나게 된들, 어디든 눈이 호강할 수 있었다. 도시를 여행하다 지치면 길가 어딘가에서 주저앉듯, 객실로 들어와 쉬었고, 12층으로 올라가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병원까지 갖추고 있는 배 전체가 작은 도시였다. 그것도 흥겨운 축제가 열리는 작은 도시.
 
때로는 과감한 성장盛裝을 하고 <클레식 오페라 콘서트>에 참여하고, 선장인 안드레아 바디와 기념촬영을 하고, 임원진과 칵테일 파티를 하고, 인기 가수의 흥겨운 공연을 보고, 아이와 어르신들이 격의 없이 몸을 흔들어보고, 그렇게 들뜬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것들에 지치면 책을 빌려와 읽어도 되고, 룸의 텔레비전을 틀어 향수를 느끼듯 한국드라마를 봐도 되었다. 방 안에서 무연히 망망한 바다, 부서지는 햇살을 봐도 좋았다.



ⓒ양진채

 
배는 쉬지 않고 밤을 달려 오키나와로 향했고, 아주 가끔씩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이 크루즈가 흔들리는 만큼만 흔들리자. 일상의 체면이나 지위, 걱정 같은 것들은 던져버리고 배가 가끔 흔들리는 것처럼만 흔들려보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고 시인은 말하지 않던가. 여행 끝에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아는가. 꼭 그만큼만 흔들리자, 그런 마음들이 수시로 들었다.
인천을 모항으로 한 첫 출항, 누군가 대만까지 크루즈로 가는 건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흔들리며, 나를 버리며,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새겨본다.
 
선내의 몇 가지 액티비티를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골아 떨어져 두 밤을 잤다. 처음 대기 장소에서 느꼈던 복잡하고 번잡스러운 느낌, 황량한 매립지를 지나 아직 건설 중인 항만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미완성인 썰렁함, 그런 것들은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창문으로 망망한 바다만 보이더니 차츰 다른 배들과 부두의 테트라포트 같은 것들이 보였다. 오키나와에 다다른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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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채

ⓒ양진채

ⓒ양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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