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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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 강영희
  • 승인 2018.07.05 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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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천천히 가자

장마, 오랜만이다.’

몇 해 전부터 장마철이 되어도 몇 번 되지 않는 국지성 폭우를 맞기는 했지만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마른장마’라는 말이 생겼다. 이래저래 귀찮은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물 부족’ 등의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덕분에 지구 온난화, 급격한 기후 변화의 위험성, 우리나라가 열대 건조기후에 사막화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올해는 ‘봄비’다운 봄 비도 넉넉히 내리고, ‘6말 7초 장마’라는 말이 오랜만에 입 밖으로 나왔다. 장마철 마다 폭우 뒤에 태풍 ‘쁘라삐룬(태국말로 ’비의 시神’)’이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했는데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가면서 비 뒤의 시원함이 더위를 식혀준 모양이다.

빠르게 변하는 상황들 속에서 잊고 옛 장마철 풍경을 맞으니 왠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폭우가 내리고, 바람에 단단한 접시꽃이 꺽이고, 고장난 우산이 곳곳에 버려진 풍경이 편안하다니 ..

@비가 개인 후 도원역 입구 철로변 갤러리 모습

철로변 갤러리

거친 비바람이 불던 지난 일요일, 도원역에서 내려 철로변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연두색 철망 아래 담쟁이 넝쿨이 아름답게 콘크리트 안전턱을 덮고 있었다. 작고 귀여웠던 담쟁이 잎이 어느덧 손바닥만큼 커졌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넝쿨들 사이에 고이 세워져 있는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2년 ‘철로변 걷고 싶은 길 조성사업’을 했다. 그러면서 얇은 돌판에 청년 활동가, 영화여자정보고(현 영화관광경영고등학교) 학생들, 창영초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있었고, 12월 중순 이 그림을 철재 고리로 안전망에 부착했다.
그렇게 걸려있던 그림들이 2-3년 전부터 철망 옆에 종종 깨진 돌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지난해부터는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져 이젠 3, 4분의 1정도가 남았다. 왜 떨어지나 보니 석판화를 잡고 있던 철재고리가 녹이 슬었다.

그렇게 떨어진 그림들이 종종 안전턱 위에 얹혀 있곤 했는데 그걸 밟지 않고 얹어 둔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졌고 마음이 읽혀졌다.


@2012년 12월 15일 청년활동가들이 석판화를 걸고 있다.?

관리가 되지 않는 걷고 싶은? 길

‘걷고 싶은 길 -조성사업’을 한다며 멀쩡하고 단단한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시커먼 아스팔트에 보도는 대리석으로 깔았고, 벚나무를 심고, 돌로 된 갤러리박스를 만들었는데, 2-3년 전 부터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공공근로 청소에 겨우겨우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공근로 어르신들이 쉬는 계절이나 휴일이면 이 길은 1회용 컵, 빈 술병, 검은 봉지, 담배꽁초, 개똥 등등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그 길옆에 이미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월별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거나 혜택을 주고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하도록 하는 방법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관리계획이 포함되지 않는 온갖 조성사업은 결국 뒤치다꺼리가 힘든 애물단지로 남게 된다.

주민이 스스로 만드는?
살기 좋은 마을

누군가의 쉼터, 누군가의 산책길이 되었지만 주민들에겐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고,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이라며 ‘누군가’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제 관에서 뭘 만들어 준다고 해도 ‘하지 말라!’고 하고, 마구잡이 주차는 물론 쓰레기와 소음만 남기고 가는 방문객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들이 끊임없이 ‘민원’되고, 비난이 되자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하란다. ‘우리마을 가꾸기’라며 아침청소도 하고, 이웃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방범대 소방대에 노인들도 돌보고...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다시 살기가 만만치 않으니 귀찮고 힘들고 이익도 안되는 일이 된 것.

어려운 일본식 관공서 문서를 주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꿔달라면 문구 하나 고치는 일이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굳어질 데로 굳어진 시스템이다.

일상을 사는 것도 바쁜 주민들은 마음은 있어도 일을 해야해서, 시간이 좀 나더라도 힘들어서 마을 일을 하기가 어렵다. 내 집과 이웃집 앞을 쓸고, 쓰레기를 줍는 일도 어디 버릴 데가 없으니 (버리려면 비용이 발생하니) 안하게 된다. 누가 치우겠지 하지만 공공근로 어르신들의 손길이나 청소부들의 작업이 없으면 처리되지 않는다.



@2012년 당시 선명한 색깔에 적지않은 철망을 가득 채웠던 석판화들?

희망지 사업과 시범사업

지난해 동구청 미래전략팀에서 ‘희망지네, 시범사업지네, 1억 2천이 들어오네 40억이 들어오네’ 하며 가끔씩 나와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만났다. 그렇게 만난 주민들에게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주민들 10명만 한 자리에 모아달라며 부탁했고 11월 말 한 번 만났다.


@2017년 11월 말 흙길 도자공방에서 진행된 주민 간담회

주민들은 관광지가 되는 것도, 그대로 낡아 사라지는 것도 원지 않은 딜레마 상태서 필요한 다양한 설비 - 하수구 정비, 공동화장실, 전신주 정비, 쓰레기 처리 등 - 를 할 수 있다는 말에 한 자리에 모였다.

도시재생 최적격 지역이라며 한 번 모였으니 자기들이 공모를 해서 받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소리소문 없이 사업 담당자가 바뀌고 부서가 해체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추진 여부가 불투명 했다가 2018년 2월 말 도시재생과 새 담당자가 필자와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주민을 설득해 사업을 신청했고 ‘희망지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이후 6.13지방선거에 행정의 구조변화 등으로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는데 8월에 사업평가, 12월에는 마무리란다.

?

'우공이산 愚公移山’의 마음으로

그 이름도 낯선 ‘희망지’, 주민들이 스스로 만드는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란다. ‘애인동네 만들기’라는 유정복 전 시장이 뭐가 그리 급했는지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가능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되도록 했다. 동구는 2개의 시범지와 2개의 희망지가 선정되었다.

‘희망지 사업’은 정비구역 해제지역과 노후불량주택 밀집지의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마을 가꾸기를 행정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마을단위 주거공동체의 재생, 그리고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의 첫 단계다.

서울에서 전면재개발이라는 일방적 재개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이 필요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의지를 확인하고, 그 의지를 모아내 해당 지역의 필요한 내용들을 찾아내고, 스스로 생산성(주민들이 지역 내에서 일상적 생활이 가능한 상황-자생)을 가져 마을이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하는 단계적인 도시재생 프로세스다.

주민이 있는 마을(지역)이어야 하고, 주민들이 마을을 위해 마음과 시간과 손을 모아야 하고, 그런 주민들의 생계와 생활에 경제적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만들어지고 지속되도록 지원하고 협력해야하는 일이다.

공간은 있지만 사람이 없는 마을, 사람은 있지만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 함께 살고 싶지만 혼자 살기도 버거운 일상, 다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내가(나라, 시, 구 등..) 해줄테니 떡고물이라도 먹으려면 따라 오라는 식의 개발시대를 지나면서 고착화된 시민의식과 해체된 공동체성이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인간적인, 합리적인, 상식적인 그리고 변화된 시대에 맞는 의식까지 마련될 수 있을까?

1-2년이 아닌 10-2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공이산 愚公移山’의 마음으로 오늘 한 발 나아갈 뿐이다.

7월 7일이면 마을을 관통하려는 도로를 막기위해 천막행동을 한지 300일이 된다. 올해는 배다리관통산업도로 반대활동을 한 지 만 12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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