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공간. 작은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배영수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민간 공간 차원에서 장려해주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인천시는 올해 문화예술과 산하 ‘생활문화팀’을 신설해 예산을 지원하며 직접 사업을 시도하는 등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인천in>은 지난해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비롯해 미선정 공간 혹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공간 중 생활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임시공간 채은영 대표. ⓒ배영수
◆ 대기업 나와 뛰어든 미술의 세계, 이후 독립 큐레이터까지
그간 ‘동네방네 아지트’를 통해 소개했던 곳들 대부분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임시공간은 다소 성격이 다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방명록을 쓰고 어떤 공간인지를 물어보기는 하지만, 사실 시민들이 느끼기엔 그것으로 끝이다. 흔히 생각하는 ‘카페’도 아니고, 복합문화공간이라고 규정하기에도 애매하다. 실제 이곳을 운영하는 채은영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들도 전시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을 해온 전문가들이다.
채 대표가 인천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인천(인하대)에서 나왔지만, 굳이 ‘지역’이라는 굴레에 갇혀 활동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가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점도 어찌 보면 늦은 때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계에 투신하기 전 대학은 통계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삼성’의 기획부서에 근무하며 남들 못지않은 잘 나가는 사회인 시절이 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술계에 뛰어든 것도 “다른 의미로 삶을 살고 싶었고, 미술계에 몸담으며 살면 행복하겠다”는 단순한 발상 때문이었다. 어쩌면 역으로 이게 예술의 힘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 대기업 문을 (그것도 어려웠던 IMF 시절에) 과감히 뛰쳐나온 후 대학원에서야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IMF 이후 미술계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위축된 활동을 펼치던 당시 민중미술계열 작가들의 활동 근거지였던 인사동 ‘대안공간 풀’에서 활동하면서 눈을 넓혔다. 그곳에서 오래 일하다 2006년 그만둔 뒤로는 프리랜서도 독립 큐레이터 활동을 하는 등 미술계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고자 했다. 인천에 부모님이 살고 계셔서 인천에서도 2009년부터 송도신도시를 기반으로 큐레이팅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송도3부작’이라는 프로젝트를 3년여 간 하기도 했다.
이후 몇 년은 청주시립미술관에서 학예실장으로 일을 하기도 했지만, 2016년 그는 다시 인천으로 왔다. 그래서 처음 시작했던 일이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의 연구파트 자격으로 입주 작가로 들어온 것. 이때 처음 연구하고 기획한 것이 지금도 임시공간의 대표연구 격으로 언급되는 ‘로컬 큐레이팅 포럼’이었다. 중앙의 큐레이팅과 지역의 큐레이팅은 분명 다른 방향이 있고, 인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미술 큐레이팅이 이루어지고 시장을 형성해 가는 중인지를 연구해 지역 미술계의 지형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
“인천에 다시 왔을 때, ‘인천엔 큐레이터가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정말 없을까? 어떤 사람들이 어떤 기획을 했을까?’와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파악한 것이 시작이었죠. 그러니까 인천 전체에 11팀 정도를 찾을 수 있었고, 그 분들의 인터뷰는 물론 그분들의 작업 등도 유심히 파악해 봤어요. 그 작업들을 해보니 인천 미술계의 지형도가 대강은 그려지더군요. 결국 제 작업은 지역에서 큐레이팅이라는 활동을 하는 방법론 등을 연구하는 거예요.”
올해 임시공간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던 ‘냥덕예찬’.
◆ “예술은 분명한 사회적 역할이 있다”
‘로컬 큐레이팅 포럼’을 비롯해 ‘페이크 뮤지엄’이라는 독특한 프로젝트로 가상의 미술관을 조성하는 ‘인천시립미술관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하던 임시공간은 올해 인천문화재단의 공간지원 사업인 ‘동네방네 아지트’에 참여해 현재 고양이를 주제로 한 ‘냥덕예찬’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지역과 호흡하고 있다.
“우리 공간이 작년에 ‘개항장 고양이 문화생태 지도’라는 걸 만들었었어요. 중구 일대가 오래된 동네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제 생각엔 건축 분야에 집중된 느낌이 컸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다른 쪽을 보기로 했던 거예요. 그래서 고양이를 주제로 잡았던 건데, 사실 그전엔 지역 기관 공모엔 다 선정이 안 됐고, 중앙에서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서도 풀어낸 거였어요.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우리동네 문화생태 지도’라는 어린이 버전 같은 프로젝트도 해봤고, 그게 발전된 것이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문화예술 콘텐츠 소개 및 작품소개 등이 이루어지는 ‘냥덕예찬’이었던 거죠.”
올해 공간지원 사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역시 ‘홍보’였다. 하기야, 임시공간과 같은 신생 공간으로서는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하기도 쉽지가 않은 일이고, 나름대로 SNS 등으로 홍보를 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들이 생각하지 못한 식의 아이템을 임시공간만의 특화점으로 삼을 수 있어 기획자로서는 충분히 보람이 있다고 했다.
“임시공간이 소재한 중구가 사실 주거지보다는 상인들이 많은 곳이고, 그래서 정주인구보다는 유동인구 비율이 더 많죠. 그러다보니 프로그램을 말뚝처럼 박고 진행하는 일종의 ‘스팟(Spot)’으로서는 한계가 있어요. 요즘 드는 생각은 큰 전시나 큰 프로그램은 지역에 찾아가는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거죠. 문화생태지도 사업만 해도 참여 팀 중 중구 출신이 없어서 송도로 장소를 중간에 바꿔서 한 적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나가서 할 수 있는 것, 반대로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할 거고, 또 우리는 민간 공간인 만큼 인천 작가들만 추구하기보다는, 시민들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는 걸 보여주자는 취지도 분명 갖고 있어요. 대신 지역에서 열리는 전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가고, 그런 작업으로도 지형 파악을 하는 거죠. 그래야 비평의 지점도 나올 것이고요.”
그렇다면 임시공간은 내년엔 어떤 활동을 이어나가고 확장할까? 일단은 로컬 큐레이팅 포럼과 페이크 뮤지엄 등 기존 임시공간이 진행시켰던 프로그램들을 더 심도있게 보완 수정하는 것이 먼저지만, 연구의 작업도 꽤 우선순위에 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페이크 뮤지엄인 ‘인천시립미술관 프로젝트’의 연장 차원에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연구 목적으로 인천미술사연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미술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제 생각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현재 인천은 공공미술관이 없고 공적영역도 거의 부재하다고 보고 있는데, 그래서 공적영역에 있는 돈과 제도로 모든 게 블랙홀처럼 다 빨려들어간다는 느낌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 그런 영역이 없다면, 정말 민간의 자율적인 영역에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그 부재와 결핍을 어떻게 재구성할까? 그런 연구작업들은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또 그런 활동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임시공간의 큐레이팅 전반의 고민이 시작되는 사무공간. ⓒ배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