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박인규/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지방의회의원들의 해외연수와 연수 대상국에서의 부적절한 행위가 또 한번 한국의 지방의회와 의원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경북 예천군의회 부의장의 현지가이드 폭행과 퇴폐관광을 의심케 하는 낯 뜨거운 주문은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회의 존재 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지방의회의원의 해외연수를 둘러싼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잠잠해질 만하면 터져 나오면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여행(이하 편의상 해외연수)’이 시행된지 20여년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운영을 둘러싼 문제는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터져 나오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개선방안을 내놓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되고 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는 선진국들의 지방자치 실태를 살펴보고 선진행정을 비교 연구하여 의정에 대한 시야와 안목을 넓혀서 실제의 의정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와는 달리 상당수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는 해외연수가 공짜 해외여행 특혜쯤으로 생각되고 있는 모양이다.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해외연수, 그거 해외여행 아닌가요?”라는 답변이 나온다. 시민의 혈세로 마련된 공직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정말 제도 자체의 존폐문제를 거론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예천군의회가 벌인 수준의 행위가 전국 곳곳에 비일비재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책없이 시민들의 분노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추진할 기회만 엿본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페지가 정답일 것이다.
2018년에 연인원 2,800만명이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예상되고 지방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도 여전히 해외여행이 그림의 떡인 국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 혈세를 이렇듯 낭비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예천군민들이 의원들의 추태에 용서를 구하고 지방의원 총사퇴를 주장했겠는가? 해외연수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연수일정은 본래의 취지보다는 대부분이 관광성 일정으로 채워져 있고 계획서와는 달리 현지 사정을 핑계로 예정된 공무조차 축소하거나 없애고 관광으로 변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말 지방의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여성접대부가 나오는 업소를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는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의원의 심리상태는 무엇이란 말인가? 보는 눈이 많은 지역 사회를 피해 해외에서 버젓이 퇴폐적인 행위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고 동료 의원들도 이를 눈감아주거나 적절히 이에 편승하기도 한다.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분노도 공짜 해외여행 특혜에 대한 지방의원들의 욕망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니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도 버젓이 해외연수를 강행하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는지 중도에 입국하고 연수비를 반납하는 계양구의회 의원들과 같은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한마디로 염치가 없다.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그 어떤 기관이나 단체보다 높다. 특히 지방의원들의 자질과 역량은 지방자치가 부활한 3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시민들의 인식이다. 물론 지금도 밤늦도록 의원회관의 불을 밝히면서 보다 나은 의정활동을 준비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고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서 앞으로 비상할 지역 정치의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고 발로 뛰는 의원 상을 정립하려는 피나는 노력도 지방의회의원들의 추태와 추문이 한번 발생하면 그 간의 온갖 노력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행정안전부가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여행규칙’ 표준안을 전면 개선해서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장을 지방의원이 아닌 민간인이 맡도록 하고, 연수 결과보고서 뿐만 아니라 계획서도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며, 지방의원 국외여비 등의 의회 관련 예산도 주민들이 알기 쉽도록 투명하게 공개함과 동시에 지방의원 국외여비 등을 포함한 자치단체 예산편성기준을 위반하며 패널티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법규를 강화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정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시민들 대다수의 정서도 그렇고 일부 정치권에서도 이참에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시민들로부터 칭찬받는 지방의회라면,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이라면 혈세를 들여서라도 해외연수에 보내는 게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해외연수의 취지를 잘 살리는 연수일정 중에 적절하게 관광성 일정을 넣는 것도 크게 시비거리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후한 인식에 조응하기에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의정활동이 아직은 한참 못미친다. 이제 반년을 넘긴 8대 지방의회가 적어도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해외연수를 진행하지 못한다면 9대 지방의회가 출범하기 전에 해외연수의 폐지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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