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깜깜해. 엄마, 불 좀 켜 놓고 있어."
"전기세 아깝게 불을 왜 두 개씩이나 켜 놓고 있냐? 나는 이 작은 불 하나믄 된다."
"아깝긴 뭐가 아까워. 전깃세가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엄마, 나 깜깜한거 싫어."
"싫어? 왜 싫어?"
"엄만 깜깜한 거 지겹지도 않아?"
"지겹긴. 보이기만 하믄 되지. 너무 밝은 것도 안좋아. 눈만 아프지. 나한텐 이 작은 불빛이 딱 적당하다."
"작은 불빛이 적당하다고? 난 크고 환한 빛이 좋아. 저 스텐드불은 엄마가 주무시다가 잠에서 깨서 지금 몇 시나 됐나? 하고 시간 확인할 때, 또 새벽에 자다 깨서 화장실 갈때 넘어지지 말라고 켜둔 불이고 그럴 때 빼고는 큰 불 켜 놓고 계셔."
"암껏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뭣허러 큰 불을 켜놓고 있냐?"
"내가 싫어. 난 깜깜한 거 정말 싫어. 어려서 엄마랑 둘이 살 때 시커먼 굴속 같은 방에서 백열등 하나 켜놓고 산거 질려서 난 어둡고 깜깜한 거 정말 싫어."
그랬다. 서있을 수도 없는 방,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방,엄마랑 나랑 서로 반대로 엇갈려 누워야만 간신히 잘 수 있는 좁고 낮은 방. 그나마도 칠흑처럼 어두워서 낮에도 불을 켜야만 조금 환해지는 방. 그 방에서 난 아빠 돌아가시고 네 살 부터 엄마랑 둘이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할 때도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난 그 비좁고 어두운 방에서 두더지처럼 살았다. 유년시절과 사춘기를 어둠속에서 살던 난 대학교 졸업을 이틀 앞두고 드디어 그 좁고 어두운 방에서 탈출했다. 1800만원 짜리 방 한 칸 전셋방을 얻어서.
난 대학에 입학하던 해 여름방학부터 입주 과외를 했다. 서울교대 앞에 있는 한양아파트에서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를 가르쳤다. 그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대학을 졸업할때 까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전셋방을 얻었다.나는 전셋방으로 이사가자마자 제일 먼저 방에 누워 파닥파닥 날개짓을 했다. 팔도 다리도 부딪히는 곳이 없는 넓은 방.스위치를 올리면 금새 환해지는 방. 그러나 난 그 넓은 방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엄마가 여전히 굴 속 같은 그 어둡고 좁은 방에서 먹고 자고 했으므로.
그 어둡고 좁은 방에 딸린 반 평도 안되는 구멍가게에서 엄마는 두부랑 계란, 센베이 과자등을 팔았다. 그리고 큰 가게가 문을 닫고 편히 잠을 자는 시간에 엄마는 자지 않고 물건을 팔았다. 손님들은 소주 한 병 사려고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자다가 일어나 물건을 팔았다. 그런 엄마를 두고 나 혼자 전세방에서 편히 잘 수가 없었다. 난 다시 그 어둡고 좁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다시 엄마랑 반대로 누워서 잠을 잤다. 그러다 한밤중에 물건 팔라고 문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쥐포며 병맥주를 팔았다.
어둡고 깜깜했던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난 어둠이 싫다. 나는 반짝반짝 환한 곳이 좋고 사방 팔방 막힘없이 탁 트인 곳이 좋다.
"엄마, 일어나셨어요? 저녁드셔요."
올해 구십이 되신 울 심계옥엄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던 7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매일 샤워를 하신다. 그것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오늘은 특별히 샤워 대신 때밀이 목욕을 해드리고 일회용 보습팩 하나를 엄마 얼굴에 붙여드렸다. 다른 때 같으면 다 늙어서 팩은 붙여 뭐 하냐고 마다 하셨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선선히 응하신다.
"팩을 부치니까 피부도 하애지는거 같고 화장도 잘 받는다."
엄마도 긴시간 목욕하는게 고단하셨나보다. 팩을 부치고 자리에 누운 엄마가 금새 코를 골고 주무신다. 그렇게 초저녁에 잠이 드신 엄마는 저녁 준비를 다 할 때까지도 방에서 꼼짝을 안하셨다. 방에 들어가보니 엄마가 여전히 코를 쌕쌕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 머리맡에는 작은 스텐드불이 켜져 있고 오래된 엄마의 카세트에서는 사랑은 아무나 하냐며 가수 현철이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아, 깜깜해 엄마 저녁? 드셔." 하며 전등 스위치를 켜려던 나는 손을 멈췄다.
사랑은 아무나 하냐며 눈이라도 마주쳐야한다고 노래하던 현철이 이번에는 잠자는 방안의 할머니에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가지말라고 애원했건만 못본 체 떠나버린 너
소리쳐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어라.
현철이 노래 두 곡을 다 부르도록 팩 붙인 방안의 할머니는 어두운 방안에서 쿨쿨 잘도 주무시고 계셨다.
애절하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르던 현철이 세 번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난 방바닥에 가만히 누웠다. 어두운건 여전히 싫었지만 난 전등불 스위치를 켜지 않았다.
"난 이 작은 불빛이 좋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거든."
올해 연세가 90이 되신 울 엄마. 치매에 걸리셨어도 국민학교 문턱에 가본 적 없어도 혼자서 한글을 깨우쳐서 매일 그림책을 읽고 또 내게도 읽어주시는 울엄마.
환한 불빛속에서 살아오신 시간보다 이렇게 어둡고 깜깜한 세월속에서 살아오신 시간이 더 많은 울엄마.
가수 현철이 노래한 것처럼 가지 말라고 그렇게 붙잡았지만 못 본체하고 떠나버린 엄마의 젊음.
일회용팩을 매일 붙여서라도 못본체하고 가버린 엄마의 젊음을 다시 붙잡아 오고싶다.
현철 노래를 들으며 엄마 곁에 누워 있자니 엄마가 작은 불빛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겠다.어둡고 깜깜해서 그렇게도 싫었던 나의 유년시절이 울 엄마한테는 환하고 좋은 시절이었나보다. 남편 그늘에서 살다가 갑자기 남편이 고혈압으로 죽고 네 살배기 딸 하나 키우면서 살아야했던 그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울엄마한테는 지금보다 좋은 시간이었나보다.
사람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 키울 때가 좋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좁고 어두운 방에 살았지만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물건 팔라고 문두드리던 시간 속에 있던 엄마는 지금처럼 늙고 병들지도 않았고 건강하고 기운도 쎘던 여장부였으니. 엄마는 그래서 이 오래된 스텐드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을 좋아하나 보다. 엄마가 작은 스텐드 불을 탁하고 켜는 순간 엄마가 잃어버린 그 젊음의 시간이 다시 환하게 켜지나 보다.
점점 작아져서 소중한 것들.
점점 더 흐릿해지는 엄마의 기억, 점점 더 쪼그라들어 작아져만 가는 엄마의 키, 젓가락처럼 점점 가늘어지는 엄마의 팔다리, 그리고 오래 되서 점점 더 빛이 쇠해지는 우리 엄마의 작은 스텐드 불빛.
"난 작은 이 불이 좋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잠자는 엄마가 희미한 스텐드 불빛 아래서 빙그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