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지난 2017년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민간 공간 차원에서 장려해주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 사업들은 올해도 계속된다. <인천in>은 인천시가 펼치고 있는 '천개의 오아시스' 사업과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비롯해 미선정 공간 혹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공간 중 생활문화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세종문고를 이끌어가는 이의형·강서경 부부. ⓒ배영수
◆ “오래된 서점엔 반드시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그간 ‘동네방네 아지트’에 소개된 공간들 대부분이 현 대표자가 직접 설립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세종문고는 조금 다르다. 지금 기준으로 치면 ‘20세기’에 해당하는 1995년에 이미 서점으로서 운영돼 오며 등교하는 학생들에겐 참고서를 구입하는 곳으로, 지역 주민들에겐 일반적인 책 구입처로 자리해 온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
현재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명의 운영자는 이의형·강서경 부부다. 아직 만 30대의 젊은 서점지기들이 25년 가까이 된 이 곳을 어떻게 운영하게 됐을까. 원래 이 서점은 남편인 이의형씨의 부모님들이 운영했던 곳이란다. 한창 부모의 손에 의해 운영될 시기 이 부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그러나 이전의 직장이 책과 관계가 없지는 않았다는 이들은 부모가 운영하던 서점을 약 6~7년여 전쯤부터 물려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물려받았다는 시기는 전국적으로 중형 이하 지역서점들이 줄줄이 폐업하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이들도 그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2012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가 서점을 물려받던 시기였어요. 당시엔 부모님들이 많이 도와주시면서 물려받을 준비를 했다고 보면 되고, 우리 부부가 운영을 주도한 본격적인 시기라고 하면 2015년 정도가 돼요.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처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서점들이 위험한 시기가 오게 된 거죠. 지금도 사실 그렇고요. 그래서 ‘이렇게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죠” (이의형)
그러나 서점 운영은 물론 2015년에 태어난 쌍둥이 아기들의 육아까지 챙겨야 하는 이들에게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던 2017년경부터 서점 내 구비된 책의 구조를 바꾸면서 약간의 유휴공간을 마련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공공영역의 지원사업에 서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파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랑이 반대도 했어요. 제가 쌍둥이 육아를 해야 하는 상태에서 서점 일이 늘어나게 되면 운영을 하는 남편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그때 시부모님께서 용기도 북돋아 주시고 지원도 많이 해주셨고, 우리도 ‘이 공간은 어쨌든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도 더 강해져서 그런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강서경)
세종문고 내부 전경. 사진으로 찍은 1층은 중·고등학생들이 학습에 구입할 참고서들이 주로 배치돼 있고, 지하1층에는 인문서적과 일반서적 등이 배치돼 있다. ⓒ배영수
◆ “서점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야”
그 결과 세종문고는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의 생활예술공간 지원사업인 ‘동네방네 아지트’에 선정돼 1년 간 활동해 왔다. 어떤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공공성도 찾고 서점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점에서는 잘 주목받지 못하는 자잘한 취미(퀼트, 자수 등)를 담은 서적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선뜻 구입하기엔 망설여질 법도 하고 아무리 책을 샀다고 해도 혼자서는 하기가 어려운 데다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은 이 서적들을 ‘사람들과 함께 웃으면서 즐기면서 해 보면 뭔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으로 지난해 세종문고는 ‘취미 있는 책 모임’이라는 제목으로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했다.
그렇게 한 발을 떼자 자신감이 붙었다. 시대가 바뀌어 이른바 ‘공공영역’에서 진행되는 생활문화 프로그램이 그렇게 큰 장벽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 이 부부는 이후 연수구립 청학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지역서점 연계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손아람 작가와 책 읽기 프로그램과 학생들 대상으로 진행한 오목대회,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등등의 활동을 해 왔다. 인천문화재단의 청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호박이 넝쿨째’, ‘빨간 모자를 쓴 딱따구리야’ 등의 어린이 그림책과 ‘발 끝의 죽음들’ 등의 그림 서적들을 발간한 이지현 미술가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세종문고에서 진행했다.
다만, 공공영역에서 진행된 이점을 갖고 출발했다고 해도 어려움은 있었다. 연수구가 주거지역이 많은 지역인데, 의외로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권유할 만한 사람들을 모으기가 꽤 힘들었던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일정한 취미를 갖고 싶어도, 마음만 갖고 있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거는 우리보다 더 이점이 많을 거라 생각이 됐던 공공도서관, 문화원 등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다 하고 있더군요. 역시 사람 마음 얻는다는 게 쉽지는 않구나 느꼈던 거죠. (웃음)” (강서경)
그래도 지난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눈다고 뛰어다닌 끝에 보람은 꽤 크다고 했다. 우선 재미가 있었고, 소소하지만 나름의 프로그램을 하면서 적지않은 시민들이 책에, 그리고 세종문고라는 공간에 관심을 보여주는 등의 성과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기함도 같이 따라와준 보람이라면 미추홀구나 부평구 등 먼 거리에서도 프로그램을 한다는 얘길 듣고 지속적으로 찾아와 준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멀리서 오는 시민들이 이 공간을 온다는 게 번거로운 일일 텐데,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단다. 물론 이 부부들도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하면서 본인들이 몰랐던 지식을 함양한 부분도 나름대로는 보람이라고 했다.
강서경씨는 올해도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다만 올해도 참여를 하게 된다면 ‘취미 있는 책 모임’을 지속한다는 전제 하에 다른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고민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의 스펙트럼을 가진 공간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주민들이 오가는 소통의 공간으로 삼고 싶다는 게 이 부부의 소망이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서점이 삭막한 분위기를 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건 정말 피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걸 피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많은 주민 분들께서 책을 사가는 공간으로 이용하시면 좋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더 따뜻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삭막하지 않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유롭게 발길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의형)
세종문고가 1층에 마련한 유휴공간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던 모임 중 하나. (사진 출처 = 세종문고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