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ㆍ퍽ㆍ퍽
꽃할머니가 초여름 흙을 삽으로 푹푹 퍼내신다.
"할머니, 뭐 하세요?"
"나, 할머니 아니라니까아. 언니라니깐."
"네,언니(할머니)
"흐흐 언니 좋다, 좋아.이거 어때? 이뿌지?"
"예, 할머니 예뻐요. 무슨 꽃이에요?"
"쓰읍. 또, 또, 또, 언니라니깐. 어쨋든 이 예쁜 언니가 얘네들 이만 칠천 원 주고 샀어. 요기 심어서 다 같이 볼라고. 이쁘지. 이거 향 좀 맡아봐. 냄새가 아주 죽여줘."
"예, 죽을꺼 같아요 으윽"
"근데 이거 말야. 을마나 됐을거 같애?"
"얼마요? 이 꽃 나이요?"
"응, 이거 이십 년도 더 된거야. 내가 계산1동서 살 때 옆집서 얻어다가 심은걸 계산 2동 집으로 이사하면서 옮겨다 심고 또 2000년에 이 아파트로 이사오믄서 데리고 와서 요기다가 옮겨 심었지.얘가 이래봐도 어엿한 처녀야, 스무살도 더 넘은. 그래서 이렇게 새초롬허게 이쁜거야. 아가씨라서."
"아~그렇구나. 할머니 아니 언니 진짜 너무 이뻐요."
"그치? 이뿌지? 그럼 나 사진 한 장 이쁘게 찍어줘봐. 꽃 이쁠 때 사진 한 장 이뿌게 박아놓게."
꽃할머니가 예쁜 꽃들 앞에서 치~즈하며 웃으신다. 그 모양이 참으로 귀여우셔서 사진 한 방 찰칵~
"아이고오 다시 찍어. 하나 ㆍ둘ㆍ셋ㆍ하고 기별를 하고 찍어야지 그렇게 갑자기 찍으믄 어떻해에?"
꽃할머니 앙탈이 귀여워서 가만히 웃고 서있는데 화단 앞을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꽃을 쳐다보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마치 꽃보고 나 사진 한 장 찍어줘 하시는 것 같다.
"아이구, 이쁘다. 이건 인천에서도 보기 어려운 꽃인데. 어쩌면 이렇게 이뿌게 키우셨어요? 이 꽃은 일산하구 김포에만 가도 없어요."
우리 아파트 화단에 핀 꽃이 너무 예뻐서 꽃보고 가려고 일부러 우리 아파트 단지안으로 돌아서 출근하신다는 분이 지나가고 이번엔 오드리헵번을 닮은 예쁜 할머니가 화단 앞으로 다가오셨다.
이쪽 저쪽 자세를 바꿔가며 꽃앞에서 셀카를 찍는 예쁜 할머니 자세히 보니 정말 오드리헵번을 닮았다.
"할머니, 제가 찍어드릴까요?"
"그럴래요? 오늘은 어째 자세가 영 안 나오네." 하시며 핸드폰을 건네주신다.
"할머니, 김~치하세요."
"할머니,진짜 예뿌세요."
"이뿌긴요. 낼 모레면 칠십인데요."
"칠십이요? 할머니 절대 그렇게 안 보이세요."
그러자 삽질을 끝내고 바이올렛을 땅에 심던 꽃할머니가 끼어드신다.
"멫 살이라고?"
"낼 모레면 칠 십이시래요."
"에구, 애덜이구만. 근데 그렇게 안보여. 좋~을 때다."
수줍게 웃으시며 이쁜 애덜 할머니가 이번엔 빨간 목단 앞에서 셀카를 찍으신다.
"얼굴이 이뿌니까 자꾸자꾸 찍는구만. 좋을 때다."
꽃앞에서 이표정 저표정 지으며 사진찍는 오드리헵번 할머니를 보며 좋을때다를 연발하시는 꽃할머니가 너무 귀여워 꽃할머니 몰래 찰칵~
"거기서 뭐햐?"
큰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함박꽃할머니다.
"아침부터 뭐 좋은 일 있어? 뭘 봤길래 그렇게 해벌쮜해서 서 있어?"
"우리 함박꽃할머니 만나서 좋아서요."
"나 만나서? 싱겁긴. 엄니는 가셨어?"
"예, 방금 전에 가셨어요.
그런데 할머니, 이렇게 이쁘게 하고 어디 가세요?"
"나? 노인정."
땅만 보며 열심히 꽃을 옮겨 심던 꽃할머니가 함박꽃할머니 목소리를 들으셨다.
"언니, 잘 만났네. 언니네 집 앞에 심은거 내가 앞쪽으로 옮겨다 심어줄테니까 가서 거름한 봉지 사와."
"진짜로?"
"진짜지 그럼. 삽질하는 김에 내가 옮겨다 심거줄테니까 후딱 가서 거름 한 봉지 사와."
이만 칠천 원짜리 바이올렛을 다 심은 꽃할머니가 이번엔 또 옆에 흙을 삽으로 퍼내신다.
"할무니, 거기엔 뭐 심으실거예요?"
"응, 조 옆에 화분에 심어놓은거 빼다가 요기 심을라고."
"어딨는데요? 제가 가서 가져올께요."
"아녀. 무거워서 김선생은 들지도 못해."
"에구, 할무니 제가 할머니보다 힘 더 쎄요."
"힘이 쎄긴 뭐가 쎄? 오뉴월에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얼굴을 해가지고 설라무니."
"안 그래요 할머니. 보기보다 저 힘 엄청 쎄요."
"에구, 됐거덩. 안들어본 사람은 화분 못 들어"
"이건 왜 여기다 옮겨 심어요?"
"겨울에 화분에 심어서 집안에 두었던건데 이제 봄 지나 여름이 되어가니 제자리에 갖다 돌려놔야지."
"제자리요?"
"응, 다년생이니까 밖에 두면 추운 겨울에 얼어죽을테니까 겨울동안에 요 화분에 심어서 집에 가져다 두었더랬지."
"아니, 다리도 아프다믄서 아침부터 왠 삽질이여?"
쯧쯧쯧 혀차는 소리에 돌아보니 자전거할머니시다.
"할머니 어디 다녀오세요?"하는 내 물음에 자전거할머니는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조~기하고 고개로 대답하신다.
"수술하고 그렇게 몸 마구잡이로 막 돌아쓰면 저번 때처럼 또 병원에 실려간다. 금새 덧난다고."
툭툭 무심한 듯 말씀하시지만 자전거할머니의 말속에는 꽃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할머니, 두 분이 나란히 서 보세요.
제가 꽃할머니랑 자전거할머니랑 인생사진 한 장 찍어드릴께요."
"인생 뭐?"
자전거할머니말에 꽃할머니가 좋은 거야 좋은거 하며 자전거할머니 팔짱을 꼭 끼신다.
"이뿌게 찍어드려."
꽃할머니와 자전거할머니 사진을 찍어드리는데 이번엔 1층 사시는 꽃밭 할머니가 베란다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하신다.
"할머니도 같이 찍어요."
"안돼. 시려. 난 잠옷바람이야."
"그래도 거기 서보세요. 할머니 세 분이서 같이 찍으세요."
사진찍어드린다는 내말에 1층 꽃밭 할머니 말씀으로는 싫다싫다하시면서도 머리랑 옷을 매만지신다. 그 틈에 찰칵~
"아 뭐야아? 찍지말라니까아. 아 무효야 무효. 다시 찍어. 나 옷갈아 입고 오께." 하시며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가시는 1층 꽃밭할머니. 그 모습을 보고 자전거할머니 또 혀를 차시며 하시는 말씀. "변덕하고는. 싫다고 할때는 언제고.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간?" 하신다. 그러자 꽃할머니가 손으로 자전거할머니 등을 한 대 짝하고 내리치신다.
"아 왜에? 내가 은제 한번이라도 틀린 말 해?"
"아이고 듣는다 들어."
티격태격 할머니들의 귀여운 말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또 한 방 찰칵
할머니들이 이뿌게 가꿔놓으신 꽃밭 덕분에 보고싶은 할머니들 실컷 만나고 할머니들 꽃수다에 행복해진 아침. 요즘은 가게도 포토존이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고 하던데 나도 이참에 화단 앞에 돗자리 하나 깔아놓고 본격적으로 할머니들 꼬셔볼까? 예쁜 꽃배경 삼아 할머니들 인생 사진도 찍어드리고 행복하게 해드려볼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