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일요일에 엄마네 집에서 저녁먹기로 했어."
"왜? 밖에서 안 먹고?"
"응, 어머니가 어지러워서 밖에 안 나가시겠대."
"엄만 왜 그러신대. 나가서 먹지? 날도 더운데."
"나가도 어머니가 밖에 음식 안 드시니까 그냥 집에서 밥하고 국끓여 먹자셔."
"아버지 생신인데. 나가서 아버지 좋아하시는거 먹자."
"그러면 좋은데 외식할거면 우리들끼리 아버지 모시고 나가서 먹고 오라셔."
"엄마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시냐? 그럼 꽃게 사올까? 아버지 매콤한 꽃게탕 좋아하시잖아. 회도 떠 올까?"
"어머니 매운거 못 드셔."
"엄마 드시라고 그러나? 아버지 생신이니까 아버지 좋아하시는 거 사오려고 그러지."
"그래, 그럼."
나가던 남편이 못내 아쉬운지 신발을 신으며 또 묻는다.
"자기가 엄마한테 말하면 안되나? 엄만 자기말이면 다 들어주시잖아."
"안돼. 언니랑 아가씨두 집에서 먹재."
"아버지가 서운해 하실텐데"
남편은 집에서 아버지 생신상 차리는게 영 마뜩잖은가보다. 계속 나가서 먹자고 한다. 날도 더운데. 나도 그러고 싶다. 외식을 좋아하시는 시아버지와 바깥음식을 싫어하시는 시어머니. 몇 년 동안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때 밖에 나가서 먹었다. 그때마다 맛나게 드시는 시아버지와 달리 시어머니는 식사를 거의 안하셔서 마음에 걸렸었다. 시누이들이 집에서 해먹자해서 그렇지않아도 걱정이 태산인데 생신상 차리는 당일에도 외식 타령하는 남편 때문에 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버지는 내가 생신날 모시고 나가서 아부지 좋아하시는 콩국수 사드리께."
내 말에 찬기가 돌았나보다. 남편이 눈치를 보며 한마디하고 나간다.
"힘들까봐 그러지... 엄마는 괜히 여러 사람 힘들게. 일년에 딱 한 번 아버지 생신인데 나가서 맛있는거 먹지."
시어머니가 식사를 잘 안하신다. 입맛이 없다시며 식사를 잘 안하셔서 몸무게가 많이 빠지셨다. 이것 저것 평소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도 해다 드리고 입맛 도는 한약도 해드리고 종합검진도 하고 허리수술까지 다 하셨는데 시어머니의 잃어버린 입맛은 수이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시어머니에게 종합검진검사 결과는 이상 없으니 지금보다 몸무게를 5키로만 늘리면 어지럽지 않을거라 했다.
시아버지 생신에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시루떡을 한 말 맞췄다. 식혜랑 같이. 더운 날씨에 팥이 금방 쉬니까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 개씩 꺼내드시기 쉽게 돈을 조금 더 주고 한 개씩 낱개 포장을 해달라고 했다.
맞춤 시간보다 떡이 두 시간 늦게 나왔다.떡집에서 떡을 찾아 시댁엘 가니 시누이들과 시동생가족은 거실에 있는데 시어머니가 안 보이신다. 어지럽다고 방에 누워 계시던 시어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우신다. 방문을 닫고 시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무니 왜? 왜? 누가 울엄니 서운케했어요? 누구야? 우리 고 박사엄니 울린 사람?"
엄니 기분 풀어지시라고 목청을 힘껏 돋워 문밖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몰라, 너보니까 눈물이 나.
다른 애들 보면 눈물이 안나는데 너만 보믄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왜냐믄 울엄니가 배가 고파서 눈물이 나는겨. 엄니 오늘 뭐 드셨어요?"
"나? 밥 먹었어."
"엄니 진짜로 밥 드셨어요? 조사해보믄 다 나오는데에 뭐 드셨어요?"
"두유랑 요쿠르트랑 다 먹었어."
"요쿠르트랑 두유? 고것만 드셨으니 나보믄 눈물이 나지."
"내가 입에 뭐 넣기가 시러. 어지러워서 지금도 누워있었어."
"아무 것도 안드시니까 기운없어서 자꾸 어지러우신거에요 엄니."
"나는 살만큼 살았다. 너나 잘 먹어. 내가 너 나이 때는 지금처럼 이러지 않았어. 네가 잘 먹고 건강해야 어무니도 잘 모시고 식구들도 건사 잘하지.그러니까 잘 먹어라."
"내가 어무니한테 하구 싶은 말인데 엄니. 의사선생님도 엄니 지금보다 5키로만 몸무게 늘리면 어지럽지 않다고 했어여. 그러니까 잡숫기 싫어도 잘 드셔야해요."
"근데 내가 입에 뭘 넣기가 싫어.
요즘에 내가 어지러워서 자꾸만 누워야돼."
"안 드시니까 자꾸 어지러우신거예요 엄니."
"내 걱정하지말고 너나 잘 먹고 건강해, 나는 너 나이때는 ???"
이렇게 시작된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두 시간이 넘어가도록 계속 반복이 된다. 시어머니가 18살에 시어머니의 친정아버지 약을 다려드렸던 이야기, 시할아버지가 술김에 손녀인 시어머니를 시집보낸 이야기, 집안 일은 시어머니에게 몽땅 맡기고 바깥일로 바빴던 시아부지에 대한 서운한 이야기,나를 볼 때마다 시어머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시는 우리 시어머니. 명절에 음식을 하다가도 시어머니 이야기가 시작되면 음식 장만은 뒷전이 된다. 명절음식 만드는 것보다 이야기고픈 시어머가 더 중하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난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시어머니 말을 들어드린다.
젊은 시절 시어머니는 시아부지에 대한 서운함이 컸었던 것 같다.
"어무니 그때 아부지한테 막 뭐라 그러지 그걸 왜 여태 참고 사셨어요?"
"나는 그게 말하기가 싫드라."
"어무니가 젊은 시절 하두 참구 살아서 지금 이렇게 힘드신가보다. 지금이라도 아부지한테 서운한거 있으면 담지 말고 다 말하고 사세요 엄니."
"그래야되는데. 젊어서 하두 고생해서 지금 살만하니까 이렇게 몸이 아프네."
"그니까요, 엄니 이제 잘 키운 자식 덕 보면서 재밌게 사셔야하는데 이렇게 편찮으시니 을마나 억울해.
그니까 어무니 잘 드셔야돼요. 울 엄니 뭐 먹으까? 시루떡 좀 먹으까요? 내가 엄니 저번에 시루떡 맛있게 잘 잡숫길래 아예 한 말 해왔는데 이따 집에 갈 때 도련님네랑 언니네랑 아가씨네 몇 팩 씩 싸주고 나머진 냉동실에 넣었다가 엄니 한 팩씩 꺼내서 드셔요.
밥이 잡숫기 싫으시면 뭐든 입에 맞는거로 드셔요. 자식들 있어 봤자 암소용 없대요. 남편이 보약이래."
"보약이래? 그래 내가 두유랑 요쿠르트는 안 빼트리고 먹어."
"잘하셨어요 엄니 두유랑 요쿠르트에 요 시루떡 드시면 안 어지러워요."
"나는 걱정말고 너나 잘 먹어. 젊은 애가 몸이 그게 뭐냐? 내가 다른 애들은 보믄 눈물이 안 나는데 내가 너만 보믄 눈물이 나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만 보믄 눈물이 나 엄니?"
"응, 내가 너만 보믄 눈물이 나."
"내가 불쌍하게 생겼나? 울 엄니가 왜 나만 보믄 눈물이 나시까?"
"몰라. 너만 보믄 눈물이 나."
에구 울 엄니가 내가 음청 고생하는 걸 아시나"
"내가 니맘 다 안다. 나두 친정엄마를 한참 모셨어. 친정엄마 모시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다 알아. 그러니 너 힘든거 내가 다 안다. 그러니 잘 먹고 건강해야대."
"난 엄니모시고 살아서 힘든거보다 엄니가 진지 안 잡숫고 어지럽다고 누워있는게 더 힘들어요.
이거 다 잡숫고 나가요. 엄니가 방에 이렇게 누워 계시면 아부지도 속상하고 또 애비도 걱정하고 아가씨나 언니나 도련님이 맘이 안 좋아요."
"그래 나가자. 내가 너 보니까 힘이 난다."
"에구 어무니. 자식은 암만 잘해도 다 소용없다던데. 맨날 같이 계시는 아부지 얼굴 보고 힘나셔야져."
"몰라. 나는 니 아부지도 필요없고 다른 자식 다 필요없어. 내 얘기 잘 들어주는 우리 큰 며느리가 제일 좋아."
누워계시던 시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걱정어린 가족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시아부지가 제일 좋으신가보다. "엄마, 여기 기대앉으라고 해라."하시며 앉아 계시던 자리를 슬쩍 내주신다.
"역쉬이 어무니 생각하는 건 아부지밖에 없네."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시아버지 손을 잡아 시어머니손과 맞잡아 드렸다.
"아니 이 냥반이 왜 이래?" 하고 손을 뺄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도 시아부지도 잡은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계신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날 것 같다.
사시는 동안 이렇게 두 분이서 오래 오래 두손 잡고 정다우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