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이 안내하는 공간, 대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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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이 안내하는 공간, 대청도
  • 유광식
  • 승인 2019.09.0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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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옹진군 대청도 / 유광식

일몰에 맞춰 얼굴을 붉히는 서풍받이 기암괴석. 서광받이라고 해도 무방한 장면이다, 2019ⓒ유광식
 

삼복더위가 지나가더니만 이제는 간혹 아침마다 선선한 공기에 놀라곤 한다. 더위에 조급했던 마음을 해소하기도 전에 자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맛을 던져주는데, 경이롭기 그지없다. 인천에는 150여 개가 넘는 섬이 있다고 한다. 반복되는 도시 생활에서 일탈의 꿈을 꾸게 될 때, 인천의 섬은 그 장소로 제격인 곳 같다.

8월이 끝나갈 무렵, 인천의 북서쪽 먼 섬인 대청도에 갈 기회가 생겼다. 대청도의 풍경을 상기하며 조금이나마 스케치해보는 것으로도 큰 피서가 될 것 같다. 자연이 꼭 섬에만 있으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배를 타고 3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항해해야 한다면 목적지에 나를 감탄시키는 그 무엇이 있길 바라게 된다. 작년에 소청도에서 흠칫 바라보았던 대청도를 올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매우 기뻤다.

 


대청도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삼각산을 바라보는 사람, 2019ⓒ유광식
 

배의 차창 너머로 보이는 대청도의 첫인상은 매끄러웠다. 기상 상황이 좋기도 했지만 높다란 삼각형 모양의 산세가 가지런하다는 인상을 받으며 기온 외의 온기를 느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대청도의 큰형님 격이 삼각산이다. 그날은 날이 좋기도 했거니와 잔잔한 파고로 생애 첫발을 디딘 대청도의 이미지를 마음에 상당히 고르게 펴 말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삼치 조림에 각종 산나물을 곁들인 점심 식사로 밥 한 공기를 더 먹게 되었다.

1박의 코스였기에 이곳저곳 다소 바쁘게 다녔다. 옥죽동에 짐을 풀고 해안사구와 용치의 풍경을 지나치며 당도한 옥죽동 모래사막은 그야말로 모래 왕국이었다. 옥죽동 집들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 때문에 창문을 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길바닥은 모래를 치워도 금세 모래가 올라와 선탠을 하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에는 낙타가족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억지스러웠다. 관광용이라고는 하지만 발목 잡혀 떠나지 못하는 신세로, 모형이지만 눈망울이 애처로웠다. 옥죽동 모래사막에 방문한다면 고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보기를 추천해 본다. 보드랍고 따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대청도 옥죽동 모래사막 위에서 바라보는 백령도, 2019ⓒ유광식

섬은 그 자체로 천연의 지질자원이었다. 대청도는 바다에서 홍어잡이가 흥했고, 홍어를 삭히지 않은 회로 먹는 곳이기도 했다. 지두리 해변에 내려서니 커다란 수직 절벽 바위가 모난 인간의 욕망을 잠재우듯 우직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층층이 쌓인 시간의 안목이 깊게 내려앉은 절벽의 단면을 바라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백령도의 모습 또한 기대되었고 말이다. 작년의 소청도에서 이번에 대청도, 다음에 백령도를 향한다면? 백령도 넘어 북한으로도? 섬 거주민 절반이 군인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사실은 구석진 긴장감이기도 했다.

 

엄청난 지각변동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지두리 해변 옆 암석, 2019ⓒ유광식

고운 모래 위로 적당한 수온을 자랑하는 바닷물이 파도치는 지두리 바닷가, 2019ⓒ유광식
 


서쪽 능선을 따라 서풍받이 구역으로 갔다. 슬리퍼를 신고 ‘와 어쩌지!’ 했지만 오래전 산골생활이 금방 도움이 되어 큰 장애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소나무와 소사나무 등의 푸른 가지와 골바람, 멀리 출렁이는 물결 위에 스텝을 밟는 작은 어선들은 그 찰나에 같은 인천이지만 다른 인천임을 느끼게 했다. 바다 위에 작은 바위섬이 하나 있는데 대갑죽도다. 사람의 옆모습을 닮았다고 하는데 순간 동해의 독도와 오버랩 되었다. 독도 동도에서 바라본 서도의 모습 또한 사람의 옆모습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대갑죽도와 독도, 존재만으로도 든든하다.

 

점차 어둠에 잠기어 가는 바다 위 대갑죽도, 2019ⓒ유광식
 

볕의 색깔은 바다에 빠지기 직전까지 다양하게 변했다. 그 빛깔이 조각바위 면에 암각화처럼 고스란히 찍히고 있었다. 노란색-빨간색-푸른색-보라색 등 세상천지 아름다운 빛깔 미끄럼을 타는 듯했다. 바위는 거센 북서풍과 파도로 세안하고 볕으로 분칠을 하며 오래도록 섬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은 어떤 세 남녀를 만났는데, 함께 일몰을 감상하기에 앞서 노래 한 곡을 떼창하게 되었다. 그 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평화를 생각하며 걸어왔다는 세 남녀의 마음이 조만간 걸어 둔 종전의 자물쇠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태보는 시간이었다.

 

적은 시차를 두고 얼굴색을 바꾸는 조각바위의 모습, 2019ⓒ유광식
 

해는 순식간에 바다에 빠졌고 그 빛의 아우성이 보랏빛을 띠며 가늘고 널찍하게 구름에 새겨졌다. 군인들의 재촉으로 다시 돌아 나오는 길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울창한 나무숲이 푸른 대청도의 외투를 대신했으나, 우리 사회에는 푸른 마음이 들어서기엔 아직 분단의 긴장감이 더 새파란 것 같았다. 그 마음들이 검은 밤하늘 위에 동동 떠서 빛나고 있었다. 

인천의 섬들은 ‘평화’라는 단어로 단장되고 있다. 특수한 한반도 사정에 따른 부분이기도 하지만, 하늘의 별 그림자처럼 그 위치가 보석과도 같다. 한 섬 한 섬 징검다리처럼 이어간다면 머지않아 북한으로의 평화의 다리가 완성될지도 모를 일이다. 뭍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런 마음의 정리를 하는 잔잔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인천대교가 보이고 연안부두에 닿을 즈음엔 누가 주었는지 모를 우럭 상자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 또한 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울컥~! 해졌다. 우럭이 대청도의 메신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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