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세기의 신작 시집 ‘서쪽이 빛난다(2020, 실천문학사)’가 발간됐다.
시집에는 제1부 '언리 해변'부터 제4부 '서쪽이 빛난다' 등 총 54편의 시와 산문 한 편이 담겼다.
이세기 시인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시인 자신의 언어로 형상화했다.
때문에 시집에는 인천 덕적군도에서 태어나 바다와 함께 자란 시인의 가족사, 어촌 마을의 풍경과 실상, 섬 주민들의 애환 등이 폭넓게 담겨 있다.
시인은 자신과 섬 주민들을 한 알의 모래알로 비유했다. 가장 작고 이름 없는, 누구하나 위로와 관심의 말을 건네지 않는 모래알. 이것이 섬 바깥 사람들이 섬 주민들을 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이 시인은 산문을 통해 “어디에서 왔든 어디로 가든 모래알은 그저 한 알의 모래알일 뿐. 내가 좋아했던 것은 모두 서쪽(서쪽바다와 섬)에 있고”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시선이 어떠하든, 또 자신이 어느 곳으로 가서 무얼하든 자신의 정체성은 ‘바다 사람’이란 말이다.
때문에 그는 “시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언어를 기른다. 그렇게 시는 자신의 육체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 시인의 시 속에 담긴 섬과 바다, 섬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시인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자 반드시 기록해야만 할 역사인 것이다.
시집을 펼치면 강다리(싱어. 멸칫과의 바닷물고기), 갯바탕(갯벌이나 갯가), 북새(노을), 뻘뚱(보리수 열매), 노래기꽃(금잔화) 같은 토속언어들이 파닥인다. 동시에 뭇 생명을 향한 경외감이 뜨거운 피처럼 솟구친다. 생명의 감각, 상생의 감각, 우주의 감각, 윤리의 감각이 통째로 숨 쉬는 듯하다.
넓고 깊은 바다가 전하는 삶의 전언(傳言)들, 고달픈 섬사람들의 삶,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간과했던 신비로운 섬의 언어들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세기 시인은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먹염바다’, ‘언 손’, 시론집 ‘백석, 자기 구원의 시혼’, 산문집 ‘이주, 그 먼 길’, ‘흔들리는 생명의 땅, 섬’ 등을 냈다.
강화도 읍내 밥집 아리랑집엔
특별한 차림표가 있다
새우두부젓국
염하에서 잡아온 새우에 두부와 무를 설컹설컹 썰어
젓으로 간을 하여 탕으로 끓여 내온 국엔
내 아버지의 입 냄새가 난다
갯물을 닮은 짐짐한 맛에는
섬그늘이 바다에 그리매가 되어 어리는 날도 있어
그런 날과 겹치는 어느 해거름 저녁
숟가락으로 새우두부젓국을 떠먹을 때면
섬으로 들어와 살았다는
가계가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아버지의 입 냄새가 왜 그렇게 생각나는지
새우두부젓국을 먹을 때면
보름사리 보고 동지나해에서 들어온
산돼지 털을 닮은 턱수염과
장딴지만 한 두툼한 그물코를 꿰던 손이 생각나고
평생 배를 타다 물고기 눈처럼
두 눈을 뜨고 죽은 아버지가 생각날 때가 있다
- 「새우두부젓국」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