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책방 손님들의 판타지 - 북스테이와 공방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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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책방 손님들의 판타지 - 북스테이와 공방 작품들
  • 김시언
  • 승인 2020.07.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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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18) 김시언 / 우공책방 책방지기

 

판타지 넘치는 산골책방의 하루하루

우공책방은 책방 공방 북스테이를 함께한다. 책방을 찾는 손님, 공방이 궁금해서 오는 손님, 하룻밤을 묵으면서 책을 보는 손님들이 책방을 찾는다. 우리 책방은 강화읍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지만 고비고갯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두메산골에 있다. 고려산과 혈구산을 가로지르는 고비고갯길만 넘으면 산골책방이 짠하고 등장한다. 그저 구불구불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인데 판타지 세상이 나타난다.

“우와!”

책방에 들어서는 손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구불거리는 고갯길을 넘어 찾아온 책방이 너무 시골에 박혀 있어서 놀랐다가, 책방에 들어섰을 때 책이 잔뜩 꽂혀 있어서 또 한 번 놀라는 것 같다.

“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판타지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뒤통수 한 대 맞은 것 같네!”

이 말은 책방지기인 내가 아주 좋아한다. 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사는 손님일수록 그런 말을 하는데,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그건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나오는 말이 또 있다.

“손님이 오긴 와요?”

“여긴 아는 사람만 오겠어요!”

“책이 팔리긴 해요?”

이 말은 맞고 틀리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책방을 찾아 일부러 오기도 하고, 강화에 놀러 왔다가 꼭 들르는 곳이 되기도 하니 맞는 말이다. 또 일부러 책방 소문을 듣고 오기도 하고, 책방투어에 나선 손님들이 처음 오니 그 말이 틀리기도 한다. 게다가 적석사에 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들어오기도 하고, 고려산을 오르내리다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모두 반가운 손님들이다.

 

오상리고인돌군
오상리고인돌군

1.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

젊은 손님들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이삼일 머물 때가 있다. 그들은 2층 북스테이 공간에 머물면서 보고 싶은 책을 보고, 마당에 있는 데크에 앉아 글도 쓰고, 물병을 하나씩 들고 적석사를 다녀온다. 낙조대 적석사는 한 시간 반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데, 손님들은 아침밥을 먹기 전이나 해넘이를 보고 와 저녁을 먹는다. 어떤 이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오상리고인돌군도 다녀오기도 하고, 차로 10분 거리인 계룡돈대와 황청포구를 다녀오기도 하면서 나름 시간을 쪼개서 잘 지낸다.

가족이 머물다 가면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에 지친 엄마 아빠는 잠시라도 끼니를 준비하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벗어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당에서 뛰어놀거나 아래층에 내려와 보고 싶은 책을 볼 수 있어 좋다. 더욱이 아이들은 둘리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둘리랑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것도 기분 좋다. 아이들이 이 다음에 커서 책에 대해 좋은 기억이 많으면 좋겠다.

 

참죽나무 책갈피

2. 공방에서 만드는 작품들

우리 책방에는 공방이 있다. 여기서 만드는 작품 중에 특히 책갈피와 빵도마는 인기가 있다. 특히 ​참죽나무 책갈피는 우리 책방에서 효자상품이다. 우공책방 굿즈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플리마켓에 나가서도 열일한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내가면 로이카페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나가는데 거기서 새로 나온 책과 공방에서 만든 물건을 판다.

지난번 플리마켓에는 어느 회사 대표가 왔다가 책갈피를 보고는 직원들과 직원의 가족 책갈피를 오십 개 남짓 주문했다. 이른바 '직원 기프트' 번개 이벤트를 한 모양이다. 대표가 직원과 직원 가족에게 나무 책갈피를 돌리는 일이 참 신선했다. 책갈피 한쪽에는 회사 로고를, 다른 쪽에는 사람 이름을 새겼다. 책갈피에 이름까지 새겨서 오천 원인데, 이는 이만 원짜리 책 한 권을 파는 것과 맞먹는다. 시골 작은책방에서 책을 팔아서는 도무지 먹고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건만, 우리 책방에서는 참죽나무 책갈피가 그럭저럭 인기 있어 참 다행이다.

 

식물에 관한 책

3. 책 주문하는 일

이래저래 번 돈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 주문이다. 식물에 관한 책, 시집, 그래픽노블, 신간 등등을 주문하는 일은 가장 경건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 책방에서는 특히 책을 잘 골라야 잘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반품하지 않기로 결정한 우리 책방으로서는 새 책을 들여놓는 걸 아주 신중하게 해야 한다.

책방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식물, 특히 나무를 좋아하는 분이 많다. 손님이 천천히 훑어보다가 사면 더 좋고, 다른 책을 고르더라도 손님들에게 책으로써 정보를 주니 좋은 일이다.

 

4. 책쾌가 되어

책을 배달할 때가 종종 있다.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우체국 택배로 보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직접 책을 들고 나선다. 조선시대 책쾌처럼 책 중개상인이 되어 책을 배달하고 좋은 책을 권한다. 해안도로를 달리고 고비고갯길을 넘고 시골길을 달려가 책을 전해준다. 도포자락에 책을 넣은 채 짚신을 신고 흙길을 다니는 대신 자동차로 쌩하니 다녀오지만, 책을 전해주고 책을 추천할 때는 가슴 벅차다. 진정으로 책방지기가 되는 순간이다. 틀림없이 나는 전생에 책쾌였거나, 책쾌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단호네
단호네

5. 우리 책방 단골손님 단호네

책방 이야기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단호네다. 지지난주 일요일, 플리마켓에서 돌아오자마자 단호네가 왔다. 그날 아침에 단호 엄마와 단호 삼 남매는 우리가 플리마켓에 나간 줄 모르고 왔다가 허탕을 쳤다. 그러고는 오후 늦게 다시 온 것이다. 단호 엄마는 직장 동료들의 생일 선물로 각각 책과 책갈피를 골랐다. 단희와 단호도 책을 사려고 작정하고 온 모양이었다. 단호가 씩씩하게 나를 불렀다.

단호가 한참 책을 골랐다. 그때 내가 선심 쓰면서 말했다.

“단호야, 책방 아줌마가 책 선물을 하고 싶은데, 맘에 드는 책으로 한 권 골라.”

“왜요? 책을 왜 그냥 줘요?”

“아니, 단호가 예뻐서 그렇지.”

“저, 책 사려고 돈 가져왔어요!”

단호는 선물하겠다는 내 말을 한방에 묵살(!)하고는 책을 골랐다. 나는 괜히 민망했다.

‘그렇지, 책방에서 책을 그냥 주면 안 되지, 장사를 똑바로 하자!’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단호가 말을 건넸다.

“아, 책방 아줌마! 이러면 좋겠어요. 하나는 선물로 가져가고, 하나는 사고… 그래도 돼요?”

“헉, 그런 방법이! 야아, 단호 너 흥정 정말 잘하는구나!”

단호가 고른 책은 《까마귀의 소원》과 《잘가, 토끼야》. 그러고 보니, 단호는 동물을 좋아하고 세밀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책을 고른 단호는 지난번처럼 돈주머니에서 천원짜리와 백원짜리를 세어 주었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배꼽 인사를 깍듯히 했다.

“단희야, 다음 주에는 오빠랑 동생이랑 나무 깎으러 놀러와!”

단희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고, 단호는 누나 자전거 뒤에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책방을 한다는 건, 기다리는 일이다. 오늘도 책을 좋아하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산골책방의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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