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문장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모나미 153 연대기》
인천in 기획연재 [작은 책방, 그 너머의 기록]의 필진이 추천하는 도서목록을 매주 소개합니다. 이번에 추천해주시는 분들은 필진 '딴뚬꽌뚬' '마쉬책방' '동네책방 시방' '서점 안착 '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책방지기 5분입니다.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추천;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고수리
유독 읽고 나면 마음이 씩씩해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제게 고수리 작가님의 책들은 그렇습니다. 다정하게 독자를 기꺼이 안아주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집니다. 겨울 끝자락에 출간한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책은 더 큰 포옹을 건넵니다. 바싹 말라버린 거리의 낙엽처럼 서글픈 마음이 들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쓸쓸함을 맨손으로 겪어내며 손수 지어주시는 할머니의 이야기, 따스한 온기를 품은 엄마의 약손, 철썩거리는 바닷소리와 함께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등어 냄새. 눈에 보이는 바다가 끝이 아닌 것처럼, 이 글이 품은 사랑 역시 끝없이 펼쳐집니다. 다정한 위로가 담긴 책을 만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추천합니다.
마쉬 책방 추천; 《꼰대 책방》, 오승현
종이책이 더 이상 사업성이 없어진 근미래, 서점들이 종이책 사업을 접고 한 번의 이식으로
종이책의 몇 배 이상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미메시스(미미)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소설 <꼰대 책방> 이야기입니다.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는데 굉장히 씁쓸합니다. 영상과 이미지 빠르고 편한 수단을 두고 여전히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 한 번의 이식으로 종이책의 몇 배 이상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책을 읽을 건가요? 초고령 사회의 노령 인구와 제도, 책을 읽지 않는 문화에 대한 사회비판을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만 지혜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믿게 하는 이 소설은 경고와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동네 책방 시방’ 추천; 《소로의 문장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 박명숙 역
월든 호숫가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깨달은 것들을 기록한 명고전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자신을 ‘신비주의자이자 초절주의자, 자연철학자’라고 묘사한 그는 노예제와 전쟁에 반대하며 집필과 강연, 사회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인물로서 삶과 글이 일치하는 드문 지식인이라고 칭송을 받습니다.
『소로의 문장들』은 소로의 작품과 편지, 일기에서 엄선해 뽑은 문장들을 8개 챕터로 나누어 정리한 작품으로 소로의 인생과 철학, 예리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문장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책의 부제인 ‘한 권으로 만나는 소로의 정수’에 걸맞게 750개가 넘는 소로의 문장들이 실려 있으며 독자의 필사와 정리를 돕기 위해 문장마다 번호를 붙여놓은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이 책은 소로의 문장과 더불어 번역가의 역량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동안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제르미날』 ,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오스카리아나』 , 제인 오스틴의 『제인 오스틴의 말들』, 알베르 티보데의 『귀스타브 플로베
르』, 프랑크 틸리에의 『뫼비우스의 띠』 등 굵직한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박명숙 작가가 번역을 담당해 문장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19세기에 쓰인 그의 글은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 읽어도 세상을 관조하는 시선과 태도가 느껴집니다. 홀로 있기를 추구하며 사색과 여유를 즐기던 소로의 문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진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겁니다.
딴뚬꽌뚬 추천: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강명관
조선시대 사람들이 외부세계와 외국문물에 무관심했고 적대적이었다는 생각은 조선사회와 관련된 흔한 선입견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강명관 선생님은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에서 이런 선입견과 달리 조선 지식인들이 서구문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많은 노력을 들여 이를 소유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서양물건들의 행방을 뒤쫓는 과정이 미스터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니 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서양 물건들 중에서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을 주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렌즈와 반사경, 기계식 시계는 유럽문명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조선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물건들이 가져온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직 악기인 양금만 조선사회에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요. 왜일까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서점 안착 추천; 《모나미 153 연대기》, 김영
<모나미 153 연대기>는 한국 어느 집에나 한 자루씩 있는 국민볼펜인 모나미 153 볼펜에 관한 책입니다. 2010년 첫 출간 한 달 만에 품절되었던 화제의 책으로 연대적 특성 등만 조금 수정하여 2019년 재판되었습니다.
국민볼펜이라 할 수 있는 모나미 153 볼펜과 관련된 일상의 에피소드를 한국 근현대사의 실제 사건들과 뒤섞어 볼펜의 역사에 접목시킨 한 편의 독특한 소설입니다. 작가는 역사 속에서 제 몸으로 한번 써낸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다시 쓰는 환각에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모나미 153 볼펜 입장에서 거부하고 싶은 고통일 것이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국민볼펜은 지금도 생산되고 있지만, 책에서는 1992년 단종되는 걸로 나옵니다.
뜬금없이 삽입되는 온갖 증거 사진과 인용문들이 있지만, 이야기는 물론 허구입니다.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가 1961년도에 모나미 153 볼펜의 모델이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초록창에 책 속 이야기를 검색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물과 얽은 이야기만으로도 멋진 책 한 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