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려나 서점》
《이야기 기다리던 이야기》
《시를 위한 사전》
《나의 작은 책》
인천in 기획연재 [작은 책방, 그 너머의 기록]의 필진이 추천하는 도서목록을 매주 소개합니다. 이번주에 추천해주시는 분들은 필진 '딴뚬꽌뚬' '마쉬책방' '동네책방 시방' '서점 안착 '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책방지기 5분입니다.
딴뚬꽌뚬 추천; 《트라우마의 제국》 디디에 파생, 라사르 레스만 지음, 최부문 옮김, 바다출판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른바 ‘트라우마’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병명입니다. 그런데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각종 장애들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감기나 암과 같은 질병으로 받아들여졌을까요?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과정들은 어땠을까요? 『트라우마의 제국』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질병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환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 까지 사회적 논의가 얼마나 지난했는지 역사적으로 검토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1차대전으로 인해 정신적 상해를 입은 사람들과 꾀병을 부리는 ‘겁쟁이’들을 구분하려 한 것이 트라우마 문제를 의학적으로 접근하게 된 계기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적절한 보상과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자들을 그렇지 않은 자들로부터 구분하는 ‘의학적’ 규정을 고안하는 과정이 우리의 막연한 생각과 달리 꼭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에 각종 정치적 쟁점, 문화적인 차별들, 경제적 이권들이 개입합니다. 1차대전 이후 트라우마 논의도 사회적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자율적이지 못한 채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상이군인/그렇지 않은 겁쟁이 구별하기’의 변주를 반복합니다. 한국인들도 ‘순수한 유가족’과 ‘순수하지 않은 유가족’을 구분하려 했던 사회를 지나면서 이런 변주를 직접 겪어보았지요. 이처럼 트라우마라는 주제는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이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저자들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직접 인용해보겠습니다. “궁극적으로 트라우마는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해 현대사회가 짊어진 도덕적 책임을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지 그 실증적 방법을 정의해주는 것이다.”(p436) 이런 결론은 참혹한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은 후 이 참극을 이겨내야 했던 모든 이들이 동의하게 될 주장이리라 생각합니다.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추천: 《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온다
세상 어떤 책도 찾아주는 아주 유쾌한 서점을 소개합니다. 마을 변두리 한 귀퉁이에 위치한 ‘있으려나 서점’에는 책과 관련된 책 전문점입니다. 어떤 손님이 와도 대개는 “있다마다요!”라고 책을 찾아준답니다. 작가의 나무 키우는 법, 세계의 팝업 그림책, 둘이서 읽는 책,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서점 결혼식 등 요시타케 신스케만의 톡톡 튀는 상상의 서점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페이지도 적당하고 스토리 기반 그림책으로 구성되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저는 특히 산뜻한 사고 전환이 필요하거나 상상력을 넓히고 싶은 어른의 가방 속에 몰래 숨겨두고 싶은 책이랍니다.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면서 첫 장을 넘기면 분명 나도 모르게 킥킥대며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즐거운 서점 방문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추천 책을 마치겠습니다.
마쉬 책방 추천도서; 《이야기 기다리던 이야기》, 마리안나 코포 글.그림, 레지나 옮김, 딸기책방
2021년을 채워갈 이야기 <이야기 기다리던 이야기>.
2021년이 시작되었어요. 올해 무엇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나요?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나요? 무슨 이야기를 기다리나요?
주어진 대로 잘 살다 보면 내가 꿈꾸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줄만 알았어요. 하라는 대로 살다 보니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린다고 이야기가 오는 것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내 삶은 내가 쓰는 대로 내 이야기가 되는 거였지요. 진짜 나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하고 계속 나 자신을 탐구해야 해요. 하나씩 내 삶을 내가 원하는 이야기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실천한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내가 바라는 곳에 조금씩 가까워질거에요.
자, 이제 여러분도 내 삶은 내 이야기로 채워보세요. 그림책 <이야기 기다리던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요.
‘동네 책방 시방’ 추천 : 《시를 위한 사전》, 이 원, 마음산책
《시를 위한 사전》은 이원 시인이 국내외 시인들의 시 100편을 선정하여 그녀의 통찰력과 감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시인이 다른 시인의 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엿볼 수 있어요.
시는 소설이나 산문에 비해 분량이 짧아서 함축에 숨겨진 의미를 읽지 못한다면 다소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시를 위한 사전》이라는 제목에는 기대고 싶은 안정감이 서려 있어요. 아마도 ‘시’ 뒤에 붙은 ‘사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든든함 때문일 테죠.
방대한 양의 낱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각각에 대한 해설을 모은 사전. 사전은 ‘모름’에서 ‘앎’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줍니다. 평상시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단, 《시를 위한 사전》에는 원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요. 대신 책의 뒤편에는 시가 실린 시집을 기록해두었습니다. 독자가 직접 찾아 읽어야 하므로 덜 친절한 책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자의 매혹적인 문장과 호흡을 따라 읽다 보면 원문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어요.
이원 시인은 “시 없이, 시와 만난 순간만으로 책을 엮었어요. 만난 시를 내보이지 않고 시와 만난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 만난 시와 보다 섬세하게 닿기 위하여 필요한 사전 같은 형식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책에 실린 글을 시 곁의 기척으로 읽어주면 좋겠다고 당부합니다.
서점안착 추천 도서; 《나의 작은 책》 김봉철, 수오서재
“여기, 저의 작은 책을 보여드립니다.”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봉철비전> 등으로 독립출판계의 괴물 신인이라 불렸던 김봉철 작가가 출판사를 통해 낸 책입니다. 이번 책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던 시절부터 독립출판 까막눈에서 독립출판의 왕도를 알아버린 현재를 담은 에세이이면서 세심한 실용서이기도 합니다. 책에는 작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거창한 성공담이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장기가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30년 넘게 집에서 놀기만 하던 작가 자신이 해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스스로를 낮추어 전하는 ‘내가 쓴 책을 내가 만드는 일’. 작가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독립출판물이 만들어지고 입고되는 과정까지도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라도! 당장! 마음속에 지닌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라고 독려하는 소중한 <나의 작은 책>입니다.바다